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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산에서 생긴 일

사람도 물자도 풍부한 도시 캄포트

by 져니박 Jyeoni Park

자정이 되어서야 버스는 몬돌끼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니 승무원은 낯선 여성이 누워있는 2층자리에 나를 배정해 주었고 나는 어색하게 그녀 옆에 누웠다. 버스는 곧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어찌나 세게 틀었던지 얇은 이불로는 도저히 추위를 막을 수 없어 기사가 볼일을 보러 차를 멈춰 세운 동안에 나는 짐칸에서 침낭을 찾아 덮어야만 했다.


프놈펜에서 경유하여 캄포트까지 내려왔다. 캄포트의 명물, 두리안 동상이 있는 회전차로를 걷고 있을 때 내 모습은 거지가 따로 없었다. 밤새 씻지 못해 얼굴엔 기름이 흘렀고 몸은 땀과 먼지로 뒤엉켜 끈적거렸다. 그래서 숙소에서 말끔히 씻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 그 기분은 지금도 황홀하게 기억된다. 보송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노을 진 강가엔 사람들이 여기저기 걸터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길거리 노점에서 볶음국수를 하나 시켜 강을 바라보며 먹었다. 왠지 여기에 오래 눌러앉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벨기에에서 온 친구 민


캄포트에 있는 동안 나는 한 게스트 하우스 2층 침대를 아지트 삼아 지냈다. 그간 많은 게스트들이 들어오고 나갔으나 얼굴 한 번을 못 본 이들도 있었다. 그날도 게스트들이 모두 외출했을 때었다. 나는 혼자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Hi"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에 까무잡잡한 남자가 상의를 탈의하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미안,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

나는 노래 부른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게 민을 알게 된 계기 었다. 민은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디서 왔어?"

여행자들의 대화는 늘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그가 동남아 쪽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벨기에에서 왔다고 했다. 유럽에 한 번도 간 적 없는 나는 벨기에 사람이 내심 신기했다. 민은 여행 중 만난 프랑스 친구 둘과 카약을 타러 간다며 내게 합류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른 보트 투어를 하고 왔기에 사양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만나는 일이 없었다.


보코산을 올라가려던 계획이 모두 무산되어 짜증만 잔뜩 오른 날이었다. 동네 공원을 몇 바퀴 뛰고 들어와 씻고 나오니 민이 방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저녁에 동네 구경을 같이 나갔다. 그 덕분에 아목(코코넛이 들어간 치킨/ 생선 수프)이라는 캄보디아 전통음식을 먹어보고, 혼자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화려한 펍에 들어갔다. 우리는 레모네이드 두 개를 시키곤 루프탑에 앉았다. 여행자들의 대화가 재밌는 이유는 서로의 세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민이 사는 세상에 대해 흥미롭게 들었다. 민은 베트남 이민자 어머니를 두고 있었고, 어려운 형편에 있었지만 스스로 집을 얻어 독립했다고 했다. 벨기에 친구들은 스무 살이면 대부분 독립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한국은 보통 휴가가 며칠이 되냐는 민의 물음에 나는 일주일?이라고 말했다. 민은 다소 놀란듯했다. 매체에서 유럽은 보통 한 달씩 쉰다고 듣긴 했으나 실제 그렇다니 어딘가 부럽고 씁쓸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을 밖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려니 집값도 비싸고 경쟁도 치열하구나. 그래서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슬퍼지기도 했다.




# 캄포트 선교사 부부


나는 여행 중 주일이 되면 종종 현지 교회를 찾아가곤 했다. 그중 캄포트에서 만난 선교사 부부는 지금도 가끔 기도하게 되는 분들이다. 나는 아직도 처음 그 교회를 찾아갔던 날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아침부터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간 동네에 자갈밭이 깔린 교회 건물이 있었다. 처음엔 필리핀 선교사 한 분이 나와 내게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예배드리러 왔어요. 한국분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내가 대답하자 필리핀 선교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미스터 리! 하며 나를 안내했다. 그렇게 한국인 선교사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분들은 내가 혼자 이곳까지 온 사실이 신기했고, 나는 이곳에서 사시는 이분들이 신기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이제 여기가 오히려 편해요. 한국에 들어가면 빨리 이곳에 오고 싶어."

나는 여러모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그분들은 크메르어도 한마디 하지 못했고 교회 건물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캄보디아 아이들을 모아놓고 현지어로 예배를 드리고 교회 건물에 기숙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깊숙한 동네까지 들어가 또 예배를 드리고 간식을 나눈다고 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예배하러 가시죠."

나는 크메르어로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했다. 가사는 알아들을 순 없으나 한국어로 익히 알고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말씀을 읽는 중에도 부부 두 분은 크메르어 성경을 막힘없이 읽어 나가셨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까.

예배가 끝난 후에는 한국에서 가져오신 반찬들로 점심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 기분에 나는 신이 났다. 내가 밥 한 그릇을 비워갈 때쯤 창문 너머로 아이 두 명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쟤네 왔네. 도넛을 후식으로 먹어봅시다."

남편 선교사분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었났다. 그리곤 익숙한 듯 도넛을 아이들에게서 사들고 들어왔다. 아이들 할머니가 이렇게 종종 도넛을 만들어 팔러 보낸다는 것이었다. 남편분은 도넛과 함께 마실 커피를 끓이셨고 나는 아내분과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다시 식탁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따듯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얼마나 해외 선교가 어려운 일인지 어렴풋이 느꼈다. 선교사님 부부는 이곳에 아무리 오래 살아 주민들과 친해졌다고 해도 결국 그들에겐 이방인일 뿐이라고 했다. 거기다 빠르게 확산되는 이슬람교, 한국 선교사들의 불화합 같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현재도 예배의 자리를 지켜나가고 계시다는 것이 아닐까. 나는 망고를 한 아름 받아 들고 오는 길에 과연 나라면 낯선 땅에 살며 평생을 헌실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보코산에서 생긴 일


보코산은 캄포트에 왔다면 꼭 가봐 할 국립공원이다. 거기엔 알포인트 영화 촬영지이자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버려진 폐건물들이 곳곳에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몇 번의 고심 끝에 그곳에 올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 하기도 으스스하기도 하다. 데이터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오토바이를 끌고 산길을 올랐다. 다행히 도로 사정은 좋았고 날씨도 쾌적했다. 그렇게 올라는 중에 가드레일에 태연히 앉아있는 원숭이를 마주쳤다. 처음엔 자연 속 원숭이가 어찌나 신기하던지. 어느 구간은 풀숲과 전신줄에 원숭이가 바글바글 모여있는데 달려들까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마오할머니라고 부르는 거대한 동상에 이르렀을 때다. 듣던 대로 날씨는 변덕이 심해 짙은 안개가 밀려왔다. 축축한 공기 속에 근처 왕의 별장으로 쓰였던 폐가에 들었갔는데 대낮이라고 하더라도 기괴한 낙서와 여러 물건들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느낌은 폐교회와 호텔까지도 이어졌다. 인적이 드문 고원 한 복판에 이끼가 잔뜩 낀 교회, 눅눅한 냄새, 녹물이 흘러내린 호텔. 알포인트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얼마나 공포스러운 내용일지 짐작이 가는 배경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무사히 국립공원 입구를 빠져나왔을 때다. 잠시 지도를 보려고 한쪽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당황스러움에 나는 곧바로 렌털샵에 전화했고 위치를 알렸다.

"주변에 현지사람 좀 바꿔줘요."

직원은 영어 소통이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사람을 바꿔달라고 했다. 길 한복판에서 보이는 사람이라곤 앞에 음료를 파는 노점 아주머니와 손님뿐이었다. 나는 근처 주유소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손님에게 전화 좀 받아볼 것을 부탁했다. 그때부터 내 오토바이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점 아주머니, 주유소 직원 둘, 길 가다 멈춘 행인 여럿이 내 오토바이를 여기저기 만져봤다. 그러다 어떤 손잡이가 안 올라가는 일이 생겨 벽돌로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렌털샵에 전화했고 결국 직원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감사한 마음에 노점 아주머니께 음료를 사서 도와준 분들께 돌렸다. 그리고 돌아와 혹시나 하여 다시 시동을 걸어보는데 시동이 걸린다!


아무래도 산길을 오르느라 엔진이 과열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직원이 도착해 오토바이를 바꿔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반납할 때 사장이 내게 불편을 겪게 해 미안하다며 슬며시 하는 말.

"보코산의 귀신이 그랬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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