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수상버스를 타고 카오산로드에서 왓포사원 근처로 내려왔다. 날은 어둑해졌을 때였고 골목 사이사이로 빛나는 사원들에 자꾸만 한눈이 팔렸다.
"하이 하얼유? 얼 유 타이얼?"
좁고 가파른 숙소 계단 한 층을 올라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다. 카운터 직원이 밝고, 한편으론 푸근하게 인사를 건네어왔다. 그게 미(Mee) 이모와의 첫 만남이었다.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미 이모는 처음부터 남다른 발랄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모는 계단을 신이 난 소녀처럼 뛰어올라 나를 옥상으로 이끌었고 멋진 야경을 소개해 주었다. 정말 사진에서 보던 대로 왓포 사원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반대편엔 강을 끼고 황금빛 왓아룬이 보였다. 나는 그곳이 무척 마음에 들어 그날부터 옥상을 아지트 삼고 지냈다. 밤마다 올라와 두유 한 병씩을 홀짝이며 경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계속 눌러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근처 탐방을 하고 저녁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는 퇴근하는 미이모를 길에서 만났다. 이모는 나에게 내일 투어를 시켜주겠다며 연락처를 교환해 갔다. 그로부터 다음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이모를 숙소에서 다시 만났다. 이모는 왓아룬에 가자며 나를 근처 선착장으로 데리고 갔다. 가는 중에 제단에 올리는 꽃도 하나 길거리 할머니에게 구입했다. 날씨는 완벽했다. 푸른 하늘에 깨끗한 햇살이 비추는 짜오프라 강가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배들로 생동감이 넘쳤다. 나는 이모를 따라 배에 올랐고 나란히 걸터앉아 경치를 구경하는 동안 왓아룬이 가까워졌다.
보아하니 이모는 이곳에 자주 기도를 하러 오는 듯했다. 나는 사원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며 기도 하는 이모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모는 부처님 뿐만 아니라 라마왕을 모시는 제단에도 기도를 드렸는데, 나는 그곳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제단 뒤에는 왕이 쓰던 침대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이 그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생소한 광경인지 이모에게 물으니 행운을 얻으려면 이 침대 밑을 세 번 기어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며 내게도 해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나는 졸지에 왕의 침대 밑에서 포복을 시작했다. 한 번 기어들어갔다 나와 부끄러운 마음에 그만하겠다고 하니 이모는 내게 두 번을 마저 채우라며 재촉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번 더 그곳에 기어들어 갔다.
그 후로도 이모의 현지인투어는 이틀간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사실 대부분 간 곳은 시장이었는데 어찌나 먹거리가 많은지 이모는 내내 내게 "이거 먹어볼래?" 그랬고, 나는 배를 문지르며 "배불러요."라는 말을 연신 해댔다. 나는 여행 중에 6킬로가 쪘는데, 추측하기론 상당수 살이 이때 붙은 게 아니가 싶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양손에는 음식 봉지가 한아름 들렸고 그럼에도 이모는 숙소에 잠깐 들렀다 나를 데리고 또 밖으로 나갔다. 사원부터 시작해서 수상시장, 백화점, 쭐라롱껀 대학로 까지. 먹고 돌아다니고 또 먹었다.
그날도 어느 백화점 푸드 코너에서 어김없이 음식을 잔뜩 풀어놓고 이모와 밥을 먹었을 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서툰 영어에 어떻게 깊은 대화를 나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모는 내게 남편과 이혼하고 딸 한 명을 키우고 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 얼굴은 변함없이 인자하고 밝았지만 그렇기까지 무수히 어려운 시간들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북적거리는 태국 방콕의 어느 푸드코너에서 아주 일상적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사람 사는 거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베트남 터 언니네에 이어 태국에도 엄마 같은 존재가 생겼다. 내가 태국 동남부를 여행하고 송크란 기간에 방콕으로 돌아왔을 때 물총이니 안경이니 바리바리 손에 쥐어주고,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를 배울 땐 무에타이 티셔츠를 택배로 부쳐준 미 이모. 지금도 한국에 돌아와 가끔 통화하며 일상을 나눈다. 이모는 내게 여전히 활기찬 방콕의 길거리를 보여주고 나는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한적한 거리를 보여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