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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시즌의 아유타야

태국, 아유타야

by 져니박 Jyeoni Park

방콕에서 많은 고민 끝에 다음 행선지를 아유타야로 정했다. 뜨거운 열기와 먼지가 열린 창으로 마구 밀려 들어오는 아유타야행 기차 가격은 천 원 남짓,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윙윙거리며 세차게 돌아갔다. 기차는 중간중간 역에 멈춰 섰고 그때마다 먹거리나 물품을 파는 상인들이 올라탔다. 그들은 활기찬 목소리로 판매를 알리며 돌아다녔는데 나는 홀로 눈치싸움을 하기 바빴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지나가 버리고, 또 이다음 더 맛있는 걸 들고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다. 그러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파는 여성을 멈춰 세웠다.


아유타야역에 도착해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중심가로 접어들었다. 날아가려는 모자를 한 손으로 푹 누르며 주위를 살펴보니 사방이 고대 사원들이었다. 그중 숙소 앞에 있는 사원의 탑은 고개를 한참 위로 치켜들어야 꼭대기를 볼만큼 높았고 섬세히 조각되어 있었다. 나는 한나절 숙소에서 더위를 식히다 해 질 녘쯤에 다시 거리로 나왔다. 해는 고대사원들 사이로 크고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길을 걷고 있었는데, 막 수다를 떨다 말고 멈춰 서서 눈을 껌뻑거렸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코끼리 네 마리가 거대한 화물차에 실려 지나가고 풀숲에 거대한 도마뱀이 혀를 날름거려도 행인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반면 그것들을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물왕도마뱀을 보고 코모도 도마뱀이 아니냐며 야단법석을 떨던 내 모습을 지금 돌이켜 보면 웃음이 난다. 정말 그만큼 크고 징그러웠다. 동남아 여행 내내 가끔 왕도마뱀을 목격하곤 했는데, 아무리 익숙해 지려해도 속으로 펄쩍 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며칠간 한적한 아유타야를 즐겼다. 버닝시즌의 뜨거운 열기로 낮에는 숙소 침대에서 뒹굴거리거나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저녁거리를 사러 야시장 나갔다. 분명 각각의 먹거리는 저렴한데,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다 보면 한국에서 한 끼 식사 비용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하루 큰맘 먹고 대낮에 자전거를 빌려 구경을 나갔다. 숨이 턱턱 막히는 중에 고요한 사원을 거닐다 보니 머리가 핑 돌았다. 얼굴은 벌겋게 익어서 자꾸만 갈증이 나는데 물은 뜨뜻했다. 살면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려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번은 나무에 박힌 부처 얼굴상을 보겠다고 찾아다니다 옷이 다 젖어 버렸다. 옷을 비틀면 물이 떨어질 정도였고 수분이 몸에서 너무 급속히 빠져나간 탓에 손발이 저려왔다.


뜨거운 날씨 때문에 애를 먹은 것도 있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에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아유타야역에서 우연히 사진을 찍어준 홍콩 또래 남자애와 야시장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숙소 로비에서 중국 유학 중인 프랑스인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 프랑스인은 할 줄 아는 언어가 많았는데, 그중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어떠한 나라의 언어를 자기가 왜 배웠는지 모르겠다며 툴툴거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코로나 기간 프랑스도 외출금지명령이 한동안 있었는데, 그동안 동거하던 커플들이 함께 지내면서 많이들 결혼하거나 깨졌다나. 자신은 엄마와 같이 지낸 탓에 잔소리를 듣느라 힘들었단다.


그리고 하필 내가 떠나는 날 찾아온 소피.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만난 소피는 네팔로 떠났고 나는 태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만난 것이었다. 내가 더위 속을 헤쳐 나가며 태국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소피는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다가 한동안 몸살을 앓았단다. 나는 소피의 네팔 여행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촉박한 열차 시간 탓에 숙소를 나와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다음 여행지 빡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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