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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29. 2022

달을 정복할 야망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쩌다가 시작됐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지 속에서 꼭두각시마냥 움직이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전부였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올리는 기도는 더욱 우리를 어둠 속으로 집어넣었다. 정말 기도는 내 앞을 가로막은 벽을 부수기에 충분할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마태 복음서 7장 7절)


  “자동으로 두 장 주세요.”

  콧대에 안경을 걸친 할아버지가 손바닥 크기의 종이를 뽑더니 내게 건넸다. 나는 종이 두 장을 받으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고작 이 종이쪼가리 두 장이 만 원이나 하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곧장 종이를 지갑 안에 구겨 넣었다. 문을 열자마자 한겨울의 따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나는 후드를 걸치고 주머니 안에 넣어둔 핫팩을 만지작거렸다. 신호가 깜빡거렸다. 뛸까 말까 고민하는 와중 붉은빛이 켜졌다. 잇따라 SM5 한 대가 무섭게 내 앞을 지나갔다. 만약 내가 뛰었더라면…… 나도 모르게 닭살이 돋았다.

  집에 들어오면 매일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게 눈길하나 주지 않고 켜놓은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도 별말 없이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오후 두 시. 약 여섯 시간 뒤면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럼 당장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야지. 나는 지갑에 넣어둔 종이 두 장을 꺼내 입을 한 번 맞추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희미하게 열린 문 틈으로 엄마의 한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마 엄마도 내가 왜 밖으로 나갔는지 아는 모양이다. 내일 오전이 되면 내가 외출을 하는 엄마를 보고 한숨을 내쉬겠지. 토요일은 내가, 일요일은 엄마가 외출을 하는 유일한 날이었다. 나는 만 원을 이 종이쪼가리 두 장을 사는 데 쓰고, 엄마는 만 원을 작은 헌금함에 넣어둔다. 엄마와 나는 서로 이 소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엄마는 헌금함에 만 원을 넣으면서 무슨 기도를 올릴까.


  일요일 오전에는 눈이 내렸다. 성당에 다녀온 엄마의 검은 코트 위에는 새하얀 눈이 촘촘히 쌓여있었다. 나는 눈을 털어내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성당에서 뭔 기도해?”

  “있어.”

  엄마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소파 위에 앉았다. 오전 10시 20분. 본래 무교였던 엄마가 성당에 가는 이유가 뭘까. 이 시간에 집에 들어온 거면 성당에서 사람을 만나 떠들고 온 것도 아닐 터였다. 아빠가 천주교였기 때문은 더더욱 아닐 터였다. 점심 준비할게. 연신 피어오르는 생각을 지워내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됐어. 나가서 먹자.”

  엄마가 부엌으로 향하는 나를 멈춰 세웠다.

  “네 아빠 보러 갈 거야. 나갈 준비 해.”

  나는 티브이 옆에 놓인 달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의 기일이 오려면 한참 멀었는데. 그러나 차마 왜,라고는 묻지 못했다. 엄마의 눈은 분명 티브이에 꽂혀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마치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 같은 눈동자였다.


  버스 손잡이는 겨울이라는 걸 한 몸에 체감시켜 주었다. 그러나 손을 뗄 수는 없었다. 만석의 버스, 나이 든 엄마에게 자리 한 번을 양보해주지 않는 학생들, 사람이 없으면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가는 버스 기사. 이것들이 오히려 손잡이를 더 꽉 움켜쥐게 해 주었다. 엄마는 버스에 올라탄 뒤로 말 한 번 없이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엄마의 정수리는 어느새 텅 비어있었고 새치가 듬성듬성 나있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엄마의 머리에 난 새치를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연신 떠도는 호기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정말 엄마는 믿지도 않는 하느님에게 어떤 기도를 했을까.

  마침내 종점에 도착했다. 천천히 열리는 문을 나오면 둥글게 빚어진 묘지와 그 앞에 박힌 비석들을 볼 수 있었다. 아빠의 묘는 여기서 10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 했다. 나는 아빠의 묘까지 올라가면서 보이는 풍경을 싫어했다. 하루는 눈을 감고 오르막길을 오른 적이 있었다. 처음 몇 발자국은 문제없이 올랐지만 눈이 쌓인 탓인지 얼마 안 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럼에도 이 풍경을 보는 건 싫었다.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묘들은 우리 집 평수보다 큰 잔디 위에 하나씩 놓여 있다. 그 위에는 묘원 아래에서 파는 가장 비싼 꽃보다 훨씬 비싼 꽃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다. 반면에 아빠의 묘는 좁은 잔디 위에 촘촘히 묘가 올라와있어 비석에 적힌 이름을 보고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죽음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는데 전부 꿀발린 거짓말이었다.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시편 107편, 11-12절. 아빠의 비석에 적혀있는 성경 구절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 만약 아빠를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다. 이 뜻이 무엇인지.

  “오늘 꿈에서 네 아빠를 만났어.”

  엄마는 이곳에 오면 꼭 담배를 피웠다. 10년 만이었다. 엄마가 담배를 피우다가 내게 말을 건 것은.

   “내 안부를 묻기도 전에 너를 찾더라. 그리고 나한테 물어봤어. 지금 네 꿈이 뭐냐고. 그런데 차마 말이 안 나오더라. 네 꿈이 뭔지, 네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방에 틀어박혀있다가 나오는 거라곤 토요일마다 로또를 사는 게 전부였으니. 나는 글쎄, 요즘은 나도 잘 모르겠네. 하고 아빠의 비석을 닦았다. 흐릿했던 성경 구절이 점점 또렷하게 드러났다. 먼지가 잔뜩 묻은 물티슈는 이제 제기능을 못 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연신 물티슈로 비석을 문질렀다. 정말 내 꿈이 뭐더라. 비석을 문지르던 손을 멈추었다. 정말 어릴 적부터 꾼 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고스란히 안게 된 빚을 갚는 데 10년이란 세월을 보냈으니. 아빠는 그 많은 빚을 어떻게, 어쩌다 지게 됐을지, 어쩌다 그 빚을 나와 엄마가 안게 됐는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이유가 궁금해 잠에 들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체념한 듯했다. 엄마의 기도는 이 빚을 전부 없애달라는 게 아니었을까. 아직 엄마는 난간에 기대어 담배연기를 허공에 내뿜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어디로 가는 걸까.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발목에 휘감긴 사슬 탓에 쉽게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붕,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뭘까, 하고 생각할 시간 따위 없었다. 곧장 채찍이 내 등으로 뻗어졌다. 이어서 두 번째 채찍질이 등을 향해 날아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니 버스 안이였다. 옆에는 엄마가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히터가 틀어져있지 않았음에도 등이 땀에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두 번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제 하지 못했던 번호 조회를 해보았다. 역시 열 줄 모두 낙첨이었다. 나는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집어던졌다. 허황된 꿈. 그러고 다시 토요일이 되면 나는 이 허황된 꿈을 갖고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겠지.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누워 코를 곯았다. 늘 켜던 티브이도 켜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잠에 들었다. 나는 소파 아래에 널브러진 담요를 주워 쪼그려 누운 엄마의 몸 위에 덮었다. 그때, 엄마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갑자기 켜진 휴대전화는 캄캄한 거실을 밝히기 충분했다. 그 탓에 나도 모르게 떠오른 글씨를 읽어보았다. 연말 행사, 최신형 삼성 냉장고를 초특가로……. 왜일까. 엄마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더 이상 미리 보기로 뜬 문자를 읽을 수 없었다. 조그만 나를 번뜩 들어 올려 어깨 위에 앉힌 아빠, 그 옆에서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엄마. 왜일까. 왜, 왜, 왜, 왜…… 아직 엄마의 배경화면이 이 사진일까.


  “나는 부자가 되는 게 꿈이에요!”

  “아들, 열심히 한다면 부자는 누구나 될 수 있어. 꿈은 어떤 일을 열심히 해서 부자가 될 건지. 그걸 정하는 거야.”

  “음…… 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런 거 생각할 여유 따위 없었어.

  “아빠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멋진 의사가 되는 건 어떠니.”

  그렇게 열심히 한 공부로 내버린 의료사고 때문에 당신이 직장을 잃었어.

  “그럼 아빠처럼 멋진 아빠가 될래요.”

  당신이 그렇게 멋진 아빠는 아니었어.

  “그래. 그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미사 빠지지 말고 기도도 열심히 하면 예성이도 멋진 아빠가 될 거야.”

  기도…… 그런 거 질리도록 했어. 그런데 결국 이루어지기는 커녕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어.

  “그런데 아빠, 오늘 야망이라는 단어를 들었어요. 그게 뭐예요?”

  “음, 야망이란 말이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자긍심 같은 거란다. 예성이도 나는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잘할 자신 있다! 이런 게 있지 않니?”

  그걸 갉아먹은 사람이 당신이다.

  “지난주에 시 낭송대회에서 대상을 탔으니 시가 제 야망인 걸까요?”

  그때, 말없이 웃던 아빠의 얼굴이 기억의 배경과 함께 구겨지다가 삐, 소리와 동시에 팟, 하고 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곗바늘이 어느덧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티브이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일어났구나. 굳이 거실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냥 몰려오는 편두통에 머리를 움켜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달에는 토끼가 살고

  지구에는 사람이 사는데

  태양에는 누가 살까


  엄마 손은 약손이고

  코끼리 손은 코가 손인데

  아빠 손은 어떤 손일까


  이제 보면 정말 형편없는 시다. 어떻게 이 시가 대상을 받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섯 살짜리 꼬마애가 쓴 시라고 하기에도 믿을 수 없는 시였다. 아니, 오히려 여섯 살이었기에 쓸 수 있던 걸까. 번뜩 눈이 떠진 뒤로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앞에 몇 장은 중학생 때 쓴 시 몇 편이 적혀있었다. 다시 보면 부끄러을 줄 알고 펼쳐보지 않았는데 막상 한 글자 한 글자 시를 읊으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 앞에서 시를 읊으면 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힌 장래희망 칸에도 보란 듯이 ‘시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볼펜 뚜껑을 열고 머릿속에 일렁이는 글자들을 적어 내렸다. 절이 늘어날 때마다 어깨에 놓인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펜 촉을 노트에서 떼어냈을 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분명, 내 꿈은 이거였는데, 왜 그만뒀을까. 고작 빚이었을까. 아님 돈을 많이 벌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님…… 그냥 모두 핑계였을까.

  “예성아.”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성아…… 그, 있잖아 예성아.”

  엄마가 내 이름을 세 번을 부르고서야 나는 부름에 답했다. 그러니 엄마가 벌컥 문을 열었다.

  “엄마가 내일 성당을 가는데 아마 집에 잘 안 돌아올 거야. 돈은 꼬박 부칠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내 이름을 세 번이나 부른 건 처음이다. 새벽 세 시에 내 방에 들어온 건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했다.

  “응. 나도 주일마다 엄마 보러 갈게.”

  “미사는 빠지지 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땐 엄마는 집에 없었다. 그래, 그게 지금 엄마의 꿈이라면…… 나는 반듯이 개어진 이불을 보고 중얼거렸다.


  여전히 통장에 쌓인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은행에 들러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모퉁이, 늘 들렸던 복권 판매점이 보였다.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주머니에 넣은 핫팩을 만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들어오자 책상 위에는 노트와 펜, 헌금봉투가 버젓이 놓여있었다. 나는 만 원짜리 지폐를 봉투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펜을 세게 움켜쥐고 천천히 글씨를 적어내렸다.

  ‘Have An Ambition Conquer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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