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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n 21. 2024

꽃과 나비가 버겁다고 한다

김형미 문화부장



해마다 5월이면 한라산을 진분홍으로 물들였던 산철쭉 물결을 올해는 볼 수 없었다.




꽃눈이 열릴 때쯤 냉해 피해를 입어 꽃눈이 제대로 개화하지 못했다고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는 설명했다. 




한라산 깃대종으로 지정된 산굴뚝나비의 서식지도 점차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지대로 밀려나고 있다. 제주의 꽃과 나비가 시련을 겪고 있다. 조사되는 꽃과 나비의 상황이 이렇다면, 조사 범위에서 벗어난 다른 생물의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상 기후와 높아진 기온으로 생태계 변화는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고 정착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생태계에서는 자연이 그곳에서 살아갈 생물을 선택한다고 본다. 진화학자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다. 




특히 극한의 환경이라면,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자손을 퍼트릴 수 있는 개체만이 살아남는다. 같은 종이어도 먼지만큼의 유전자 차이가 생존을 결정하는 이유로 진화의 물결에 올라타게 된다. 유전자 차이를 일으키는 것은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 때문이다. 그래서 돌연변이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냉해 피해를 입어도 꽃눈을 틔울 수 있는 산철쭉이 있다면 그 유전자를 가진 산철쭉은 살아남을 것이고, 기온이 높아져도 생존할 수 있는 산굴뚝나비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 개체는 높아진 온도에도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며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 이전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냉·난방 시스템과 이동 수단이 활성화되면서 인간의 거주지와 활동 반경은 넓어졌다. 그러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에너지 사용이었다. 에너지 사용으로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고, 인간은 에너지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재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냉방기와 난방기가 빠지고, 이동 수단이 사라진다면,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어쩌면 극한의 상황, 즉 몹시 춥고, 몹시 더운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유전인자를 가진 인간만 살아남아 진화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유럽연합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평균 기온은 15.9℃였다. 산업화 이전 평균치보다 1.52℃ 높은 수치다. 세계기상기구(WMO) 역시 지구의 연평균 기온 상승 폭의 마지노선인 1.5℃를 2028년 안에 넘을 확률이 80%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1.5℃를 넘는다는 것은 다시는 이전 상태로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올라가는 지구의 온도를 끌어내리기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텀블러와 에코백을 쓰자거나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것으로 지구환경을 되돌리자는 얘기는 이제 통하지 않는 구호가 될 것만 같다. 어떤 형태의 에너지가 됐든 무조건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꽃과 나비가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보내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우리가 자연의 경고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결말은 정해져 있다. ‘인간은 지구를 떠나거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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