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꼬마 Sep 22. 2022

사소함이라는 작은 사치

지루한 일상 밖, 그 또 다른 일상을 꿈꾸는 나에게


어렸을 때 저의 장래희망은 화가였습니다. 그저 요령 없이 꾹꾹 크레파스로 눌러 그림을 그리는 것은 늘 즐거웠고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렸던 그림들은 왜인지 모두 저만의 명작이라 생각하고 자랑하기 바빴던 것 같네요. 모두가 좋다고 인정하는 그림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지금 와서 고백한다면 고등학교를 들어가기까지, 어릴 적 그렸던 그림을 숨기거나 버린 적이 꽤 많았습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예전의 내가 생각하고 기억한 것들을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던 거죠.



어릴 적 즐거웠던 운동회가 경쟁 속에서 '1등'이 환영받는 구조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체구가 작아 달리기가 느린 내가 반 대항 경주에 참여할 수도 없는 '깍두기'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 열등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간혹 경쟁에서 지더라도 상대방을 위해 손뼉을 쳐주고 응원을 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 레이스를 완주한 사람들을 위한 박수. 어른이 돼서도 삶의 주저함이 많아진 것은 그런 박수가 없어서가 아닐까. 열등감이라는 감정의 뒷면에 그런 박수를 받아보지 못한 후회가 있진 않은지.



어릴 적 원하는 어른의 모습대로 나이를 먹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 혹은 드라마의 화려한 이야기를 꿈꾸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에서 이제 스스로 준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생을 원하는 30대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것을 꿈꾸는 게 아니라, 남에게 구걸하지 않는 삶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니까.


완벽하지 않은 인생이기 때문에 채워 넣어야 할 구멍이 많아, 이런 인생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사소한 것들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소한 사치를 느낄 수 있다면 이미 인생의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바꿀 수 없는 사소함의 필요를 예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나의 해석으로 채워 넣는 이 과정이 인생에서 쉽게 겪을 수 없는 보물 중 하나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혼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침몰되어 분투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죠. 가끔이나마 어릴 적 앨범을 꺼내볼 때마다 느끼는 즐거움처럼, 지루하고 의미 없는 반복과 열등감을 견딜 수 있는 사소함을 만들 수 있다면 인생은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당신의 지루한 일상 밖, 그 또 다른 일상을 찾을 수 있길
이전 08화 여전히 불안한 오늘이 내일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