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서 강아지가 몇 개월째 계속 짖어댄다. 주인이 외출만 하면 짖는다. 혼자 있기 싫다는 것인데 어쩌란 말인가. 주인이 저녁 늦게 퇴근할 때까지 짖어대니 이 불편한 이웃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오랫동안 소음에 시달리다 보면 이성도 가출을 해 제정신이 아니다. ‘저 개 확 죽어버려라.’ 이렇게 무서운 생각을 하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우발적인 살인이 이렇게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설이 반증하는 결과물이다.
관리실에 몇 번을 항의해도 결과는 같다. 살면서 남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고 살아도 인생의 반은 성공한 삶이라고 하는데, 이 불편한 이웃은 알았다고만 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하루 종일 개가 짖어댄다. 아파트에서 개가 짖으면 메아리처럼 퍼져 아파트 전체가 울린다. 그 울림을 하루 종일 듣다 보면 귀가 멍멍해 제정신이 아니다.
개가 짖을 때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려주면 안 짖는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호랑이 울음소리를 다운받아 문밖에서 들려줬는데 그때뿐이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크게 들려줘야 하는데 문밖이라 소리가 작아 효과를 못 봤다.
예전 아파트에서도 그랬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어 10년 만에 이사한 곳에도 불편한 이웃이 있었다. 그녀는 첫 만남부터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머리는 산발이고 옷은 언제 갈아입었는지도 모르게 때가 끼어 꼬질꼬질했고, 오래도록 씻지 않아 몸에서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이사한 첫날부터 우리 집을 기웃거리며 실실 웃었다. 느낌이 안 좋았는데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악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아들보다 작은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하루 종일 복도를 뛰어다니며 놀았고, 아이는 복도에다 똥과 오줌을 그대로 배설했다. 아이 엄마는 치울 생각도 하지 않았고, 복도는 하루도 똥 냄새가 안 나는 날이 없었다. 그 층에 사는 엄마들은 그것들을 치우느라 날마다 물청소를 했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의 정신세계는 더욱 고조됐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아들을 데리고 뛰어다녔다. 차들이 빵빵대도 아랑곳없이 소리를 지르고 춤까지 추며 놀았다. 빗속에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는 것을 지나가다 우연히 봤는데 가슴이 철렁철렁했다. 경찰이 출동하고도 그 광경은 계속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집에 없었고, 가끔씩 먹을 것을 사다 주고 갔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를 해도 방법이 없었다. 들리는 소문엔 고아인 그녀의 남편은 장인 되는 사람이 자신의 딸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아파트를 사주었다고 한다. 결국 정상이 아닌 그녀와 살지 못하고 아들 하나만 낳고 집을 나가 혼자 산다고 했다.
난 그녀를 볼 때마다 늘 분노와 연민이 교차했다. 자신의 몸도 챙기지 못하는 그녀를 결혼시켜 세상에 던져놓은 그녀의 부모도 이해가 안 갔고, 어린 자식까지 그녀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게 내버려 둔 그녀의 남편도 이해가 안 갔다. 가족들이 아들이라도 좀 데려다 정상적인 훈육을 시켰으면 좋겠는데 이웃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층에 사는 엄마들이 난리가 났다. 하얀 구더기가 복도를 바글바글 기어 다녔는데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들이 복도에서 놀면서 그 구더기들을 주워 먹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구더기가 나오는지 확인을 하니 그녀의 집에서 나왔다. 그녀의 집은 집이 아니고 쓰레기장이었다. 청소도 안 하고, 먹다 남은 음식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음식이 썩어 온갖 벌레와 파리 떼가 말도 못 했다. 한마디로 벌레들의 낙원이고 천국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구더기가 바글바글했다.
결국 우리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죄로 그녀의 집을 청소했고, 그다음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그녀의 집을 청소해 주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이웃들은 하나둘 이사를 가고, 우리 집도 이사를 했다.
지금은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든 소음과 불편한 이웃은 존재한다. 그러나 어지간하면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개 짖는 소리는 안 듣고 싶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개는 여전히 컹컹거리며 짖고 있다. 가족이고 자식이라면서 왜 사회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자식이라는 말은 허울뿐인 것 같다. 오늘도 난 이 불편한 이웃 때문에 인내심이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