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

by 루아 조인순 작가

베란다를 정리하는데 오래된 테니스라켓 하나가 툭하고 넘어진다. 너무 오래돼 손잡이가 너덜너덜했다. 오래된 사진과 사물들은 서사를 품고 있어, 별로 유쾌할 것도 없는 기억 하나가 리셋 된다.


운동이 주는 상쾌한 쾌락에 빠져 테니스와 스쿼시에 미처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검도를 하면서도 여러 가지 운동을 많이도 했다. 그때 테니스코트에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있었다.


“어머, 별꼴이야. 신랑이 갔는데 자숙을 해도 시원찮은데 붉은 원피스가 뭐야?”

“그러게 미친 거 아니야? 그것도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테니스코트에 그녀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거나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다. 들리는 소문엔 그녀는 테니스 코치와 눈이 맞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남편이 알고 코치와 주먹다짐을 하고,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다. 그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남편이 분에 못 이겨 가스 줄에 목을 맸다고.


그녀는 우리 아파트 10층에 살았는데 밤늦게 운동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불에 남자 시신을 들고 구급대원과 경찰이 내려왔다.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똑바로 보고 말았고, 한동안 밤늦게 운동을 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자 나중에는 동에서 돈을 걷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풀이굿까지 했다. 그가 그녀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부부의 속내는 다 알 수 없지만, 남편과 함께 배우는 코치라니 좀 그렇다. 문제는 남편의 상을 치르고도 테니스코트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붉은 원피스를 입고 테니스코트를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물론 코치는 그만두었다. 회원들의 성화에 더는 다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누군가 한마디 했다.


“자기 너무한 거 아니야? 좋지 않은 일로 남편이 그렇게 되었는데 자숙은 못할망정 붉은 원피스가 뭐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가 돌아갔다. 나는 남의 일에 관심이 없지만 귀가 열려있어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니 그녀의 심리가 궁금했다. 남편이 불미스러운 일로 세상을 떠났는데 굳이 붉은 원피스를 입고 다니며 튀는 행동을 해서 욕을 먹는 이유는 뭘까. 스스로 자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다음 날은 검은 원피스를 입고 왔다. 그녀는 검은 원피를 입고 테니스코트를 훨훨 날아다녔다. 어느 날 그녀가 우연히 내 곁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낮게 한마디 했다.


“자기도 내가 우습지?”

“….”

“난 그냥 대화 상대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 뒤로 테니스코트에서 더 이상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자살한 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집을 그냥 비워두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우린 살면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많은 일들을 겪으며 보고 듣고 경험한다. 때론 뜻하지 않는 일에 휘말리기도 하고, 상대의 입장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 이유를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살기에 귀신같이 남의 숨겨진 욕망을 보고 그것들을 들추어 난도질하며 괘락을 누리고 합리화한다.” 나는 과연 나의 잣대로 그녀를 평가하며 무의식적으로 마녀사냥에 동참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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