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포트에서 단칸짜리 기차를 타고 시아누크빌역에 내렸다. 역입구에는 툭툭기사들이 먹잇감을 모색하는 하이에나들처럼 진을 치고 있었고 내게도 몇 명이 다가와 목적지를 물었다. 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기사들을 제쳐두고 예약한 툭툭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간신히 찾은 툭툭기사도 출발할 생각은 안 하고 내게 돈을 더 얹어 투어를 가자고 졸라댔다. 결국 진절머리가 난 나는 툭툭 타기를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왔다. 그렇게 삼십여 분간 무거운 짐을 메고 후덥지근한 도심을 걸었다.
시아누크빌 도시풍경은 캄포트 선교사분들께 들은 그대로였다. 사방이 중국어로 된 간판이 걸려있고, 건물 중 다수가 망해 텅텅 비어있었다. 내가 보기엔 중국 그 자체였다. 상인들 대부분이 중국말을 할 줄 알았다. 듣기론 중국인들이 이곳 땅을 많이 사들여서 오히려 원주민들이 도심 외곽에 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대려다 건물공사에 투입시킨 일도 있었고 중국 조폭들도 모여있다고 하니 여러모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아마 꼬롱섬을 가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시아누크빌에 올 일도 없었을 거다. 나는 우울한 도심분위기에 꼬롱섬으로 들어가는 배편을 서둘러 예약했다. 그리고 다음날 배에 올랐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텅 비어있는 시아누크빌의 높은 빌딩들이 멀어졌다. 대신 짙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구름은 얕게 떠다니고 배안은 출렁거렸다. 나는 갑판에 나와 섬이 보일 때까지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 서있었다.
꼬롱섬에 내려 데크길을 걸어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고운 모래에 바닷물은 구술같이 투명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오토바이 한 대를 빌려 숙소를 찾아 떠났다. 생각보다 평평한 포장길에 감탄하며 달리는데 곧바로 내비게이션이 험난한 흙길로 빠질 것을 명령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일단 방향을 틀었다.
울퉁불한 흙길의 끝은 낭떠러지 같은 경사로였다. 나는 오토바이를 멈추고 한참 아래 마을을 바라보며 갈등했다. 가파른 돌밭길을 과연 이 오토바이를 끌고 갈 수 있을까. 갈까 말까 하는 중에 오토바이는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멈춰 서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시 올라가려면 후진을 해야 하는데 오토바이가 이렇게 무거운 줄은 처음 알았다. 혼자 밀어보려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멀리 백인 커플이 경사로를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경사로 중턱에서 태연한 척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들도 가파른 경사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걸어 내려갔다 오는 길이었다. 커플은 내 오토바이를 다시 평지로 끌어내는 것을 도와주었고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다른 길도 알려주었다. 나는 숨을 돌리며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길을 묻고 또 묻고, 몇 번을 헤매긴 했으나 결국 산 중턱에 있는 숙소를 찾아냈다.
숙소 직원은 경사마다 설치돼 있는 텐트 중 하나를 내게 내주었다. 바닷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배경을 가진 텐트에서 하룻밤이라. 낭만은 넘쳤지만 이곳까지 오는데 길을 헤맨지라 진이 빠졌다. 나는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아까 봐놓은 식당을 찾아갔다. 신선한 코코넛 주스와 갓 튀긴 프렌치 프라이드로 배를 채우고 한적한 해변가로 나갔다. 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사장에 앉아 풍경을 즐겼다. 왼편 멀리 딸과 함께 온 엄마는 야자수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딸은 홀로 물장구를 쳤다. 오른편 멀리는 사람들이 물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 걱정할 것 없는 평화롭고도 풍요로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온전히 그 축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잔잔히 밀려와 나를 건드려 댔다.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즐겨도 되는 것일까. 이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갔을 때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쓸데없는 걱정들이 내 여유로움을 마구 파고들었다.
"낮잠이나 자자."
생각이 복잡할 땐 자는 게 최고다. 나는 모래사장 한편에 마련된 비치배드를 찾아가 누었다. 푸른 하늘에 야자수 나무가 기분 좋게 몸을 흔들었다. 서서히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