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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22. 2022

티셔츠



  I Love HongKing. 매일 , 잠에 들기  나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엄마가 친구들과 홍콩 여행을 갔다 기념품으로 사 온 티셔츠였다. 캐리어를 끌고 돌아온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티를 펼쳐 보였다. 아빠는  문구를 읽고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었다. 내가 어디서  거냐고 물었을 , 엄마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야시장에서 상인이 우리한테 싸게 판다길래 냅다 사 왔지. 나는 그냥 엄마를 따라 웃었다. 예쁘네, 고마워  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다음날, 엄마는  티셔츠를 입고 회사에 출근했다. 아마 동료들한테도 똑같이 자랑했겠지? 아빠와 나는 차마 이 티셔츠를 입고 밖으로 나가진 못 하고 집에서 잠옷 대용으로 입었다. 엄마는 그런 우리에게 내심 서운했는지 어느 날부터 엄마도 그 티셔츠를 집에서만 입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우리 집은 밤만 되면 모두가 I Love HongKing, 홍킹이라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가족이 된 건.


  티셔츠는 세 벌이었지만 이제는 티를 입는 사람은 두 명이 됐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이 티셔츠만큼은 절대 못 버릴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여전히 아빠는 이 티셔츠를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가끔은 예전에 엄마처럼 이 티셔츠를 입고 회사로 출근하기도 했다. 한 번은 아빠가 이 티셔츠를 입은 내게 말한 적 있었다.

 “소영아, 아빠는 가끔 후회가 될 때가 있더라.”

 “뭔데……”

 “엄마가 그 옷을 사 왔을 때, 한 번이라도 고맙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야.”

 아빠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멋쩍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럴걸, 이란 말이 턱 끝에서 일렁였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휴가를 내고 3박 4일간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가 홍콩에서 사 온 티셔츠도 챙겨 캐리어 안에 넣었다. 원래는 호텔 안에서만 입을까 하다가 마지막 밤이 되는 날, 이 티셔츠를 입고 엄마가 갔다고 했던 야시장으로 갔다. 홍콩 사람들에게 혼자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내가 한 보를 내딛을 때마다 상인들은 덥석, 나를 잡고 가게를 홍보해대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을 저으며 잰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딱히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없는 것도 빨리 시장을 나가는 데 한몫했다. 그냥 아빠 선물은 면세점에서 사야지.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홍콩의 야시장을 빠져나가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인데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거기 이쁜 아가씨, 티셔츠 싸게 줄게요! 구경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I Love HongKing이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그는 같은 문구가 내 티셔츠에 적혀있는 걸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가게 온 적 있구나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홍콩엔 처음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옷은 자기네 가게에서만 파니 못 알아볼 수 없다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긴, 삼 년을 넘게 잠옷으로 입었는데 변색 하나 안 된 상태를 보면 저렇게 자랑할 만하다.

 “그럼 이 티는 어디서 났어야요?”

 “엄마가 사 오신 거예요.”

 “좋은 선물 받았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제가 웬만하면 다 얼굴을 기억하거든요.”

 “돌아가셨어요.”

 그는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곤 좋은 시간 보내라고 말하더니 다른 손님을 향해 구경하세요, 하고 말했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는 이 사람에게서 짝퉁 티셔츠를 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무지 어림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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