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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와의 방콕 탐방기

태국 방콕

by 져니박 Jyeoni Park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에서 태국 방콕으로 넘어와 처음 묵은 숙소는 한인게스트 하우스였다. 그곳에는 의외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도 많이 묵었지만, 무엇보다 희한했던 건 한국 아저씨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한 번은 새벽에 누군가 들어와 부스럭 거리길래 눈을 떠보니 한 한국인 아저씨가 웃통을 벗고 있었다.

"미안해유, 원래 이렇게 자버릇해서."

말투만큼이나 푸근한 인상을 가진 아저씨는 눈을 뜬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태연히 옆 침대로 들어갔다.


그러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삼십 대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내려와 다른 테이블에 망고 주스를 시켜 앉았다. 큰 키에 묶은 머리, 동그란 안경을 쓴 남자는 사장님과 대화하며 전날 무리한 탓에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왜 따로 앉아 있어, 같이 앉아서 대화도 나누고 그래요."

사장님의 주선으로 나는 그 분과 아침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나는 그분을 션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행히 션님과의 대화는 어색함 없이 흘러갔고 나는 어쩌다 그 분과 카오산로드 근처 탐방을 가게 되었다.


후덥지근했지만 활기가 넘치는 카오산로드였다. 마치 삼촌이 조카를 데리고 다니듯 나는 션님 덕분에 마사지도 받고 유명하다는 끈적 국수도 맛봤다. 그리고 카오산 로드의 메인 거리를 가로질러 민주기념탑까지 걸었다. 션님은 더위에 점점 정신이 혼미한 것 같다고 했다. 동남아에 목티를 입고 오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우린 곧장 아마존 카페로 들어가 더위를 식혔다.


복권 거리를 지나고, 대형개가 지키고 서있는 골목을 지나 개울가를 따라 걸었다. 션님은 여행하면서 알게 된 어떤 분을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게 같이 가지 않으려냐고 물었다. 거기에 정말 젠틀하고 좋은 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궁금함에 함께하기로 했다. 날이 저물었고 우린 각자 쉬다가 게스트 하우스 로비에서 다시 만났다. 거기엔 낮에 들었던 아저씨 한분이 나와계셨다. 잘 손질해 올린 머리에 수염을 조금 기른 아저씨는 정말 듣던 대로 젠틀한 분이었다. 말투는 나긋나긋해서 무언가 이야기할 때 클래식 음악가나 일류 셰프에게 설명을 듣는 듯했다.

나는 그분을 제프 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션님, 제프 님, 그리고 나. 셋이서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제프 님은 젊은 시절부터 방콕에 자주 와본지라 이 구역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나는 그분을 따라다니며 돈주고도 못할 가이드 설명을 들었다. 짜오프라 강부터 마하깐 요새를 지나 삼센 거리가 있는 구역으로 넘어갔다. 제프 님은 한국인들은 잘 모를 만한 맛집이 있다며 우리를 동네 골목으로 이끌었다. 제프 님은 식당 사장님과 그 가족들에게 익숙하게 인사 나눴고, 그분들도 제프 님을 익히 알고 있는 듯 반가워했다. 우린 가정집 분위기의 공간에 둘러앉았다. 제프 님은 능숙한 태국어로 주문했고, 나와 션님은 주문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 감탄만 쏟아냈다.


제프 님 투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다만 이미 처음 간 식당에서 배가 부른 상태라 여러 맛집을 눈으로만 도장 찍듯 지나쳐야 한다는 것이 좀 아쉬울 뿐이었다.

"여기서 잠깐 앉았다 가죠."

밤중에 도로를 건너 제프 님을 따라간 곳은 한 제즈바였다. 공연 시작 전이라 한산한 내부는 여러 레코드 앨범과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제프 님은 역시나 단골인 듯 제즈바 직원들과 사장님에 대해서도 훤히 알고 있었다. 우린 레모네이드와 맥주를 시켜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렸다. 처음엔 노부부 둘이 잔잔한 재즈로 시작해서 밴드가 바뀌더니 스윙재즈를 마구 연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범생이처럼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색소폰을 열정적으로 불어대는 모습을 나는 넋 놓고 바라보았고 매 공연이 끝나면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다. 젬베를 들고 온 손님이 즉흥적으로 합주를 시작했고 내부는 점차 발 디딜 틈 없이 다양한 국적과 인종들로 채워졌다.


"I know you!"

제프 님이 끝무렵에 들어온 노란 머리 남자에게 당신을 안다고 소리쳤다. 알고 보니 '팔라'라는 이름을 가진 보이스 코리아 우승자였다. 공연 끝무렵엔 팔라가 마이크를 잡았고, 원래 기타를 잘 잡지 않는다는 사장님도 합세해 무대는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나 보다 했는데 제프 님이 드러머 뺑, 팔라, 그리고 또 다른 보이스 여성 출연자 '아이스'라는 가수까지 모아 뒤풀이 장을 만들었다. 뒷정리가 한창인 한산한 가게 안에 우린 삥 둘러앉아 몇 마디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제프 님을 보내고 션님과 같이 숙소로 돌아오던 길. 새벽공기가 내려앉아 적막한 길을 돌아오며 우린 넋이 나간채로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말도 안 되는 하루였어."



PS. 사실 그 밖에도 이틀간 그 두 사람을 쫓아다니며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도 나는 골목을 다니며 제프 님의 젊은 시절 방콕 여행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우린 그때 젊은이들처럼 동네 슈퍼 타일 바닥에 앉아 음료를 마셨다. 풍등이 바람에 여유롭게 살랑거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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