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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천사 May 18. 2023

봄비 내리는 날

다시, 그날처럼.

풋가슴 적시던  첫사랑 

발자국소리, 자박자박

가슴으로 듣고 있다.

봄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엄마를 기다리다 방울방울 

뺨 위로 흘러내리던 

유년의  눈물 같은 꽃이

유리창에 맺히고 있다.

 



소식도 없이

봄비 내리던 날

어린 딸

젖어서 울까 봐.

비닐우산이 되어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울 엄마.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내 발걸음 따라오고 있다.


언제까지나

곁에 머물 줄 알았던 엄마가 

내 나이만큼

흘러가버린 후에야.

엄마를 읽고 있다.



엄마를 홀로 두고

돌아서던

결혼식장에서도 몰랐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 속으로

고이던 쓸쓸함을.

시집간 딸네 집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보자기에 담야

오가던 엄마의 발걸음이

말 못 하고 있는

보고픔인 줄도 몰랐다.

몸이 아파도

화가 나도 말없이

내 등을 도닥거리던

엄마의 손길이

나보다 더 아픈 줄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사랑의 체온을 느끼게 한

엄마가 봄비로 스며든다.

나뭇가지마다 솟아나는

연둣빛 이파리가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는

엄마의 손글씨란 것을

왜, 몰랐을까.



엄마를 잊고 사는 동안

삭정이로 버티던 세월.

생활의 갈피사이에서

엄마의 숨결 같은

꽃잎으로 피어오른다.


잠으로 묻어도

  솟아나던 상처도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지워진다.

봄비를 마시고 자라는

민들레 꽃잎 같은 엄마의 속삭임.

사는 게 그렇단다.

살다 보면  지나온 자리마다  

흘린 눈물이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봄비소리가 나이가 들수록

다정스러워 눈물겹다.




무심한 듯 스쳐버린

인연의 그림자를 뒤늦게 돌아보면

 그리움의 거리만 아득하다.

젖은 눈빛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우연처럼, 맞닿은 어깨마다

 봄비가 사랑처럼 스며든다.


사느라고 

애써다 적어 두지 못한

속말들이 거리마다

빗방울로 반짝인다.

살아온 날들이 빗물로

 흐르는 동안, 비로소

알게 된다. 아픔도 슬픔도 

사랑하며 살았던 흔적이란 것을


다시, 그날처럼.

봄비 내리는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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