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름다울수록 고독한 2

캄보디아 휴양지 꼬롱섬

by 져니박 Jyeoni Park

파도소리에 잠을 깼다. 텐트에서 나오니 동이 트고 있었다. 나는 부스스 해변가로 내려와 비치베드에 몸을 기댔다. 다소 쌀쌀한 바람이 파도를 타고 불어와 닭살이 돋았다. 그런데도 한참을 있었다. 대단하고 희망찬 풍경은 아니었다. 다만, 한국에서 봤던 해와 비슷해서 고향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숙소 식당에서 펜케이크를 큰맘 먹고 시켰다. 식탁에 흘린 시럽에 개미 때들이 모여들어 단물을 빨아먹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옆 해먹에 누웠다. 선풍기 소리가 윙윙거리고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쉼을 가지다 다시 짐을 꾸렸다. 어젯밤 알아둔 어촌마을에 하룻밤 묵기 위해서였다. 나는 하루사이에 익숙해진 험한 길을 넘어 다시 잘 닦여진 도로로 나왔다. 무성한 풀숲에 멀대같이 서있는 열대 나무 한그루, 내 앞으론 노란 툭툭이 털털거리며 길을 달렸다.


꼬롱섬의 어촌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강을 끼고 줄지어 지어진 수상가옥에는 차대신 보트 한 대씩이 집 앞 강가에 매어져 있었다. 내 숙소는 마을 깊숙이 더 들어가야 했는데, 이 또한 바닷가에 근접한 수상가옥이었다. 숙소까지는 데크길이 이어져 있었고 나는 아슬아슬 오토바이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서양인 아저씨가 집에서 나와 뒤로 물리라고 손짓했다. 나는 곡예하듯 오토바이를 다시 데크길 밖으로 몰았고 근처에 주차했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캄보디아 여성과 결혼해 이곳에 숙박업을 차린듯했다. 매너 있고 차분한 사람이었지만 어딘가 취해 있는 사람 같달까. 아무튼 나는 그 아저씨에게 침대를 배정받았다.


해 질 녘이 되어 나는 오토바이를 몰고 바닷가로 나갔다. 일몰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한적한 곳을 찾았다.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현지인 여자가 나무 아래에서 해변가에서 장난치는 아이 두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혼자 그러고 있으니 드라마에서 보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인물 같기도 하고, 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모래사장에 웅크려 앉아 해가 떨어지기 만을 기다렸다. 노을이 물들어 갈수록 고독함만 더해져 갔다.


샤워를 하고 동네 식당에 갔다. 입구부터 아이들이 나를 에워싸고 그중 한 명이 영어로 된 메뉴를 내밀었다. 나는 캄보디아식 스테이크 록락을 시켰다. 기다리는 사이 아이들이 내 주위에서 장난을 걸었다. 나도 같이 맞장구 쳐가며 같이 사진도 찍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 얼마나 있어와 같은 질문이었지만 가족끼리 운영하는 듯한 식당에서 잠시 훈훈한 시간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입구에 신발 한 무더기가 쌓여있었다. 알고 보니 캄보디아 어느 대학에서 엠티를 온 듯했다. 침대에 틀어박혀 있을래도 낭만 있는 기타 소리와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나가 구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열 시가 넘도록 먹고 마시고 노래했는데, 마지막엔 무슨 패션쇼까지 했다. 나는 한참 그 광경을 구경하고 같이 환호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 백인 여성 한 명이 밤중에 나를 흔들어 깨웠다.

"플리즈, $%#, 빅 쉿!"


비몽사몽 나는 영어를 알아들으려 했지만 처음엔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내게 화장실에 있는 똥 좀 치워달라고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내가 한 거 아니야."


나는 잠이 덜 깬 채 대답했다. 그러자 다소 무례하던 여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내게 사과했다.


"미안, 투숙객이 너랑 나밖에 없어서 네가 그런 줄 알았어."


추측 하건대 중간에 들어온 한 낯선 아저씨가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동으로 물을 퍼다 내려야 하는 이곳 변기 시스템은 우리의 요령으로는 내릴 수 없었고, 결국 다음날 아침 베테랑 아주머니가 처리한 후에야 우리는 볼일을 볼 수 있었다. 그사이 그 여성과 나는 알게 모르게 변기 유대감 같은 것이 생겼고 변기가 깨끗해졌을 때 같이 환호하던 기억이 난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꼬롱섬의 해변가는 모조리 돌았다. 그 길들은 대부분 험하고 가팔랐다. 몇 번 구르고 뒤집힐뻔하며 섬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처음 내렸던 선착장에 돌아와 또 다른 작은 섬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끝났어."


알고 보니 가려던 섬에 들어가는 배는 하루에 한대뿐이란다. 그렇게 나는 강제로 다시 육지로 나가게 되었다. 원래 있던 시아누크빌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앉아 벌겋게 타버린 허벅지에 마스크팩을 붙였다. 따끔따끔한 게 아렸지만 어딘가 안심이 되기도 했다. 꼬롱섬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어딘가 외롭고 열악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름다운 곳일수록 험하고 고독한 길을 지나와야 한다는 것을.




keyword
이전 22화아름다울수록 고독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