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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흔한 인턴 클라쓰(2)

삿포로 호텔에서의 4개월

by Callia

와- 31층이 높긴 높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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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파견근무를 하게 된 호텔은 신삿포로역 앞의 5성급 호텔이었다. 신삿포로는 신치토세공항과 삿포로사이에 있는 신도시다. 신삿포역에서 내리자마자 역 밖으로 32층 건물이 웅장함을 자랑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호텔은 대부분 비지니스호텔이기 때문에 5성급 호텔은 여기가 유일하다.


이랏샤이마세~!


쭈뼛쭈뼛 문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 한 명이 문 여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노.. 인턴또시테 마이리마시타 춍보용또 모우시마스가.. ” 저.. 인턴으로 온 정보영이라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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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은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신삿포로의 경치

호텔 인턴 요약

호텔에서도 인사부 직원이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1. 아주 럭키하게도 호텔의 최고층 코너룸에서 일주일 정도 먼저 묵게 되었다. 원래 VIP 마사지룸으로 쓰던 곳을 최근에 객실로 리뉴얼했는데, 내가 개시하는 거라고 한다! (호텔에서 자고 호텔에서 일어나고 직원용 엘레베이터로 사무실층까지 직행하여 출근하는 건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후엔 회사에서 잡아준 레지던스로 옮기게 된다. 레지던스에서의 수도광열비는 정해진 금액x일수로 계산된다고 한다.


2. 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호텔의 여러 부서를 차례대로 돌며 서포트하는 일에 투입된다. 순서는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연회, 웨딩, 레스토랑, 마케팅, 벨서비스 등이었다. 이렇게나 제대로된 커리큘럼이라니..!


3. 출퇴근시 혹은 외근에 필요한 교통비는 급여와 별도로 지원 받을 수 있다. 이건 직원이 되어도 마찬가지인데, 일본에서는 어떤 회사든 보통 그렇다고 한다.


img_sky1-2.jpg 일주일간 묵었던 29층의 코너더블룸


소주에 물을 타다니..


연회장은 연회의 목적에 따라 10종류 이상 크기와 컨셉이 다 달라서 일주일 내내 매일이 새로웠던 것 같다.호텔웨딩 피로연과 한 회사의 직원파티, 기일행사, 멤버쉽모임 등 정말 다양했다. 나는 주로 테이블세팅과 서빙, 주류제조를 맡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 문화 충격이었던 건, 일본에서는 소주에 물을 타서 마신다는 사실(미즈와리)이었다. 소다수, 녹차, 주스 등과 섞어 마시는 건 칵테일 개념으로 이해한다지만 소주에서 물이라니 한국인의 주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웃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술과 술을 섞는 폭탄주의 민족 아닌가.(웃음) 술에 물을 타서 먹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통이 크게도 주류는 보통 무제한 옵션이 대중적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나는 사실 한국에서 호텔웨딩의 의전으로 일해본 적이 있다. 결혼식의 순서에 맞춰 필요한 물품들을 세팅하고, 사회자와 신랑신부, 부모님들, 축가자 등의 리허설과 식 진행을 옆에서 돕는 역할이다. 호텔 결혼식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식사가 준비되기 때문에 호텔 연회장 알바들과 교류가 많았다. 서로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대부분이 고등학생들과 대학교 신입생들이었는데, 일본연회도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행동양상이 비슷했다. 같은 나이의 고등학생이라고 할지라도 오래된 알바와 신입 알바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고 오래된 알바들은 약간의 특혜를 누리기도, 신입들에게 약간의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 오래된 알바들은 직원이 아님에도 꽤나 책임감이 강하고 신입들에게 꼰대력을 뽐낸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들인데..?

귀여운 자식들(웃음)


모든 종교를 망라하는 일본


웨딩과 연회를 둘다 보면서 신기했던건 일본은 일생에 걸쳐 모든 종교를 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혼식은 성당식(가톨릭)을 하면서 장례식이나 기일행사는 불교식으로 치룬다. 결혼식은 성당에서 하는 게 로망이라나. 하지만 중요한 날마다 또 신사로 참배를 간다. 그리고 그들이 종교처럼 마음 속에 품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그건 '디즈니'다. 기념일에 디즈니 호텔에서 숙박하거나, 결혼식을 디즈니 호텔에서 하는 것을 로망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많고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디즈니 공주가 입을법한 드레스를 입는다. 신데렐라 스타일도 있는가하면 흑화된 공주 스타일도 있다. 우리나라는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인데, 일본은 신부들의 취향이 어찌 보면 유치할 수 있지만 정말 다양한 드레스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다 비슷비슷한 것에 비해 일본은 각 드레스마다 성격이 다른 것 같은 느낌..! 한 신부님의 드레스 피팅을 참관?했는데 레드앤블랙 스타일의 드레스를 고르길래 처음엔 이걸 피로연에 입는다고? 하며 속으로 물음표를 그렸다.

그런데 입고나니 너무 잘 어울려서 내가 “이건 사서 소장하셔야 할 거 같아요!!”라고 했다. 신부님이 너무 기뻐하시면서 그걸 피로연 드레스로 입은 걸 봤을 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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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의 양식 연회장과 일본전통의 다다미 연회장

그런 동심이 있어서 그런지 일본의 워크숍 연회는 정말 재밌었다. 할로윈 데이처럼 다들 코스프레를 하고 웃긴 복장으로 장기자랑을 하는데, 이 사람들 진짜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이구나 했다. 한편 결혼식을 가보면 다들 무도회나 시상식장에 온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을 하고 온다. TPO에 진심인 일본이다. 축의금도 3만엔이 기본이라는데,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까지 갖추고 오려면 결혼식에 가는 비용은 기본이 50만원이 넘겠다. 그래서 모든 초대장을 참석/불참석을 표시하여 반송할 수 있는 엽서로 보내고, 정말 참석할 사람들만 추려서 지정석을 준비한다. 그런 자리에 초대를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일지도, 부담스러운 일일지도.


일본의 중식에 반하다


30층에 있는 차이니즈레스토랑에서 일주일간 일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하며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음식을 치우고 식기세척기로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다. 직원분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고 메뉴들을 외웠다. 내가 처음으로 직접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설명할 때는 조금 서툴었지만 외국인명찰을 보고 손님들도 귀엽게 봐주셨다. 일본의 차이니즈레스토랑에는 짜장면과 짬뽕이 없다. (탕수육은 있다)대신 딤섬(샤오롱빠오!)과 마파두부와 안닝도후가 있다. 일이 끝나면 안닝도후(살구씨푸딩)는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해주셨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항상 2~3개씩은 먹은 거 같다. 가끔 남은 음식을 치우면서 설거지하는 곳에서 슬쩍 먹어보았는데(코스요리라서 덜어먹기 때문에 깨끗했다는 변명) 정말 맛있었어서 삿포로에 있는 동안 직원할인 30%를 이용하여 참 자주도 갔다. 혼밥으로도 가고 직원들끼리 모임으로도 가고 한국에 가족과 친구가 올 때마다 데려와서 코스요리를 사주기도 했다.(헤헤) 레스토랑 직원분들이 정말 친절하게 해주셔서 짧은 견습기간 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주방장님도 엄격하시지만 프로페셔널하셔서 배울 점이 많았고, 마지막엔 한국말로 화이팅!이라는 말을 적은 명함을 주시는 스윗함에 감동하기도 했다.

센운.jpg 30층에 있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호텔에서 제일 먼저 보는 얼굴, 벨서비스


어찌 보면 내가 호텔인턴을 지원하게 되면 이런 일을 하게 되겠지 생각했던 게 바로 벨서비스였다.

다른 호텔 업무들은 99%이상 일본인 손님들만 대하게 되는데, 벨서비스만 숙박하는 손님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의 비중이 50%이상이었다. 첫날엔 호텔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짐을 대신 들어주고 프론트까지 안내하는 일만 했는데, 여러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을 기대하고 온 거다보니 그것만으로도 설렜다. 일본어를 했다가 영어를 했다가 중국어를 했다가, 그동안 배웠던 외국어들을 마음껏 말해볼 수 있었다. 보통 오후12시~1시에 출근해서 저녁9시~10시에 퇴근했는데, 체크인 손님들이 잔뜩 오는 시간이었다. 오후 시간대에는 손님이 많진 않아서 게이트나 벨서비스카운터에 서서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일찍 온 손님들의 짐을 맡아드린다. 일찍 온 손님들의 방이 세팅되면, 짐을 미리 객실에 가져다 드린다. 사실 오후 시간은 한가한 편인데, 계속 서있어야 되니 2~3시간 지나면 다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저녁에는 개인손님과 인바운드 투어버스가 겹쳐서 오면서 바빠지기 시작한다. 체크인시간에 개인손님들이 오면 프론트에서 체크인후 객실까지 안내해드린다. 인바운드 투어버스에서 중국인, 대만인, 한국인 손님들이 우르르 내리면 버스에서 짐을 내리는 걸 도와주고, 직원들이 가이드에게 카드키와 명단을 전해주는 동안 손님들을 엘레베이터로 정신없이 안내했다.


몇 주간의 호텔 로테이션(?) 인턴이 끝나고 인사부에서 나에게 남은 기간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사실 호텔에서는 나를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게 하고 싶었던 거 같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벨서비스요!


그렇게 나는 남은 인턴기간동안 숙박부서의 벨서비스에서 일하게 되었다.

호텔로비.jpg 호텔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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