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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경 Oct 12. 2022

그렇게 영국, 첫 런던

갔다, 거기로 :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1  


여기의 일은 그만 다 잊자.

후, 불어 없애 버리자.

이제 난 아주 먼 데로 떠나 갈 테니!


“지금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닌 게 우리, 일주일 뒤면 여기를 떠야 합니다.”


“알어.”


“아는 분이 어째 통 갈 마음이 없어 보여서 말이지요.”


“몰라몰라. 바뻐. 니가 다 알아서 준비해.”


“어우 진짜! 가기는 갑니까?”


가기는 갔다. 문제는 한 달이 넘는 공백이었다. 김치 담그고, 곰탕 끓여야 집을 비울 수 있는 주부의

마음 같은 것. 내가 없어도 문제가 없도록, 나만 할 줄 아는 일들을 미리 하느라 진땀 흘렸을 거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날 새벽, 겨우 눈곱만 떼고서 집을 나설 수는 있었다. 긴가민가 했던 아이도 비행기에 오르자 비로소 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 진짜 가네, 그러면서.

열한 시간 하고 얼마를 더 새처럼 날아서 거기로 갈 거였다. 거기가 어딘가 하면 유럽, 햇살이 무지 뜨겁고 하늘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파래서 눈을 찡그리게 된다는 궁극의 남유럽! 새삼스럽게 마음이

팔랑팔랑 먼지 날리듯 그래졌다.


“너는 지금부터 뭐를 할 생각이야? 열 한 시간 동안!”


“오줌을 꾹 참을 생각입니다. 비행기 화장실은 정말 별로야.”


“너, 참 잘났다.”


정말 별로라는 비행기 화장실을 한 번도 쓰지 않고 거기로 가는 동안 나는 네 편의 영화를 보았고,

걔는 옆자리 할아버지가 자꾸만 자기한테 머리를 기대고 코를 곤다면서 짜증을 냈다.

걔가 오락을 할 땐 내가 졸았나 싶고, 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을 때는 걔가 고개를

꾸벅거렸다. 굉장히 괴로울 줄 알았던 반나절은 생각보다 술술 흘렀고, 두 번의 기내식을 먹었나

싶을 때 비행기 기장님이 우리 둘을 거기에다 떨궈 주었다.


거기는 런던,

우리의 시작은 런던이었다.







“엄마는 왜 런던으로 IN 하자고 한 거지?”


“노팅힐 가려고!”


“풋!”


“비웃지 마라.”


“예에.”


사실 우리의 목적지는 포르투였다. 거기서 놀 듯이, 살 듯이 그래보자고 했었다. 왜 굳이 포르투냐고?

몇 해 전, 교환학생으로 반 년쯤을 유럽에서 살아 본 아이가 프랑스 가고, 독일 가고, 이탈리아 가고,

스위스 여행도 하면서 간간이 내게 보내 준 사진과 글과 요청이 있었다. 그 중에 제일은 아이가

걸어왔던 한 통의 전화였고, 나는 수화기 너머의 걔 목소리에 벌써 마음이 소란했었다.


“엄마, 나는 엄마가 꼭 여기를 와봤으면 좋겠어. 엄마가 정말로 여기를 좋아할 것 같거든.”


그래, 거기가 바로 포르투였다.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촛불 심지처럼 박아 둔 다음에 그냥저냥 살았었다. 그런데 어딘가 멀리 가서 살아 보겠다, 놀아 보겠다, 쉬어 보겠다 결심을 했을 때 문득, 내 아이의

그때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진심 가득 담겼던 걔의 목소리.


“얘, 우리 포르투 가자!”


“갑자기 포르투를?”


“접때접때 니가 엄마한테 거기를 꼬옥 보라고 했었잖어.”


“내가? 내가 그랬었다고? 내가 언제?”


“이런! 귤 까먹을 놈! 아니, 그 말을 잊었다고?”

/

그럼 그렇지. 하지만 서운해 할 틈이 없었다. 거기라고 결정했으니 이제 난 반드시 거기여야 하는 이유를찾아야 했다. 포르투는 아름답다, 포르투는 물가가 비교적 싸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포르투 사람들은

아주 천진하고 정답다, 포르투는 풍경이 예술이다, 그렇고 그러하다, 포르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이유들을 가져다 붙이며 꼭 포르투로 가야만 하는 운명적인

이유를만들었다. 그랬더니 반드시 가야만 하고, 당장 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마법 같은 게 나를 덮었다.

“포르투 직항은 없습니다. 어디로 인(In) 해서 어디에서 아웃(Out) 할까요?

/

포르투로 들어가는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그 근처 어딘가의 나라를 정거장으로 삼아야 했다.

아이가 어디, 어디, 또 어디 그러면서 읊어 대는 소리들을 듣다가 [런던]이라는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노팅힐.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변하지 는 내 마음속의 특급 로맨스! 거기 가면 

줄리아 로버츠와  그랜트가 기다리고 것처럼, 마치  사람들과 약속이라도 하고 가는 것처럼 두근두근 런던을 향해 갔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을 거다. 어디 한번 해 보자. 목적지 없는 나그네 

흉내 좀 내 보자. 그동안 난 너무... 정해진 길 위에서만 놀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영국의 런던으로 들어가서 포르투갈의 포르투를 향해 가자 했고, 다시 내 나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베네치아에서! 딱 세 군데만 정해 두고 움직였던 헐렁헐렁이 여행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마땅히 갈 곳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행이 더 마음에 들었는가 싶기도 하다.






Episode



우리의 처음은 영국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지만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왜냐하면 포르투, 여행의 이유였던 포르투가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지를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포르투에 당도한 것은 깊은 밤이었다.

밤, 그 밤의 포르투는 서스펜스였다.

그토록 염원했던 포르투였으나 우리를 반겨 준 건 음습한 골목,

폐허 같은 건물들이었으니까.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캐리어를 머리에 이고서라도

냅다 뛰어 줄행랑을 치고 싶은 그런 기분.


“니 생각은 어때? 우리, 어떡했으면 좋겠니?”


“뭐...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이야기는 차차 하겠다.

과연, 산다는 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더라는 그 얘기도 차차!


- 다음회에 계속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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