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 일출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4시에 몸을 일으켰다. 기껏해야 1시간 남짓 잠을 잔 후였다. 그때 묵었던 호스텔은 여행이래 최악이었다. 모기가 내 침대 주변에만 스무 마리는 족히 날아다녔다. 에어컨은 뜨거운 바람이 나왔고 그 바람에 모기들이 더 활개를 쳤다. 카운터에 컴플레인을 걸어보기도 했으나 사장은 "너희가 문을 너무 열었다 닫았다 해서 그래."라는 뻔뻔한 대답을 내놓았다. 6천 원짜리 방에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나는 투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연신 하품을 해댔다.
"난 고작 10분 잤어."
내 옆자리 소피가 말했다. 소피는 옆침대를 쓰던 룸메이트이자 같이 투어에 참가한 이란계 미국인이었다. 그녀와 간간이 대화를 하는 사이 버스는 캄캄한 길을 한참 달렸고 이내 알 수 없는 곳에 멈췄다. 가이드는 차량 불빛 말고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리라고 했고 나는 무작정 따라갔다. 어둠속에 신발이 직직 끌리는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유명 관광지답게 다양한 언어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가이드는 우리를 어떤 사원 앞에 앉혀 놓고 사라졌다. 그렇게 기다린 지 이십여분이 지나니 서서히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즉석 사진을 뽑아 보는 것처럼 사원의 모습이 선명해졌고 그 위로는 태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더불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변에 있었는지도 깨달았다. 호수를 끼고 웅장히 드러난 앙코르와트의 모습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카메라에 담으려 아우성이었다.
그때부터 사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띄엄띄엄 영어로 된 설명을 알아들으려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혼자 상상도 해가며 계단을 오르고 좁은 통로를 지나다녔다. 분명 흥미롭고 인류 역사상 대단한 유적지가 맞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집에 가고 싶을까. 네 번째 사원을 갔을 땐 그냥 호스텔에 가서 못 잔 잠이나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그저 앙코르와트를 가보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 이후로 태국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씨엠립을 조금 더 돌아다녔는데, 사실 그때의 경험이 더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호스텔을 옮기고 꿀잠을 잤던 것부터, 소피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 아이스크림 집 아르바이트생과 시시콜콜 떠들었던 일, 전통 가옥 식당에서 연꽃밥을 먹고 해먹에서 누워 쉬던 일 등등. 사실 여행에서 행복이란 거창한 것보다 소소한 일들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던 씨엠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