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씨 정권과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에 있어서, 목표만 생각하고, 방법론을 생각하지 않을 때의 패착

by 김희원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이 둘의 역사적 사건은 조선 왕조가 500년이라는 오랜 지속 기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허무하게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그 시발점이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운요호 사건과 그 뒤에 이어진 강화도 조약.


근대화를 통해 강대국이 된 일본이 약소국 조선을 무력에 의해 강제로 조약을 맺은 사건으로 단순히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이미 조선은 두 차례의 서구 열강[프랑스(병인양요), 미국(신미양요)]의 침략 또는 통상 요구를 물리쳤다.


그러한 조선이 불과 몇 년 후, 당시 위 두 나라보다 훨씬 국력이 약했던 일본에게 운요호 사건에서 패하고,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것이 온전히 힘의 차이에 의한 일방적인 항복의 결과다???


그것은 아니다.


당시 조선의 정세를 살펴보아야 한다.


위 두 양요와 운요호 사건 사이에서 발생한 조선의 정세 변화는 바로 정권의 교체였다.


흥선대원군 정권에서 민씨 정권으로.


흥선대원군을 내몰고, 들어선 민씨 정권은 외교정책에 있어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버리고, 개화정책으로 급격하게 선회한다.


그 일환으로 운요호 사건이 발생하고,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미군 1,000여 명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던 신미양요 당시에도 미국의 통상 요구를 굴복시킨 조선이, 불과 몇 십 명의 전투병에 불과한 일본군에 크게 패하고, 그 이후 불평등 조약까지 체결하였다. 과연 신미양요만큼의 저항으로 당시 일본에 대항하였더라도, 운요호 사건과 그에 이은 강화도조약까지 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당시 민씨 정권이 기존의 흥선대원군 정권의 쇄국정책을 부정하고, 개화라는 외교적 목표를 기치로 내세웠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로 보인다.


당시 국제 정세에 비추어 볼 때, 흥선대원군 정권의 쇄국정책보다 민씨 정권의 개화정책이 궁극적으로 더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방법론이다.


민씨 정권은 흥선대원군의 외교정책을 부정하며, 개화라는 외교적 목표만 생각하였다. 어떻게, 어떠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개화를 할 것인지, 즉 방법론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그 전의 조선의 외교 정책 중, 쇄국정책이라는 목표 외, 조선을 침략하는 외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외교정책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개화라는 목표를 추진하였다면 어떠했을까?


솔직히 이런 선택을 했어도,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를 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면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런 선택을 하였을 경우에는 최소한 강화도 조약 이후, 망국에 이르기까지의 변변한 전쟁이나 저항 없이 그렇게나 허무하게 국권이 침탈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유진 초이가 했던 명대사.


빼앗길지언정, 내주지는 마시오. 빼앗긴 건 되찾아 올 수 있지만, 내어준 건 되돌릴 수가 없소.


당시 조선의 민씨 정권과 고종의 친정 정권은 그 전 정권의 외교정책을 전면 부정하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외교정책의 목표만 생각하였을 뿐, 그 방법론까지는 신중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내주었다.


설사 외교적인 목표가 옳더라도, 성급하게 기존의 외교 정책을 부정하고, 그 접근 방법에 대한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더 비극적인 결과가 야기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금 윤석열 정부는 어떠한가?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외교 목표, 일본과의 관계 개선, 신냉전 체제에 대비한 한미 동맹 강화 및 한미일 간의 끈끈한 외교적 관계 구축,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 목표가 옳고 그른지는 평가하지 않겠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흥선대원군 몰락 후, 정권을 잡은 고종과 민씨 정권이 목표만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흥선대원군의 기존의 외교정책을 전면 부인하며, 그 방법론에 대한 신중한 고려나 접근이 없었던 행태가 지금의 윤석열 정부에서도 구현되는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일본이라는 관계 개선과, 한미일의 준(準)동맹 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만 생각하여, 그 방법론에 있어서, 일본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양보하고, 내주었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음에도, 이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고(cf) 수 차례 일본 정부는 사과 담화 등을 하곤 하였지만, 뒤에서는 그와 정반대 되는 행동을 지속하였다. 이를 제대로 된 사과라 할 수 있을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 기존 정부 입장을 완전히 뒤집고, 일본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었으며, 우리 영토인 독도를 우리가 불법적으로 점거하였으니, 반드시 자신의 영토로 되찾겠다고 노골적으로 다짐하는 일본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였다. 왜? 목표 때문에.


북한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을 무너뜨려야 할 정권 또는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보더라도, 최소한 그 과정에서는 일정 기간 북한 정권과 대화를 하는 등의 관리의 노력도 필요한데, 그러한 방법론에 있어서의 신중한 고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외교 정책도 마찬가지다. 한미일의 밀착이라는 목표만 추구하다가, 기존의 우리나라가 추구하였던,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실리 외교 노선을 도외시해 버리는 선택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전 정권들의 외교정책이 그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교에서만은 자신들이 설정한 목표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련되고, 노련한 방법론도 신중히 생각해야, 또 다시 정권이 바뀌었을 때의 커다란 혼란을 방지하고, 역사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교는 퇴로를 차단한 채,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위해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차하면, 방향을 선회할 수 있도록, 다음에라도 이을 수 있는 물줄기 몇 가닥을 남겨놓는 것이 최소한의 전술 또는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좋아하는 변호사가 보는 우리 사회·정치의 세태. 변호사 김희원.


cf) 원 출처만 밝히시면, 얼마든지 퍼 나루셔도 상관하지, 아니 오히려 권합니다. 제가 글을 쓴 이유는 생각의 공유이기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뉴(new)라이트의 올드(old)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