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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04. 2023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



  이곳은 누구나 함부로 떠들 수 있었다. 서걱거리는 가위 소리, 머리를 헹구는 물소리는 이야기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데 일조했다. 나는 분홍색 헤어롤을 머리에 감고 따듯한 열을 내뿜는 기계 아래에서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17단지에 경비원 있잖아요. 이번에 위원회에서 결국 경비원을 내쫓기로 했나 봐요. 한 아주머니의 말에 감겼던 눈이 번뜩 떠졌다. 17단지면 우리 집이었다. 처음 듣는 말에 나는 아주머니와 미용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글쎄, 한 달 전에 사거리에 있는 곱창집 딸내미가 하교하고 혼자 집에 있는데 누가 연신 문을 두드려댔다지 뭐예요. 애가 잔뜩 겁에 질려서 문 밖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며칠은 엄마랑 같이 등하교했잖아요. 미용사가 가위질을 멈추고 거울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그럼 그 문을 두드린 사람이 경비원이라 내쫓기는 거예요? 사실 모르죠. 그런데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경비원이라는 거죠. 아직 근거는 없지만 혹시 모르니 내쫓으려는 것 같아요. 나는 뜨거워진 두피를 뒤로 하고 경비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말 그가 그랬다고? 나도 저 대화에 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일부로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

  그 사람, 안 그래도 부회장한테 월급을 올려달라고 부탁했었대요. 머리를 감고 일어난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내내 입을 다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제가 보기엔 자식들이 이제 용돈을 안 부쳐주나 봐요. 그 양반, 담배도 삼 천 원짜리 던힐로 바꿨잖아요. 나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학교를 마치고서나 학원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면 늘 마주치던 그에게서 담배냄새가 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애들 다니는 시간에는 절대 나와서 담배를 피우진 않았잖아요. 그래요? 내가 통 그 양반한테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요. 이번엔 이 대화를 꺼낸 아주머니가 머리를 감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머리에 떨어지는 물 온도에 집중을 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17단지 경비원에 대한 이야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이모, 지금 파마하려고 하는데 돼요? 선글라스를 끼고 모피 옷을 입은 여자가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17단지 부녀회 회장이었다. 그녀의 등장으로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부터 미용사들까지 모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용사는 만석인 자리를 둘러보다 그녀의 모피 옷을 받았다. 지금 쪼매 걸릴  같은데    하면서 얘기나  해요. 그녀도 싫지는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따듯한 커피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고 잔을 들기 무섭게 머리를  말린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혜인이 엄마,  경비원 소문 사실이야? 그녀는 입안에 머금은 커피로 한참 동안 입맛을 다시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사실이긴 한데 벌써 거기까지 퍼졌어?  , 소문이란  정말 무서워. 미용실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으러  아주머니는 헹구는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제대로 얘기  해줘 . 다들 궁금해 죽으려고 . 회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아저씨가 나이가   것도 있고 점점 치매 증상이 보이는  같아서 퇴직하라고 했어.  그래도 저번 달에 아드님이 근처에 따로 사실  알아봤더라 하더라고. 혹시 모르잖아. 그러니 가족이랑  시간 보내시라고 해야지. 그녀가 말이 끝나자 술렁이던 미용실이 동시에 조용해졌다. 사각거리던 가위 소리도, 흐르던 물소리도, 부풀어 오르던 대화소리도 모두 침묵이 되었다.  그래?  다른  있었어? 그때, 머리를 감다 말고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럼 곱창집  두드렸다는 남자는 도대체 누구야?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이상 말을 잇지 말라는 눈치였지만 그녀에게 그런  안중에도 없었다. 아아, 그거  그래도 하도 물어봐서 그날 시시티브이 확인해봤는데 그냥 택배였어. 잠깐의 침묵이 일었지만 미용사가 호탕하게 웃는 탓에 모두가 그녀를 따라 웃었다. 다시 머리를 감기 위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미용사도 가위질을 다시 시작했다. 회장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다시 커피를  모금 입에 머금었다. 파마 열처리가  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미용사는 헤어롤을 풀어보더니 머리를 감으러 가자며 나를 의자에 앉혔다. 따듯한 물이 머리맡에서 쏟아졌다. 나는 눈을 감고 경비 아저씨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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