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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외국인이 7살 아이에게 심어준 꿈

by Callia
Hello!


학습지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던 7살, 엄마랑 외출했다가 미모의 금발의 외국인과 마주친 적이 있다. TV나 학습지 자료에서만 보던 외국인을 마주하니 호기심이 발동해서 말을 걸어 보았다. 어린 내가 귀여웠는지 밝게 웃으며 Hello 하고 인사해주었다. 내가 더 용기내서 How are you?라고 물었더니 학습지에서 배운대로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배운대로 "I'm fine."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다음에 외국인이 말했던 이야기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는 "Good-bye."로 아쉽게 돌아서야했다.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영어를 잘하고 싶다, 외국인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는 꿈을 처음 갖게 했다. 외국어와 외국인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중고등학교 때까지 영어와 일본어 이 두 언어를 열심히 배웠다. 읽고 쓰기는 잘하지만 말하고 듣기가 마스터되지 않던 대학생시절, 나는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유료의 언어교환모임부터 저시급 알바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말그대로 알바천국에서 "외국인"이나 "외국어"로 검색해서 나오는 거의 모든 알바랄까..?

(사진) 여행사 알바시절


면세점 알바를 시작으로 명동의 기념품점, 북촌의 한옥게스트하우스, 여행회사(한국에 거주중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여행회사였다.), 호텔, 방한 서커스 기념품점 등에서 일했고,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영어통역봉사활동도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통역봉사는 전공인 일본어로 지원했지만 영어지원자가 부족한 상황이라서 토익점수만으로(면접 없이) 영어통역봉사를 하겠냐고 제안전화를 받을 정도였기 때문에 아주 럭키비키하게도 쉽게 합격했다. 교통비와 식비밖에 지원해주지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모든 대학생들과 취준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봉사활동이 나에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결정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사진) 선수촌에서의 봉사활동

나는 몰디브여자핸드볼선수팀을 맡았고, 주 업무는 연습과 경기 스케쥴을 공지하고 동행하면서 감독님과 코치님을 서포트하는 거였다. 스케줄이 없을 때는 한가해서 꼭 선수촌에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일이 없어도 다른 핸드볼팀 봉사자들 일에도 동행하면서 선수촌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선수촌에 남아 있으면 내가 입고 있는 봉사자 유니폼을 보고 외국인선수들이 와서 도움을 요청했고, 부족한 영어로 내가 좋아하는 외국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웃음)


아, 이렇게 외국인들에 둘러싸여서 일하고 싶다..!!!
(사진) 몰디브여자핸드볼선수들과 함께

단순히 외국어가 좋아서 일본어통번역을 전공하긴 했지만 미래의 내 직업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이중전공은 국제경영이기도 했기 때문에 다른 취준생 친구들처럼 가능한한 많은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어봐야하나 고민이 되었었는데, 이 경험을 계기로 외국인을 상대로 한 서비스직을 제일 먼저 고려하게 되었다.


면접 낙방에 해고까지 머나먼 취업의 길


처음으로 도전한 것은 스튜어디스였다. 주 고객이 한국인반, 외국인반이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공짜로 여러 나라에 가볼 수 있으니까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승무원 지원 평균보다 높은 토익점수와 JLPT N1급 자격증, HSK 3급자격증이 있었고 외국인을 상대하는 다양한 알바경력과 큰 키 덕분에 서류는 곧잘 합격했다. 하지만 면접에서는 줄곧 낙방이었다.

아마도 긴장을 너무 많이 한 탓도 있었겠지만 국내항공사는 외모로 떨어지고, 해외항공사는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떨어졌다는 게 거의 확실한 내 실패분석의 결론이다. 승무원이 되기 전부터 승무원처럼 보였던 승무원학원동기들은 다 국내항공사에 바로 붙었고, 해외에 살다와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은 다 해외항공사에 바로 붙었으니까.


그렇게 몇 번의 승무원 면접에 더 낙방하고, 알바하던 곳의 차장님의 추천으로 일본어통번역 비서로 첫취업을 하게 되었다. 신입인 나에게 실장이라는 직함을 달아준 회사였지만 신생회사라서 일이 너무 없었다. 나를 고용한 사장님은 항상 외근으로 자리를 비웠고 일을 가르쳐줄 선배도 없었다. 사업제안서와 계약서 번역을 맡기긴 했지만 일본어통번역 전공이었던 나에게는 1시간만에 끝낼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정말 매일이 한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서 내 사적인 일을 하거나 온라인강의를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에 있을수록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이렇게나 활용하지 못하는 회사라니.. 그래서였는지 얼마 안 가 채용정보사이트에서 해외채용정보를 찾아보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사실 성격상 먼저 그만두겠다는 말은 잘 하지 못하는데, 마음이 콩밭으로 가 있으면 그게 너무나 티가 나는 사람이라서 취직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해고가 되고 말았다. 해고 이유는, 일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일이 너무 없으니 하루 쉬어도 되냐고 말했다가 사장님의 눈 밖에 난 것이었다. 소개해준 차장님한테는 너무 죄송한 일이었지만, 먼저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하는 나로서는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해고됐다는 사실에 상처받은 영혼은, 이 날 좀 울었다.


엄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영어가 부족해서 승무원 면접에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미안했나보다. 사실 우리집은 내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리 잘 살지 못 했다. 대학교 때 교환학생은 지원했으면 갈 수는 있었을텐데, 타이밍이 안 맞아서 좋은 기회를 많이 날렸다. 사실 그게 한이 되긴 했었다. 해외 경험을 하고 온 동기나 후배들은 다들 엄청 성장해서 돌아왔었기 때문에...(씁쓸)

알아보니 캐나다어학연수는 1년에 최소 2천만원은 드는 일이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이에 이렇게 큰 돈을 엄마한테 손을 벌리는 게 맞는건가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그 때, 내 운명의 일본 호텔회사 인턴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내가 캐나다어학연수 대신 일본인턴을 선택한 이유


글로벌터치코리아라는 해외취업중개회사에서 낸 채용공고였다. 사실 사무직으로 첫 취업을 해서 일해본 결과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일을 하는 것이 나한테 맞나 의문이 들기도 했었는데, 본사업무와 호텔프론트 업무 둘다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해외인턴으로는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일본 호텔회사 인턴 채용공고

왕복항공권과 숙박, 비자취득을 회사에서 전부 부담해주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내 돈은 전혀 들어가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비자를 준비해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 이때 한국의 최저시급은 5천원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일당 6천엔을 준다고 하니 급여도 괜찮았다. 합격만 한다면 엄마의 경제적 지원 없이 내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기간은 6개월~1년으로 그동안 일본어 실력도 늘고 이력서에 소중한 한 줄이 되어줄 것이다. 쉬는 날엔 급여 받은 걸로 일본 여행도 해야지!


사실 나는 가정적인 부모님 밑에서 너무 편하게 살아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여전히 용돈도 받고 핸드폰요금과 교통비도 엄마가 내주시고 계셨고, 집안일을 포함하여 내가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이렇게 자꾸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지하다가는 몇 년이 지나도 제자리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이 타이밍..!!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는 이미 대학교를 졸업한 상태로 취업 준비중이었는데, 채용공고의 모집대상이 '재학생 중 졸업예정자'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필수조건인 어학력 조건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냈던 것 같다. 일본어는 비지니스에서 써본 적이 없어서 비지니스레벨인지는 모르겠었지만 JLPT N1급 자격증이 있었고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필요했던 토익점수(835)와 승무원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하여 스파르타로 따둔 HSK(중국어능력시험) 3급 자격증도 있었다. 또, 외국인을 만나고 싶어서 했던 알바들이 대부분 서비스직이었기 때문에 호텔업무에 도움이 될만한 경력도 많이 쓸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일본어로 이력서를 써보았는데, 자기소개와 지원한 이유 칸에서 내가 왜 이 인턴에 채용되어야 하는지를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사부 직원이라도 나를 뽑을 거 같은데?


그동안 승무원 지원 이력서나 다른 기업 이력서를 작성해볼 때에는 인터넷에 나와있는 충고대로 그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이나 경영방침 등을 참고해서 나를 껴맞추는 느낌이었는데, 껴맞추지 않아도 이 회사가 원하는 게 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먼저 취업한 친구가 "여러 군데 지원하고 취업해보니까 우리가 회사를 선택하는 게 아니고, 회사가 자기 회사에 필요한 사람들을 골라가는 거더라."라고 말했던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주 후 친구들과 밖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던 때,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채용공고를 낸 중개회사에서 온 전화였다. 서류에 합격해서 면접에 관한 메일을 보냈는데, 왜 답장이 없냐며. 나란 여자.. 지원해놓고 메일 확인은 하지 않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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