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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Jan 08. 2023

남산의 비유

메타 인문학 1.0 책소개


#인문 #인식론


남산의 비유 I


남산의 한가운데 달이 떴습니다.

친구들이 나란히 서서 손으로 달을 가리킵니다. 서로가 보기엔 손가락 방향이 조금씩 어긋나 보이지만,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리적 공간, 서 있는 위치, 그것을 우리는 '관점' 때로는 '입장'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서 있는 공간이 조금씩 다르고, 키 높이도 차이가 나고, 그래서 각기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이 달라 보이지만, 같은 달을 보고 있습니다.


손가락을 넘어 달을 봅니다

손가락은 달로 인도하는

마음이며 언어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언어인 말과 글을 통해 달을 봅니다

마음에 얽매이고

말과 글에 갇혀서는

어떻게 달을 볼 수가 있을까?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입니다

부처나 돼지나

마음과 언어로 된 관념의 구조물,

진실은 그것을 넘어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진실을 볼까?

어떻게 부처를 넘고

돼지를 넘고 관념을 넘어 진실을 볼까?

어떻게 손가락을 넘어 달을 볼까?


달과 손가락,

이것은 모두가 아는 불교의 유명한 법문이다. 여기서 달은 세상을 이루는 진리 세계를 뜻한다. 손가락은 진리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손가락에서부터 언어로 된 개념이나 나아가 한 사람의 ‘인식체계’까지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불교는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탐구한 '인식론'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모든 과학의 공통점이다.


세상엔 많은 사람이 살지만, 각자 입장이 다르고, 가치관과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각자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조금씩 다른 것이다. 이것을 자연스러운 원리로 이해할 때, 우리는 같은 달을 보고, 같은 달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자기가 가리키는 손가락과 자기가 본 달만이 옳다고 우기고 있을 수가 있다. 우리는 손가락이 아닌 달에 주목할 때, 같은 진실을 공유하며 소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자기가 알던 달보다 더 크고 더 뚜렷한 달을 보게 된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이 앞서거나, 언어인 말과 글에 갇혀 자기가 가리키는 손가락만이 맞다고 믿는다면, 진실은 작아지고 보려는 달은 흐려지며 친구는 멀어지게 된다.


남산의 비유 II

우리는 진실을 직접 움켜쥘 수가 없다. 잡았다고 여기는 순간 이미 진실은 아니다. 만물이 늘 변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순수한 직관과 입체적이며 변증법적인 추론을 통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뿐이다. 우리의 앎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가 본 것만이 달이나 코끼리라고 주장하지 말자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앎은 객관과 주관의 치열한 싸움이다. 진실을 가리키는 객관에 대해 우리의 주관이 얼마나 '수용력'을 가지느냐의 문제이다. 객관적 언어의 선택을 나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도록, 내가 얼마나 정직할 수 있느냐가 앎의 관건이다.
결국 이 문제의 해법은 인간의 인식 습관의 허점과 함께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 있다. 편견의 극복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편견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는 것과 같다.

남산의 서쪽에 있는 사람은
남산은 해가 뜨는 산입니다
남산의 동쪽에 있는 사람은
남산은 해가 지는 산입니다
남산의 동서남북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다른 남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남산은 무엇일까요?
각기 다른 남산들의 합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각기 다른 남산을
본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겸손과 관용과 소통의 가치를
새롭게 볼 수가 있습니다
진실이 입체인 것을 이해한다면
손가락을 넘어 달을 볼 수 있으며
언어를 넘어 실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합리'가 앎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합리를 토대로 인문학은 과학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인문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합리적 앎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앎을 통해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과 인문과학도 더 유익한 과학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



진실은 '남산'처럼 있다. 남산을 본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남산을 가진다. 때로 남산의 여러 곳을 자주 탐사했거나, 우연히 남산에서 놀라운 진실을 발견한 사람도 있을 수가 있다. 거기서 엄청난 금이나 보석의 광맥을 발견하거나 아직도 알려지지 않는 귀중한 비밀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공유할 가치가 있다. 남산은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중요한 진전들은 이러한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는가?

-메타 인문학 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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