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크라티에
일곱 시에 출발한다던 크라티에행 봉고차는 여덟 시가 넘어 프놈펜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베트남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포장도로는 사치인 듯 붉은 흙길이 중간중간 이어졌다. 처음엔 한 할머니와 내가 타 있었는데, 운전기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람을 계속 태웠고 도착 한 시간 전에는 더 이상 탈자리가 없었다. 내 옆자리 할머니는 기사에게 무어라 말을 했고 중간에 호박 같은 걸 파는 노점에 멈춰 섰다. 불어난 인원 때문인지 오래 달린 탓인지, 시원하던 차 내부는 어느새 더운 바람이 불었다. 메마른 붉은 흙길이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가운데 조그만 아이가 마구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그 광경에 숨이 막혔다. 내가 저길에 혼자 떨어진다면 금방이라도 메말라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 크라티에에 도착했다. 메콩강이 바로 앞에 보이는 도로는 과장된 말로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무래도 살을 쪼는 더위 때문인 것 같았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예약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창살 바로 건너편엔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이 바로 보였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들의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복도로 나갔을 땐 따뜻한 노을빛이 타일에 비추어 나를 테라스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메콩강의 해 질 녘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하게 타오르는 해를 따라 일렁이는 강물은 마치 본 적도 없는 인어공주의 비늘 같았다. 나는 홀린 듯 숙소에서 나와 강이 잘 보이는 턱에 걸터앉았다.
"거긴 돌고래 말고는 볼 게 없어."
내가 크라티에에 오기 전 투어사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오긴 했지만 사실 정보도 많이 없던 이곳에 오는 과정이 두렵고 겁도 났다. 그러나 메콩강의 노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옳게 느껴졌다. 나는 한참 그곳에 앉아 있었고 날은 어둑해졌다. 마을 한가운데 야시장이 열리고 도로가 북적거렸다. 낮에는 볼 수없던 주민들이 메콩강가로 나와 선선한 밤공기를 즐겼다.
크라티에에 오기 1년 전,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여행계획을 짜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어딜 가야 할지 찾아보다가 알게 된 크라티에는 메콩강에 사는 돌고래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호기심이 들었을 뿐 내가 정말 그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보진 못했다. 특히 그 돌고래를 보러 가려면 중심지에서 족히 삼십 분은 차로 가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난 크라티에에 와있었고 돌고래를 보러 가야 했다.
무얼 타고 가야 할지 생각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한산한 도롯가였다. 더운 날씨 때문에 낮에는 차도 잘 다니지 않는 도로는 내게 좋은 오토바이 운전 연습장소가 되어주었다. 2종 소형면허는 있지만 한 번도 한국에서 오토바이를 타본 적 없는 나였다. 숙소에서 오토바이를 빌리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짧은 코치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앞 도로를 몇 바퀴 돌면서 감을 익혔다. 한동안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러다 이내 자전거와 같은, 어쩌면 자전거 보다 더 편리한 조종법에 신이 나서 길을 떠났다.
금세 도로는 흙밭으로 진입했다. 나무로 지어진 가옥들이 양쪽으로 이어진 도로에 차 한 대가 앞서 갈 때마다 흙먼지가 폭풍처럼 내 시야를 덮쳤다. 어떤 구간엔 주민들이 나와 먼지를 잠재우려 물을 뿌렸다. 돌부리에 바퀴가 덜컹 거리는 길을 삼십여분 달렸을 때 돌고래 동상이 나타났다.
오토바이를 주차시키고 노란 보트에 올라탈 때까지 나는 돌고래를 볼 수 있을 줄 몰랐다. 혹시 보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미리 나를 체념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나간 지 오분도 채 되지 않아 돌고래 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하나에서 둘이 되었고, 어느 순간 넷이 동시에 올라왔다.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구름사이로 햇살이 조명처럼 메콩강을 비추고 그위로 돌고래의 지느러미가 솟구쳤다 사라졌다.
고작 이틀이었지만 애용하던 옥수수 집이 있었다. 서글서글한 청년이 운영하는 길거리 가게였는데, 옥수수 간이 잘 맞아 돌고래를 보고 오던 날도 후식으로 사 먹으러 갔다. 그런데 그날은 다른 청년이 나와 가게를 보고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주문했고 계산을 할 때쯤 어제 본 청년이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어제와 같이 금액을 받으려고 하니 옆에 있던 청년이 그를 말렸다. 그리고 내게 돈을 더 받았다.
만일 내가 하루종일 오토바이를 운전한다고 진을 빼지 않았더라면 따지고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나는 힘이 없었고, 고작 오백 원에 감정이 상하고 싶지 않았다. 내 오백 원이 그들의 삶에 조금 보탬이 된다면, 한 번쯤 호구가 되어주리라. 그러면서 아직도 그 서글서글한 청년의 양심적인 눈빛을 잊지 못한다. 비록 나를 속인 이들이지만 그들의 삶이 평탄하길 기도하게 되던 순간이었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컴컴해진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밤은 새로운 홈스테이로 숙소를 옮겼던 날이었다. 분명 저녁을 먹고 왔다고 했건만 호스트는 내 밥까지 요리를 해 내왔다.
"아까 저녁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
옆에 프랑스 투숙객이 내게 슬쩍 물었다. 내가 당황한 말투로 그렇다고 하자 그 투숙객은 웃으며 "괜찮아. 내일 아침까지 먹어두는 거지 뭐."라며 말했다. 브로콜리 닭볶음 요리를 간신히 먹을 때쯤 호스트는 과일주를 내왔다. 그리고 한 모금 마셨을 때 전통의상을 입은 집주인 딸이 내려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엔 전통춤을, 나중엔 마카레나 음악이 나왔을 땐 백인 투숙객 여럿이 나와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박수만 좀 칠 뿐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좀 배워 놀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약간의 해프닝도 있었다. 내 방에서 나가려고 보니 문고리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호스트에게 전화했고 아내가 와서 조그만 잠금장치로 어떻게 여는 줄 알려주었지만 아직도 알 수없다.
그날밤 기억나는 건 내 방에 들어와 계속 호신용 호루라기를 달라고 손짓하던 주인집 아들, 붉은 꽃무늬 이불, 기분 좋게 더위를 식혀주던 선풍기 바람, 빔 늦도록 울려 퍼지는 동네잔치 음악 같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