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빈 깡통 도시만을 줄 곧 여행하니 말레이시아엔 가 볼 만한 곳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포에서 높은 산길을 달려 들어가니 여기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구나 싶었다. 현지인 외국인 할 거 없이 관광을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그간 거쳐온 어느 도시들 보다도 활기가 넘쳤다.
"저녁에 뭐 해? 너랑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
내가 이곳 터미널에 내려 저녁을 먹었을 때다. 파키스탄 식당의 한 청년이 내게 어찌나 친절하게 굴던지. 목 막힐까 봐 레모네이드도 공짜로 갖다 주고 나중에 돈도 덜 받겠단다.
서비스에 감동한 나는 얼떨결에 팁이라며 본래 금액보다 돈을 더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숙소로 향하려는데 그 청년이 저녁에 만나자는 거다.
그 순간 고마움은 부담이 되고 두려움이 되었다.
"아니야. 오늘은 안 되고 떠날 때쯤 한 번 더 들를게."
"다시 안 올 거면서..."
청년도 내가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는지 표정엔 약간의 노여움이 서려있었다.
한국에서 말레이시아 여행을 계획할 때 봤던 사진 하나가 있었다. 온 산지가 초록빛깔 녹차밭으로 둘러 쌓인 모습.
나는 그 풍경이 맘에 들었지만 가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딱 봐도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을 건데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가지?
그렇게 여행할 동안 그곳을 잊고 지냈다.
나는 노란 오토바이를 하나 빌려 뱀처럼 휘어진 길을 달렸다. 시원한 바람, 한국과는 사뭇 다른 열대 우림의 풍경. 질주해 오는 차들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달리는 맛에 신이 났다.
그렇게 삼십여 분간을 갔을 때 녹차밭으로 뒤덮인 산이 등장했다. 그 규모는 실로 대단해서 운전을 하고 있음에도 자꾸만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이틀간 녹차밭들을 돌아다녔다. 특히 새벽에는 녹차밭 일출이 아름답다는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는데 그만 도중에 길을 잘 못 든 것이다. 해는 뜨기 시작하지 마음은 조급하지 거의 반 포기 상태로 찾아간 곳이었다.
산 위로 이제 막 떠오른 해가 따듯한 햇살을 내뿜고 있었고, 그로 인해 드넓은 녹차밭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반짝였다. 고작 5분 동안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한참 동안 그 풍경의 황홀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추억으로 최고인 곳은 아니지만, 풍경을 보러 말레이시아에 가야 한다면 카메론 하이랜드를 다시 가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