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갔다, 거기로 :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4
옛날에 나 어렸을 때, 어쩌다 한 번씩 엄마가 “시내 나가자.” 이러는 날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지면 다섯
아이들의 흥분과 호들갑이 극에 달해서 감당이 불감당인 상태가 되었다. 씻으러 가는 애, 옷장 여는 애,
벌써 신발 찾아 신는 애까지! 하지만 나가자고 했대서 전부 다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애가 다섯인데 그 애들을 전부 데리고 시내 나갈 수는 없을 거 아닌가. 대개 둘이나 셋, 이렇게 뽑았는데 거기에 당첨이 된 날은 그야말로 [계 탔다!] 였다. 엄마가 나가자고 하는 시내는 신촌이나 명동, 을지로 혹은 영등포였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집을 벗어나 차를 타고 조금 멀리 갈 수만 있다면 무조건 천국이었으니까.
“엄마, 어디 가고 싶어?”
“글쎄다.”
“가고 싶은 데가 있을 거 아냐.”
“뭐... 아무 데나 다 좋아.”
“아, 쫌. 그러지 말고.”
아이가 나를 쥐 잡듯이 하면서 어디 갈 거냐, 그러는데 갑자기 시내 나가자고 했던 그 옛날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시내 나가!”
“시내? 어떤 시내?”
“어우, 몰라. 그냥 니가 데려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어디부터 갈 건지, 도무지 계획이 없는 나를 데리고 걔는 다시 빅토리아역으로 갔다. 다시, 라고 말하는 것은 히드로공항에 내려 집을 찾아갈 때 이미 한번 내려 본 적 있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거기가 아마도 걔가 생각하는 시내였는가 보다. 막연한 그 시내가 내 눈에 익은 곳이어서 안심이 됐다.
너무 새로운 곳은 무서운데.
우리는 그냥 돌아다녔다. 이 골목으로 시작해서 저 골목으로, 무작정의 걸음이었다. 가다가 이쁜 가게가 나오면 들어가고,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있으면 먹고, 또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 데나 철푸덕 입을 헤 벌리고 앉아 있기도 했다. 고맙게도 비는 안 오고 하늘이 파래서 기분이 썩 괜찮았다.
런던의 시내는 고풍스러운 풍경으로 가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복고, 복고들이 천지에 널렸다. 모자 가게도 복고, 꽃 가게도 복고, 좋은 냄새들이 모락모락하던 아로마 가게는 약간 복고! 나무 살림들만 모아 놓은
가게에 들어갔다가 하마터면 전 재산 탕진하고 거지 꼴로 돌아올 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게,
뭐든 굉장히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따지는 걔인데 내가 막 이거 산다, 저거 사겠다, 난리블루스를 출 때
전혀 반대가 없었단 거다. 이쯤 되면 컷! 이제 그만! 하고 외칠 법도 한데 다 사라고 했다. 살까? 사 갈까? 그러면 무조건 사라고 하는 거다. 어, 어, 사! 이러면서.
“너, 왜 그래?”
“내가 뭘?”
“왜 다 사래? 그걸 다 사면 어떻게 가져가?”
“내가 가져가겠지.”
“다 사고 나서 우리 거지되면?”
“거지 안 됐잖아.”
“내가 안 샀으니까 그렇지.”
“어차피 엄마는 안 살 거잖아.”
“눈이 휙 돌아서 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부추기면 안 되지.”
“사라, 사라, 그래야 안 사지.”
“얘, 뭐래.”
우리 애는 청개구리였다. 하라 그러면 안 하고, 하지 말라 그래야 했다. 항상 그랬다. 뭘 꼭 시키고 싶은 게 있을 때는 [너, 이거 절대 하면 안 된다. 알겠지?] 이러면서 시켜야 했다. 하, 도대체 쟤가 누굴 닮아서
저러나. 어떻게 나 같은 사람 속에서 청개구리 아이가 나왔을까.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청개구리였던 거다. 사라, 사라, 그래야 안 사는 엄마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던 아이의 말이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나, 개구리였구나. 청개구리.
걷고 걷고 하면서 시내 구경을 할 때, 내 나침반은 아이의 뒤꼭지였다. 나는 그냥 아이만 보고 걸었다.
내가 저를 쫄쫄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는 열 걸음쯤마다 한 번씩 뒤를 돌거나 옆을 살피며
나를 찾았다. 그러는 아이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저 아이가 나의 새끼손까락을 꼭 부여잡고서 나만 따라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되었구나.
그러다 어딘가, 사람 많은 어느 골목에서 나를 잠시 놓쳤을 적에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보았다.
“엄마, 여기!”
손을 높이 들어 나를 부르는 그 애를 보는데 갑자기 왈칵, 두 눈이 뜨거워졌다. 나를 보자마자 안심 표정을 짓는 걔가 고맙고도 대견했었는가 보다.
낙엽이 지듯 나의 세월이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나의 시대는 가고 걔의 시대다.
어쩐지 이 여행이 그런 사실을 인두로 찍어
내게 알려 줄 것만 같았다. 괜찮지, 뭐. 괜찮다.
다리 아프지 않느냐 그러길래 다리 아프다, 했다. 그러자 나를 이끌고 근처에 있는 공원, 그린파크로
가더라. 유모차를 밀고 나온 엄마, 한가로이 앉아 연애인 듯 아닌 듯 그러고 있는 젊은 애들,
서둘러 떨어진 팔랑 낙엽과 아직은 푸르게 쭉 뻗어 있는 길. 이래서 사람들이 공원으로 오는 거였다.
마음이 바흐의 첼로를 켠 듯 중후하게 행복했다.
“어무니, 커피 마시고 싶을 때 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모르지? 엄마는 밥보다 커피를 더 많이 먹잖어.”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잔을 내손에 물려주고서 아이는 또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를 데리고
또 어디로 갈 건지, 어디로 가면 내가 좋아할지, 그런 공부를 하고 있겠다고 미루어 짐작했다. 감회가
새롭다.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모든 것이 다 새롭고 뜻깊다. 감회가 새롭다고 느끼는 건
나이를 먹었다는 뜻인데.
고만고만하게 돌아다니다가 만났던 조그만 마켓. 세인트 제임스 교회 안에 펼쳐진 상점들을
돌아볼 때는 우리 가게 생각이 났다.
에프북언더. 에프북이 만든 가게라서 에프북언더.
사실은 평생을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으려고 했는데 여의치가 않아서 시작한 가게였다.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속만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종이 책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책 냄새, 종이 냄새가 얼마나 좋은데. 얼마나 맛있는데. 그런 맛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가
속상할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만든 물건들을 이고지고 여기, 이 교회로 와서 팔아 보고 싶었다. 물건 파는
재미란 게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우리 회사 애들이 좋아할 거 아닌가. 코에 바람 쐬는 걸 무지 좋아하는
후배들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내가 꼭, 너희들을 다 데리고 긴 여행을 떠나 오겠다, 굳게 다짐했던 것 같다.
“엄마, 이제 갑시다!”
“그래, 가자. 집에 가자.”
생각보다 길었던 시내에서의 시간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리가 엄청 아팠지만,
안 그런 척을 했다. 그래야 이 아이가 기꺼이 또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 줄 테니.
-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