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누나의 배려

: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님과 헤어졌던 몇 년

by 홍이

1980년,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 되고 누나는 5학년 2학기를 맞이한 해였다. 우리는 부산에서 거창에 있는 시골의 작은 학교로 전학을 갔다. 부산의 복잡하고 활기찬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나에게 시골은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집은 불편했다.화장실은 밖에 따로 있었고, 물은 펌프로 끌어 써야 했다. 화장실을 갈때도 무서워서 누나를 밖에 세워놓았다. 학교로 가는 길은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흙길이었고, 동네에는 작은 기와집이 드문드문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누나가 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 낯섦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학교는 집에서 꽤 멀었다. 아침마다 누나는 내 손을 꼭 잡고 먼 길을 걸어갔다. 길은 평범하지 않았다. 도시에선 볼 수 없던 풍경이 가득했다.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산 아래로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보였다. 늦가을이면 논 위에 서리가 내려 마치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놀거나 작은 계곡 근처로 몰려갔다. 그때의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과는 다른 놀이를 즐겼다. 병뚜껑을 납작하게 두드려 만든 ‘탱금’으로 딱지치기 같은 놀이를 했고, 볏짚이나 돌멩이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곤 했다. 송아지나 강아지와 함께 노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가끔 외양간에서 송아지가 탈출하면 형들이 몰려들어 송아지를 몰고 다니며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

학교는 도시와 달리 아담하고 조용했다. 매일 아침이면 아이들은 교실의 나무 바닥을 닦고 난로에 땔감을 넣었다. 하루는 받아쓰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창밖에서 누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나비”라는 단어를 부르시면 , 누나는 창문에 입김을 후 불어 손가락으로 ‘나비’라고 써주었다. 덕분에 나는 나머지공부를 피할 수 있었다. 누나는 늘 공부를 잘해 반에서 1등을 했고, 내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기억이다.

겨울이면 아이들은 아궁이에 불을 피워 손을 녹이고, 눈이 내리면 동네 아이들끼리 모여 눈싸움을 했다. 학교 정문에서는 미끄러지기 놀이가 유행이었다. 어느 추운 아침, 나는 미술 준비물인 스케치북을 가져오지 않은 걸 누나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누나는 아무런 싫은 내색도 없이 “교실에 가 있어라. 누나가 갖다 줄게! “라고 말하며 집으로 뛰어갔다. 아주 추운 겨울 아침이었고, 누나는 볼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누나는 나의 스케치북을 들고 1학년 교실로 온 것이다. 누나의 그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감동이었는지 생생히 남아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누나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마음에 남는다. 누나는 늘 나를 생각하며 양보했고,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두 딸의 아빠가 되고, 아이들이 다투는 모습을 볼 때면 ’ 우리 누나는 늘 양보하고 나를 잘 챙겨줬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도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누나는 여전히 나를 많이 생각하며 말한다.

“내가 나중에 늙어서 마음이 변해서 관계가 나빠질까 봐 염려된다. 부모 자식도, 형제자매도, 친구 사이도 언제나 조심하지 않으면 서로 상처 주고받거든.”

누나는 그런 사람이다. 늘 한결같이 나를 챙기고,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곁에 있어주는 사람. 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누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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