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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바나나!

캄보디아 몬돌끼리 코끼리트레킹

by 져니박 Jyeoni Park Dec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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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내가 나가있는 사이에 집 근처에는 황톳길이 생겼고 엄마는 저녁에 운동삼아 그 길을 걷자고 했다. 사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축축하고 찐득거리는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게 영 찝찝했다. 그래서 얼마 걷지 않고 발을 씻으러 수돗가로 갔다. 거기서 발을 말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지. 캄보디아 몬돌끼리에서는 코끼리 똥도 밟고 다녔는데.'

발이 다 말라 보송해져 갈수록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크라티에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점심쯤 몬돌끼리에 내렸다. 배낭 양쪽에 간식봉지를 주렁주렁 달고 이십여 분을 걸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도로는 한적했다. 땡볕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도착한 숙소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사장님이 나왔다. 실크 셔츠가 잘 어울리는 사장님은 숲을 마주 보고 나열된 로지 중 하나를 내게 내주었다. 온통 나무로 지어진 집이었는데 앞에는 흔들의자와 해먹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근사한 집을 만 원대에 얻게 되다니 뿌듯한 마음으로 해먹에 누었다.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조여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 왔으면 좋았을 사람들이 생각나고 막막한 미래에 대한 잡생각이 밀려들어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돌이켜 보면 그 근사한 나무집에서의 시간은 악몽 같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곳에서의 삼일이 지독하게 외로웠으니까. 마치 섬에 고립된 사람처럼 홀로 밥을 먹고 쌀쌀해진 밤에 침낭을 파고들면 옆집에서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곤 했다. 그럴 때면 고독함이 들면서도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마냥 혼자 지낸 것도 아니었다.  숲에 지어진 나무집 특성상 작은 야생동물들이 불쑥 들어오곤 했다. 어느 날밤은 개코 도마뱀이 기둥사이로 들어와 한참을 막대로 쫓아내느라 난리 법석을 피웠다. 그리고 한 번은 외출하고 들어와 보니 화장실에 갈색 개구리가 들어와 있었다. 샤워기로 쫓아내려 막 물을 뿌리는데 그 친구도 당황한 나머지 내게 튀어 올랐다. 으악! 나는 개구리와는 결국 그 집에서 짧은 동거를 했다.




내가 몬돌끼리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코끼리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였다. 투어를 신청하면서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트레킹을 할 만한 신발이 없다는 것이었다.

"관광객들이 버린 신발들 많으니까 하나 골라 신어."

숙소 사장님의 말에 창고로 가보니 정말 신발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나는 거기서 마치 누가 나를 위해 준비라도 한 듯 꼭 맞는 신발을 발견했다. 양쪽 새끼발가락에 구멍이 뚫리긴 했어도 걷기에 전혀 문제없는 뉴발란스 운동화였다. 나는 그걸 신고 다음날 아침 투어에 참가했다. 가이드는 지프차에 관광객들을 한가득 싣고 수직에 가까운 경사길을 잘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렇게 멈춰 선 오두막 캠프에는 번듯한 외모의 부농족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배려심 넘치는 제스처와 말투로 관광객들에게 투어를 설명했다. 현재도 코끼리들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학대를 당하고 있는지, 이곳 코끼리들이 어떻게 구출되었는지 같은 이야기였다. 다들 설명을 편하게 듣는 와중에 나는 홀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부족한 영어에 혼자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브리핑이 끝나고 청년은 우리에게 바나나를 한 송이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산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풀숲을 헤치고 어느 지점에 이르자 청년은 멈춰서 소리쳤다.

"소피-바나나!"

다들 숨죽여 기다리는 중에 정적이 흘렀다. 청년이 두어 번 더 부른 끝에 갈대숲 사이로 거대한 코끼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피라는 코끼리는 익숙한 듯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와 바나나를 받아먹었다. 다 먹고도 더 달라며 코를 여러 사람에게 내밀었고 내 옷엔 진득한 침을 묻히고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세 마리의 코끼리를 더 만나 바나나를 주었다. 육중한 몸체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무섭진 않았다.

점심을 먹고는 코끼리와 목욕시간도 있었다. 가이드는 코끼리 두 마리를 다시 불러 모아 개울가로 인도했다.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은 하나둘 물가로 뛰어들었고 코끼리도 바나나에 이끌려 기둥만 한 발을 한 발씩 물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미끌거리는 돌들에 휘정거리고 허우적 대며 먼발치서 청년과 장난치는 코끼리들을 구경했다. 청년은 내게 손짓하며 가까이 와 등을 만져보라 했다. 어렵게 닿은 코끼리 등의 촉감은 억센 털들에 거칠 거리고 단단했다.

"웁! 푸!"

코끼리 뒤에서 헤엄치던 여자 둘이 갑자기 경악을 하며 달아났다. 물길에 코끼리 똥이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바람에 다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코끼리를 만나고 다음날 트레킹을 신청한 사람 넷이 남아 캠프에서 저녁을 보냈다. 나를 제외한 셋은 모두 프랑스인으로 둘은 커플이고 하나는 나처럼 혼자온 여자였다. 우리는 대나무 수프를 함께 만들면서 대화를 텄다. 같이 식사를 하고 전통주를 벌칙으로 건 카드게임도 했다. 그러다 별을 구경하곤 잠자리에 들었다. 모기장이 쳐진 해먹에서 자보는 건 처음이었다.

다음날 바나나 팬케이크와 커피 한잔을 아침으로 먹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거리 계산이 잘 안 되는 나는 18km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1.5리터 생수 두병을 각 사람당 챙겨 주는 걸로 봐선 그리 짧은 거리는 아닐 것 같았다.

"스네이크!"

캠프를 떠나 숲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초록뱀을 목격했다. 가이드는 독이 있는 위험한 뱀이라고 했다. 나는 뒤에서 겁이 나 주춤거리는데 커플 중 한 명은 귀엽다며 가까이 다가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제 코끼리와 걸었던 익숙한 길을 지나갔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전 농업을 하는지 모두 불에 타버린 붉은 대지를 한동안 걷기도 했다. 가이드는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식물들을 설명해 주고 대나무잎으로 새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한 폭포가에 이르렀다. 마치 천장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곤 모두 환호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물가로 뛰어들어 더위를 씻어냈다. 물놀이를 하고 먹게 된 점심. 다 식어버린 밥과 야채, 딱딱해진 고기였지만 여행 중 가장 맛있게 먹은 식사로 기억한다.

그 후로도 거의 다섯 시간가량을 더 걸었다. 폭포를 한 번 더 만나고 정글 같은 산속을 지나다 보니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부농족의 전통 가옥도 있었지만 현대식 집들도 많이 지어진 마을 끝자락에서 가이드는 다 왔다고 선언했다.

"We made it! (우리가 해냈어!)"

우리는 땀과 진흙으로 얼룩진 모습으로 다 같이 기뻐했다. 가이드 집 벤치에 앉아 기다리니 어제 타고 온 지프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섞여 숙소로 돌아와 작별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산길을 오르며 생긴 유대감에 헤이짐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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