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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ENFP가 일본에서 덤벙거리면 생기는 일

by Callia


지하철분실물.png 지하철에서 분실했을 경우의 안내; 당일 역사무소 보관 > 다음날17시 이후~3개월간 분실물센터 > 그후 처분됨

일본이라 다행이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물건을 흘리는 일이 일상이었던 나. 출근길, 퇴근길, 약속 가는 길 할 거 없이 포켓와이파이, 집열쇠, 가방 등 맨날 두고 오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복잡한 도쿄 지하철이 아니라 오도리와 삿포로를 중심으로 세 가지 노선만 있는 삿포로여서 다행이었던 것도 있다. 나 같이 덤벙거리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라고 알려주자면, 지하철역에서(벤치나 화장실) 물건을 두고 왔을 경우, 일단은 해당 역사무소로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한다. 어디에다가 두고 왔는지 어떤 물건인지를 얘기해주면 분실물 기록을 확인해주거나 잃어버린 장소를 확인해주신다. 일찍 전화하면 역사무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역에 있는 분실물센터로 가 있다. 감사하게도 거의 모든 역에 분실물센터가 있고, 일본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분실물을 주우면 여기로 거의 다 갖다준다.

정말.. 일본이라 다행이야(눈물)


하지만 항상 이렇게 쉽게 물건을 찾았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도 다른 건 안 건드리는데, 자전거는 훔쳐가듯이 일본은 잃어버린(두고온) 장소가 중요했다. 내가 일본에서 잃어버린 것들 중 유일하게 못 찾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술집'에서 잃어버린 '현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이었다. 술집이었다고 해도 현금이 별로 없었다면 분실물센터를 통해 나에게 무사히 돌아왔을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그날이 ATM기에서 현금을 뽑아 지갑에 넣어놓은 날이었다는 사실이다. 무려 3만엔..! 한국이었다면 거의 모든 곳이 카드 혹은 계좌이체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자판기로 현금결제를 받는 식당이 많고, 카드를 받아주지 않는 가게도 많아서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지갑에 들어있던 내 재류카드였다. 삿포로에 오자마자 전입신고를 했다면 이 재류카드도 삿포로에서 재발급이 가능했을텐데, 내 전입신고가 일본의 본사로 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류카드 재발급을 위해서는 도쿄의 출입국사무소로 가야했다. 일본의 워홀러들이여, 술집에서는 소지품 꼭 잘 챙기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전입신고는 꼭 빨리하기! 인사부에 사정을 말씀드리니 감사하게도 내 근무일을 조정해주셔서 다음날 바로 도쿄로 갈 수 있었고 본사근무 때 묵었던 호텔에 공짜로 묵게 해주셨다.(눈물)


참고로 재류카드를 분실하여 재발급 받아야할 때는 파출소에서 지갑 분실신고서를 작성하고 분실신고수리번호를 받아가야 한다. 재발급시 여권과 3개월내에 찍은 증명사진(3x4), 그리고 그 신고서가 필요하다. 증명사진은 예전에 찍은 거라도 3개월내에 찍었다고 우겨도 되겠지만, 나의 경우 기존 재류카드가 3개월 전에 발급받은 거라서 같은 증명사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참고로 증명사진 찍는 기계는 거의 모든 일본 역에 있고 도쿄 시나가와의 출입국사무소에도 있다. 출입국사무소는 항상 사람이 많고 일본은 예약제가 아니기 때문에(우리나라 출입국사무소는 예약제임)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해서, 대기표를 뽑고 사진을 찍어도 시간이 충분했다. 일본의 증명사진기계는 미백기능이 있어서 우리나라 증명사진기계와는 달리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다.

다이아팰리스.png

열쇠 갖고는 못 살아, 도어락 보급이 시급하다..!

호텔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고 남은 인턴생활동안 묵게 될 레지던스로 거처를 옮겼다. 레지던스는 외관이 아주 삐까뻔쩍했다. 관리인 아저씨도 1층 데스크에 계셨는데, 아침부터 저녁8시쯤까진 계시는 거 같았다. 그래서 우리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마다 '좋은 곳 사네~'라고 했었는데, 사실 들어가보면 전형적인 일본 비지니스 호텔의 싱글룸 사이즈의 방이었다. 그래도 레지던스라서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히터, 가스렌지, TV, 작은 욕조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하지만 도어락이 없었다. 열쇠로 공동현관에서 한 번, 숙소현관에서 한 번 문을 열어야 한다. 스마트폰시대에 아직도 열쇠를 들고 다녀야 한다니..? 나 같은 덤벙이에겐 매우 걱정되는 일이었는데..


지하철역에 열쇠를 놓고 와서 역사무소에서 찾기를 두어 번, 한 번은 제대로 일이 터졌다. 오후 근무를 갔다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저녁 10시쯤일까. 우리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으악!


엄청 큰 대왕모기 한 마리가 좁은 방 한 가운데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벌레를 혐오하는 겁쟁이가 혼자 그걸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패닉이었다.


우리집엔 해충스프레이가 없어. 일단 편의점에서 스프레이를 사오자.


하루종일 구두 신고 서서 근무하느라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모기와 싸울 무기를 구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에서 해충스프레이를 사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아.. 열쇠..

집에서 나올 때 집에 열쇠를 두고 나와버린 것이었다. 숙소현관은 열쇠 없이 나왔으니 문을 잠그지 않은 상태겠지만, 공동현관이 문제였다. 관리인 아저씨도 퇴근한 후였고, 다른 입주민이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야겠단 생각으로 현관 앞에서 30분쯤 기다려 보았다. 그런데 늦은 시간이어서였을까 정말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집 벨을 눌러서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생각을 좀 더 일찍 해야됐었나보다. 1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낯선 사람이 벨을 누르니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벌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게 서러웠다. 정말.. 어떡하지? ..


다행히 지갑과 스마트폰은 있으니까 호텔로 돌아갈까. 아니면 근처 호텔에서 묵을까.

그 때, 우리 호텔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한국인 오빠가 생각이 났다. 군인출신이라 그런지 짧은 머리에 인상이 좀 무서웠지만 일본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고 같은 외노자 신세라서 나름 친하게 지냈다. 그 오빠는 쉐어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쉐어하우스에서 하는 파티에 한 번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일본인, 외국인이 섞여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였는데, 방이 많았고 주방과 거실, 욕실과 화장실은 공용이었다. 그래서 가끔 쉐어하우스에서 파티를 하면 초대받은 손님들은 거실에서 자기도 한다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나서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늦은 시간이라 자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다행히도 전화는 받아주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쉐어하우스로 오라고 했고 다행히 밝아질 때까지 쉐어하우스에서 하루 묵을 수 있었다. 다음날이 휴일이었으니 망정이지, 일하는 날이었으면 정말 피곤했을 뻔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시간에 집앞으로 가니, 출근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놈의 모기 죽여버리겠어. 날 밖에서 자게 하다니. 하지만 우리집 문을 열었을 때, 모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열려 있었고 거기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나보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일본..!! 도어락 보급이 시급하다!! 아니.. 내가 정신차리는 게 시급하다(눈물)


이 정돈 봐줄 수 있잖아?


삿포로에 놀러온 친구를 배웅하러 신치토세공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려면 JR쾌속열차를 타고 신삿포로역까지 가서 지하철로 환승해야 한다. JR쾌속열차는 기차이지만 지정석이 있는 기차가 아니고 내부가 지하철처럼 생긴 자유석 열차였다. 지정석이 없어서 빈 자리에 앉으면 된다. 한 역 정도 지났을까, 내 손에 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휴..또(눈물) 기억을 더듬어보니 자동판매기에서 열차표를 살 때 판매기 앞 선반에 올려놨다가 그냥 온 거 같았다.

신치토세신삿포로.png
JR티켓판매기.png
JR신치토세공항역에서 신삿포역 가는 길(왼) / JR신치토세공항역의 티켓판매기(오)


항상 그랬듯이 JR역사무소 번호를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다.

"스미마셍, JR티켓판매기 앞에 가방을 두고 온 거 같은데, 확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이, 쇼-쇼- 오마치쿠다사이!"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행히 가방이 아직 거기에 있었고 찾으러 온다면 보관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 찾으러 오실 수 있나요?"

"열차에 탄지 얼마 안 되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 어디까지 가셨나요?"

"치토세역이에요! 다시 반대방향으로 타고 가겠습니다."

웅성웅성.. 잠시 다른 사람(아무도 상사..?)과 얘기를 하는 거 같았던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치토세역에서 다시 오시면 일단 개찰구 밖으로 나와서 치토세역에서 신치토세공항까지의 티켓비용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괜찮으신가요?"

잉..? 이게 무슨 소리지.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지만 잘 생각해보니 내가 산 표는 신치토세공항역에서 신삿포로역까지 가는 열차표인데, 치토세역에서 신치토세공항역으로 오는 열차는 그 표에 해당하지 않으니 그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신치토세공항역에서 신삿포로역까지 가는 열차표도 다시 끊어야 했다.

"와.. 카리마시타."알겠습니다.(눈물)


가방은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지만, 가방을 두고 오는 바람에 교통비가 2배 이상 든 것에 대하여.. 하..

일본만큼 친절한 말투는 아닐지라도 부탁하면 왠만큼 다 들어주고, 말만 잘하면 퉁명스러워도 오지랖으로 다 챙겨주는 한국에서 내가 너무 무르게 살아온 걸까. 이 정돈 그냥 넘어가줄 수 있잖아? 칼같다 일본..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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