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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블루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프놈펜

by 져니박 Jyeoni Park Dec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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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놈펜에 있는 동안 여성도미토리 2층 침대에 머물고 있었다. 맞은편 침대 1층엔 장기 투숙객처럼 보이는 한 동양인 여성이 있었는데, 온종일 잠만 잤다. 내가 아침에 나가 오후에 들어올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 그대로였다. 그러다 내가 기척을 냈고 그녀는 잠이 깼는지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이에 놀라 행동을 조심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화가 났다.

'왜 내가 똑같이 돈 주고 묵는 방에서 얹혀살듯 굴어야 해?'

그 방은 정말 그녀의 자취방이라도 되는 듯했다. 세면대엔 그녀의 생활용품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죄다 그것들이 일본어로 쓰여있는 걸 봐선 그녀가 일본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밤만 되면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도 변변치 않는 골목을 이 시간에 혼자 나가다니, 생각만 해도 내겐 살이 떨리는 일이었다.

그러다 그녀와 드라이기로 인해 말을 섞게 되었다. 숙소에서 제공한 듯 놓인 드라기 또한 그녀의 것이었고, 내가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리고 나오자 그녀가 딱딱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이 드라이기 내 거야."

나는 사과를 하곤 드라이기를 고이 접어 제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몇 마디 대화가 오갔다. 그녀는 일본인이 아닌 베트남인이었다. 그리고 중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왔는데 도착한 당일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예민한 그녀를 이해하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내 드라이기 써도 돼."

그간의 숙면으로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아님 나와의 대화가 나쁘지 않았던 것인지 그녀의 말투는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내가 여행한 도시 중 프놈펜은 두 번째로 우울한 곳이었다. 길거리에 맨발의 걸인들과 젖먹이 아이를 안고 차들에게 손을 벌리는 여자가 있는 길을 지나니 담장이 높게 세워진 부촌 나왔다. 말끔하게 옷을 입은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놀거나 근처 노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렸다. 단지 몇 걸음 더 걸었을 뿐인데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듯 세상이 휙휙 변했다.


왕궁 근처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더운 날씨 탓인지 갈증이 났다. 나는 건너편 쓰레기통이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에 앉아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청년이 건너편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걸어오더니 손을 통 안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쓸만한 것이 없는지 음식물 뭍은 손을 털었다. 광경을 지켜본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나이도 나와 비슷해 보이는 저 청년은 무엇 때문에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는가. 나는 한동안 불공평해 보이는 이 세상에 대한 고뇌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시내버스를 타고 킬링필드(급진좌익무장 단체 ‘크메르루주’가 집권 후 반대 세력을 대량 학살한 역사적 현장)에 갔을 때다. 그저 대학살 장소였다는 정보만 가지고 간 곳은 겉보기에 평화롭기 그지없는 공원이었다. 푸른 잔디가 깔려있고 고요한 가운데 새가 지저귀었다. 나는 매표소에서 함께 준 오디오 가이드 헤드셋을 쓰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옆에 보이는 식물의 줄기를 잘 봐주십시오. 상어이빨같이 날카로운 줄기는 이곳 사람들이 닭을 잡을 때 쓰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학살 시기에 무기가 부족하자 그들은 이것을 사람에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잔디로 덮인 이곳은 한때 수많은 시체들을 묻었던 장소로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악취가 심했고 땅이 부패로 인해 부풀어 올라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뼈를 발견하시거든 그대로 두십시오. 저희 관리자가 알아서 처리할 것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걸음을 옮길수록 평화로운 장소가 서서히 끔찍한 현장으로 변해갔다.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흘러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밤마다 틀었다던 기괴한 노래, 그동안 발견된 뼛조각과 옷 무더기들. 나는 이것들을 직접 보고 들으며 인간의 악과 잔혹함의 극치를 마주했다. 점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게 더위 때문인지 끔찍한 참상을 알게 되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가이드가 지시한 대로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마지막으로 위령탑에 들어갔다. 수없이 쌓인 해골들이 그때의 일들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곳곳에 구멍이난 머리뼈들을 살피며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듣기로 대부분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손이 무르다하여, 안경을 썼다 하여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정작 이를 주도한 장본인 폴 포트는 끝까지 호의호식하며 생을 마쳤다는 결론이었다. 


킬링필드를 나와서도 나는 인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삼십여분 가량 더위 속에서 허덕이며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버스에 올랐다. 다정한 아빠 옆에 눈이 동그란 아이가 계속 뒤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웃으며 손을 흔드니 아이도 조그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버스 안은 운전기사와 승객들 간에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로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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