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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22. 2022

집 밖으로 못 나간 지 3일, 맞은편 아파트



 “시력은 돌아오지 않아요. 은퇴하기엔 젊은 나인데 수술을 하시길 바랍니다.”

 의사가 가운 소매를 접으며 말했다. 그 말에 지난 올림픽에서 들은 사람들의 야유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다시 환호를 받는 날이 올 겁니다. 흐릿해진 시야 탓에 의사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지난 올림픽에서 관중들이 내게 보낸 실망의 눈빛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 나는 간호사가 안내하는 대로 수술 동의서에 이름을 적었다. 병원을 나서는데 그녀가 말했다. 3일 뒤에는 회복될 테니 그동안만 집에 계세요.


 파리 날갯짓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퀴퀴한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분명 어제까진 눈을 뜨면 눈물이 멈추질 않았는데, 나는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그러자 캄캄한 방 안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눈이 따갑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시계로 고개를 돌리자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곧장 굳게 닫힌 커튼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치자 창가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한껏 기분이 들뜬 듯했다. 그런데 건너편 아파트에서 한 남자가 창문 앞에 의자에 앉아 이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망원경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팔에 닭살이 돋았다. 신고를 하러 스마트폰을 쥐었다. 그런데 환하게 켜진 화면에 눈을 꽉 감았다. 아직 전자기기는 못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한쪽 커튼을 다시 쳤다.  

 방 안을 비추는 햇빛 덕분에 잔뜩 어질러진 쓰레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편에 쌓인 쓰레기더미에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가득 찬 봉투가 내 몸집만큼 커졌다. 봉투를 묶으려는데 벽에 걸린 매달과 트로피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봉투를 들쳐 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선글라스를 꼈어도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였다. 분리수거장에 도착하자 경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리수거장 안으로 들어가자 정갈하게 쌓인 신문지들이 보였다. 살짝 실문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1면에 실린 기사의 큰 글씨를 조용히 읊어보았다. 양궁 백도환 선수, 매달 실패 후 집에서 잠적. 날짜를 보니 오늘 아침에 온 신문이었다. 작게 실린 사진에는 굳게 커튼이 쳐진 내 집이 나와있었다. 다시 한번 소름이 끼쳤다. 이어서 작은 글씨들도 읽어보았다. 금메달 리스트였던 백도환 선수가 잇달아 실패를 한 후 귀국, 현재 3일째 잠적중이다. 이웃은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싶어…… 나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신문지를 구겼다. 불현듯, 눈이 마주쳤던 맞은편 아파트의 남자가 떠올랐다. 나는 눈이 완전히 회복되면 당장 신고해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묶은 봉투를 풀었다. 그때,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방금 본 남자가 입구에 기대 나를 힐끗 훔쳐보고 있었다. 뭐라고 한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다시 떠오르는 야유소리에 한숨으로 화를 가라앉혔다. 나는 그를 못 본 척하고 분리수거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쓰레기들이 줄어들자 덜컥, 소리가 났다. 깊숙이 손을 넣어보니 매달이 손에 잡혔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때,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걱정했습니다. 나는 네, 하고 짧게 말 한 뒤에 첫 올림픽에서 딴 은메달을 수거함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잠시 아,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어서 트로피와 매달들을 하나씩 수거함에 넣었다. 마지막 하나가 손에 잡혔다. 나의 첫 금메달이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남자가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수고했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다음 경기에 더 멋진 모습 기대해도 되나요? 나는 손에 쥔 매달을 더 꽉 쥐었다. 잠시, 머릿속에 맴돌던 야유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을 꽉 감았다. 아직 눈이 따가워서겠지.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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