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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Jun 29. 2024

쉽고도 어려운 홈공방을 차렸다.

홈공방 창업을 이야기하다.

2022년 휴직을 했고

2023년 휴직 끝에 퇴사를 했다.

2023년 휴직 중에 꽃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꽃풍선 만드는 강의를 들었다.


100만 원으로 창업할 수 있는 길, 그리고 월 천만 원까지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처음에는 온라인 강의로 시작했다.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면서 틈틈이 온라인 강의를  들었고 풍선과 꽃을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클래스101은 강의와 함께 재료도 손쉽게 살 수 있도록 되어있다. 모든 것을 강사가 하라는 대로 했지만 만들기 키트는 사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있었고 처음부터 나는 고집을 부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재료를 사서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이란 것은 어려울 게 없었기에 무작정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이론으로 보자면 쉽지만 실전은 어려웠다. 인생의 모든 일처럼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것이었다. 분명 어떻게 하는지는 알겠는데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어쩌다 완성된 꽃풍선은 모양이 이상했고.. 풍선모양에 성공한 것도 설명하기 어렵게 이상했다. 한 끗 차이로 아름다움이 달라지는 예술의 세계였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시작했고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 내가 3개월 만에 사업자를 내고 판매를 시작했다.  사실 2023년 2월 꽃풍선을 만들기를 시작할 때부터  4월 말 판매시작을 목표로 잡았다.

꽃 공부는 이미 많이 했다고 거만하게 생각했기에 풍선 만드는 기술만 섭렵하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일 것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 없었다.  만드는 것보다 더 큰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산넘어산', '산너머산' 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갔다. 풍선을 만들고는 레터링을 배워야 했고 포장을 배워야 했다. 내 상품이 있다고 온라인에서 외쳐야 했고 판매를 위해 cs를 해야 했고 마지막 세무일까지 배워야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내 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당장 닥친 일들을 조금씩 헤쳐나가며 1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어렵고 할 일이 쌓여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현재 지금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열정이 생기고 배움의 즐거움도 느끼고 무기력보다는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진짜 힘을 일하는 과정에서 느껴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라고 장담한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가 없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현실적인 부담감과 처참함과 좌절감을 모두 느낀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일에는 자유가 있다. 보람이 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시간분배와 주도적인 결정권에 나처럼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도전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창업스토리를 조금의 보탬도 없이 적어 가보려고 한다.


엄마와 직장을 모두 잡기 위해 시작한 홈공방 사업이지만 1년을 충실히 운영해 온 결과로 말해보자면 엄마역할 70%, 사업에 50%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120%이냐고?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하고 일하고 일하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야만 하는 날도 많다. 그렇다고 야근수당은 없다. 단지 아이들 자는 시간에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혼자 집에 둬야 하는 그런 불상사는 없다.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처음에는 상품 하나를 만드는데 시간이 그리도 쏜살같이 흘러간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키우면 늦은 아침을 먹자마자 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다. 그때부터는 사실 내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이가 돌아오기 전 딱 한 가지 상품을 완성하는 것조차 시간을 긴박하게 써야 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점심시간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다시 보면, 결국 공방도 일이냐 육아냐의 갈림길에서의 선택인 것 같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홈공방을 차린 주요한 2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나와 아이 모두의 진짜 삶이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내 삶을 살기보다 내 아이를 살아 숨 쉬는 아이로 키우기 위함이 더 컸기 때문에 나는 일보다 육아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내야 했다. 항상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에게 외쳤다.

그럼에도 어쩌다 몰입하다 보면  아이 혼자 덩그러니 있어야 하는 시간이 허다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밀려왔고 그 미안함은 나를 괴롭히는 주된 감정이었다. 그래서 핑계를 찾았다. 같은 공간에 있으며 밥을 차려주고 아플 땐 병원을 맘 편히 데려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전 내 직장과 비교하면 행복이다라고 생각하며 보냈다. 핑계라고 했지만 어쨌든 그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행운이었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은 진짜 교육이었다. 어쨌든 참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홈공방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플로리스트 공부를 할 때는 이름도 멋있는 플로리스트가 되어 꽃집을 차리고 우아하게 꽃을 판매하는 상상을 했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현실에서 불가능이 되었고 우아함 보다는 식은땀 뻘뻘 흘리며 손가락이 부러질 듯 풍선을 만지는 꽃풍선 아줌마가 되었다. 물론 플로리스트들도 엄청나게 고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어쨌든 다행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꽃일을 하는 멋진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홈공방은 모든 것이 어렵다. 작업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도, 내 물건을 알리고 나의 존재와 나의 공방을 알리는 것도 무엇하나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움들 속에서도 나는 집안의 작은 나의 가게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기에.. 당연한 것들을 조금은 수월하게 해 나가며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는 정상적인 직업이기에 말이다.  


꽃풍선의 세계는 우아하지도 않고 싱싱하지도 않고 부자가 되기도 어렵다. 다만 육아에 초점을 두는 엄마 입장에서 그래도 내 일을 할 수 있는 멋진 아줌마가 될 수 있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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