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에서의 2개월
인턴 채용 합격 후 한 달이 안 되었을 때 인턴쉽 관련 합의서와 설명서가 메일로 왔고, 인턴쉽을 위해 제출할 서류로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증명사진 등을 보낸 후에 재류자격인정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안내받은 것과 같이 영사관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다가 신청했고 4일째 되는 날 비자가 발급되었는데,
자그마치 5년..?! 인턴기간은 6개월~1년이었는데, 비자를 5년이나 발급해 주었다.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따로 신청해서 일본에 갔으면 돈도 시간도 꽤 들었을 텐데 이득 본 기분.(뿌듯)
이메일로 일본 출국날짜(2015년 4월 15일)와 회사주소가 왔고, 비행기표는 내가 예약하면 회사에서 후에 정산해 주신다고 했다. 그날 회사 근처 역으로 회사사람이 마중을 나와주기로 했다.
보통은 걱정반 설렘반이겠지만, 나는 걱정 20:기대 80이었던 것 같다. 일단 면접에서 기본적인 대화는 막힘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설레임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인천공항으로 출발해서 나리타공항으로, 나리타공항에서 스카이라이너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닛포리역으로, 닛포리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하여 회사 근처역인 칸다역으로 이동했다. 일본어과로서 부끄럽지만, 그때까지 일본에 가본 건 엄마랑 패키지여행으로 가본 게 다였다. 그래서 일본에서 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처음 경험한 도쿄의 지하철은 정말 복잡했지만, ENFP의 외향성을 발휘해 일본의 역무원 분들께 물어물어 도착시간이 조금 늦어진 거 빼고는 아주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만나기로 한 역 입구에 글로벌 기획부의 야마시타 부장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하지메마시떼! 춍-보용상데스까?" (여기서 춍-보용은 정보영의 일본어 발음이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만나자마자 무거운 여행가방을 다 들어주셔서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맡겨버린 나.(웃음) 회사에 도착하니 같이 합격한 재학생인 키무상(김씨)이 이미 와있었다. 8층에 있는 사무실이었는데, 부서가 많고 엄청 넓었다. 모두의 앞에 서서 자기소개와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일본드라마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보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열심히 할 테니까 많이 가르쳐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 박수와 미소로 반겨주시는 분위기까지 드라마 같은 산뜻한 출발.
인사부에서 설명해 주신 앞으로의 인턴생활 일정에 대해 요약하자면,
1. 2개월 동안은 도쿄의 니혼바시에 있는 호텔에서 머물면서 본사에 출근하고, 그 후 4개월은 호텔들 중 한 곳에 파견되어 근무하게 된다.
2. 인사부-경리부-마케팅부-해외영업부-컨설팅부-멤버쉽카드부 등 본사의 여러 부서의 일을 차례대로 서포트하면서 호텔운영회사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한다.
3. 2회 정도의 비즈니스매너 연수를 받게 된다.
인사부에서는 같은 시기에 들어온 일본의 신입사원들의 연수를 서포트하며 연수에 같이 참여했다. 경리부와 컨설팅부에서는 수치를 옮겨 적거나 오타를 확인하는 일을 맡았고, 멤버십카드부에서는 회원가입서를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일을 맡았다. 마케팅부에서는 호텔예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역이벤트들을 조사하는 일을 맡았고, 해외영업부에서는 사업제안서 PPT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다. 비록 작은 일들이었지만 부서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전체적으로 어떻게 이 회사가 운영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적합한 일들이었고, 인사부에서 고심한 흔적이 느껴졌다. 비즈니스매너 연수에서는 이메일 쓰는 방법이나 업무계획 짜는 방법 등 내가 일본에서 일하려면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부분들을 자세히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내 머릿속 인턴의 이미지는 드라마 '미생'을 떠올리게 되어 그중 몇 명만이 정직원 전환이 되는 전쟁터 혹은 열정페이를 강요하여 가르쳐주기보다는 바쁠 때 부려먹는 느낌이 있었는데, 내가 일본에서 경험한 인턴은 말 그대로 "견습생"으로 천천히 배울 수 있도록 배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턴 하는 동안 가장 긴장되고 무서웠던 것은 의외로 전화받기였다.
회사로 전화가 오면 인턴이 받아야 했는데,
"오뎅와 아리가또-고자이마스. OOO(꽤 길었던 회사이름)데고자이마스." 전화 감사드립니다. OOO입니다.
라고 내가 말하면, 상대가 어디 회사의 누구인지 얘기하는데, 그걸 알아듣는 게 쉽지 않았다.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이름인데 그게 일본어였으니 스미마셍을 외치며 회사이름과 성함을 다시 묻는 데에 진땀을 뺐다. 그렇게 몇 번을 다시 확인했어도 틀리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갈 즈음에는 영어로 전화가 와서 또 한 번 진땀을 뺐다.
회사에서 존경할만한 상사가 있다는 건 진짜 행운이다. 사장님이었던 다나카상은 내가 상사가 된다면, 사장이 된다면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분이셨다. 개업한지 10년이 안 되어 60개가 넘는 지점을 확장할 정도로 능력이 있으시면서도 사장실을 따로 두지 않고 같은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를 놓고 사용하면서 몸소 수평적인 관계를 실천하셨다. 외근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직원 1~2명씩 같이 점심을 먹자고 권하여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시는데, 외국인인 우리 인턴에게도 2번 정도 점심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었다. 외국인인 나를 배려하여 대화를 하다가 내가 모르는 단어나 인물이 나올 때마다 검색해서 보여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진이 나서 사무실이 흔들리고 모든 핸드폰에서 지진경보가 울렸을 때에는 저 멀리 자리에서 내 자리까지 뛰어오셔서 괜찮은지 걱정해주셨던 게 정말 감동이었다.
직원이 행복해야 그 직원이 손님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회사의 철학이 사장님한테서부터 느껴져서 내가 정말 좋은 회사에 들어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2개월의 본사 군무가 끝나기 일주일 전쯤 파견근무지가 정해졌다. 면접 때 희망 근무지를 물어보셨었는데, 그때 오키나와와 오사카를 얘기했었다. 오키나와에는 고래상어를 좋아하다보니 로망이 있었고, 오사카는 친구가 1명 워킹홀리데이로 살고 있어서 그렇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그 때 삿포로에 대한 얘기를 슬쩍 꺼내시긴 했었다.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호텔 중 유일한 5성급 호텔이라고 했다. 원래 쉐라톤호텔이었던 곳으로, 결혼식장과 연회장이 있는 32층 건물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한 그 삿포로가 나의 첫 파견근무지가 될 줄이야.
호텔에서의 인턴은 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