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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경 Oct 13. 2022

먼 데서 같이 먹는 밥

갔다, 거기로 :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5


비둘기 고기를 먹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먹는 것은 자유이겠지만,

그거를 사서 나더러 구우라고 하면

죽은 척을 할 작정이었다.  



식전 댓바람부터 정갈히 몸단장을 하고서 아이 방의 동태를 계속 살폈다. 안 일어나나, 얼른 일어나야 

할 텐데, 이제 좀 일어났으면 싶네, 언제까지 자려나. 강아지처럼 걔의 방문 앞을 왔다갔다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부스스한 얼굴을 문지르면서 방문을 열더니 눈도 다 안 뜨고 내게 물었다. 

이 놈 봐라. 얼굴에 살짝 짜증이 묻어 있는 거 같은데. 


“왜지? 엄마 왜 그러고 있지?”


“시장 가기로 했잖어.”


“시장 가기로 한 거지, 새벽 시장에 가기로 한 건 아니지 않나?”


“새벽 아닌데.”


“몇 신데?”


“일곱 시 넘었는데.”


“이런! 절대로 새벽이 아니군. 일어납니다요.”


일어난다, 가만히 좀 계셔라, 씻어야 할 거 아닌가, 물은 좀 마시자, 어쩌구 하면서 질질 시간을 끄는 

그놈을 데리고 집을 나선 건 한 세월이 지나서였다. 그럼 그렇지. 아침 일찍 시장에 가자 했던 간밤의 

그 말을 어쩌자고 곧이곧대로 믿었던 건지. 




맑지는 않지만 비는 오지 않았던 이른 아침. 나 하나 걔도 하나, 둘이 하나씩 커다란 장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길 위에 올라섰다. 큰 가방 두 개를 들고 시장으로 가니까 흥이 났다. 뭐, 많이 사야지! 

난 완전 신났다. 세계 어디를 가든 가장 흥미로운 건 시장 놀이에 장보기다. 여기 사람들은 뭐 먹고 사나, 우리 안 먹는 특이한 거 먹는가, 하면서 구경을 하는 재미가 꿀맛이지 않던가. 나는 들떠서 기분 좋은 

목소리로 퐁당퐁당 물었다. 


“뭐 살까? 너 뭐 먹고 싶은데?”


“고기 먹어야지요. 내가 전부터 꼭 먹어 보고 싶은 고기가 있었거든.”


“무슨 고긴데?”


“비둘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큰일났다. 그냥 다시 돌아가자고 할까? 여기는 시장에서 비둘기 고기도 파나? 

무언가 푸짐한 걸 차려 먹을 참이었는데 비둘기란다. 하! 이 노릇을 어떡한다. 


“미쳤어?”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비둘기가 아닐 걸. 식용 비둘기가 따로 있어.”


“비둘기면 다 똑같은 비둘기지! 헛소리 하지 마.”


“비둘기 고기는 최고급 요리입니다요.”


“안 돼! 절대 안 돼!”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해 먹습니다.”


오늘의 시장놀이는 망쳤다. 쟤가 은근히 똥고집에 꼴통이라, 뭐든 한다면 하는 앤데 분명히 장바구니에 

푸드득 비둘기를 잡아서 담을 것만 같았다. 흑구름, 먹구름! 게다가 시장에 당도해 입구에서 딱 마주친 

정육점이 왠지 좀 싸했다. 통째로 잡아서 걸어 놓은 새인지, 닭인지, 정체 모를 것들이 죄 비둘기로 보여서 앞이 캄캄했다. 




아니, 이 정육점은 왜 핑크 조명을 쓰지? 어째 좀 으스스하다. 공포다. 과일 가게의 수박은 또 왜 이렇게 큰 거야? 아, 진짜! 무서워 죽겠네.


“저거 뭐야? 저거가 비둘긴가?”


“닭일 걸.”


“비둘기 같은데.”


“닭입니다.”


“너,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마. 짜증나!”




“갑시다.”


“왜? 어디? 어디 가게?”


“역시나 비둘기 고기를 안 파네. 영국에서도 먹을 수 없는 거였군.”


농인지 찐인지 모를 그 놈의 흉악한 농간에 휘말려 공포심 만개했던 마음이 누그러진 것은 근처에 있는 

마트로 들어서면서였다. 정말 다행이지 뭔가. 비둘기 고기를 내다 걸지 않았던 정육점 사장님의 윤리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오리고기... 고기마다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딱 써 붙여 놓은 

마트의 진열 방식에도 경의를 표하는 순간이었다. 마트에도 역시 비둘기가 없다는 게 고마웠다.





“엄마, 왜 파란 달걀을 사지?”


“예쁘잖아. 귀족적이고!”


“나는 비둘기보다 이게 더 무섭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키우는 닭이 낳았다는 파란색 달걀을 샀다. 고급지다. 뚜껑이 파란 우유도 샀다. 달걀이랑 잘 어울린다. 로즈메리 워터? 이거도 살까? 시원한 맛이 나겠어! 식빵도 긴 줄로 하나 사고, 태그가 새로워서 궁금한 맥주도 겟. 베이컨은 두툼한 걸로 사고, 커다란 병의 올리브오일도 하나 담은 뒤에 주렁주렁 토마토 그리고 버터.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도 넉넉히 샀다. 쇠고기 담고, 돼지고기도 담고! 

이미 3년 전의 일이니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둘이 밥 한 끼 사 먹을 돈으로 이렇게 몇날며칠 동안 

해 먹을 음식을 장만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왠지 굉장히 알뜰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혹시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세 밤 자면 여기를 떠야 합니다.”


“알어. 그게 뭐?”


“저 식빵이랑 버터 같은 거를 다 먹을 수가 있냐 이거지.”


“엄마가 다 먹을게. 걱정하지 마!”


내 지갑을 맡겨 놨더니 지 돈인 것처럼 잔소리를 한다. 다 먹을 수 있다고, 걱정을 붙들어매라고 

장담하면서 사긴 했는데 그 무거운 것들을 헉헉거리며 들고 걷다 보니 어쩌면... 올리브오일은 

내가 물 대신 다 마시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사나흘 동안 아이는 열심히 집밥을 했다. 당연히 엄마인 내가 다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맙게도! 그런 내막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비둘기든, 참새든 다 사라고 했을 건데 말이다. 

종일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뭘 좀 사 먹고 들어가자, 그러면 아니랬다. 파랗고 귀족적인 그 달걀로 

뭔가 해 먹어야 한댔다. 먹다 남은 돼지고기로 볶음밥을 만들 거라고도 했다. 엄마는 오늘 저녁밥으로 

우선 버터를 다 먹은 뒤 올리브오일을 마시라는 말도 했던 것 같다. 그래, 다 먹고 죽자! 나는 웃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꼬박꼬박 무언가를 함께 먹었다. 밥도 먹고, 와인도 마시고. 같이 배부르고, 같이 취하고.

아침을 먹을 땐 새들이 짹짹거렸고, 저녁에는 창을 꽉 채운 석양을 바라보면서 부지런히 포크질을 했다. 



실은 모유를 단 한 방울도 못 먹이고 키웠다. 

아가 때부터 장에 탈이 생겨서

오직 식물성 분유만 주어야 했고, 

이유식 구경도 제대로 못해 본 아이였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삼시세 끼 중에서 단 한 끼도 

해 주지를 못했었지, 싶다. 

고등학교 때 간신히 아침밥과 도시락,

하루 두끼의 밥을 만들어 먹이며

벼락치기로 잘해 준 적 있었던 것. 

아마도 그게 전부였을 거다. 

그 오래 된 미안함은 쉬 가시질 않고

내 마음속에 푸른 멍으로 남아 있었다. 

파란 달걀을 낳는 어미 닭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주었던 그 결핍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이 여행이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날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만들어 주는 밥은 맛이 좋았다. 커다란 프라이팬 하나와 커다란 접시 두 개 그리고 두 개의 포크와 

두 개의 나이프. 우리의  사흘은 그걸로 충분했다. 아이가 매일 똑같은 접시 위에 같은 듯 다른 음식을 

올려서 들이밀면 나는 꼭 어미새의 모이를 기다리던 참새처럼 꼭꼭 씹어 맛있게 잘도 먹었다. 밖에 나가 비싼 돈 내고 사 먹는 음식들은 감히 명함도 못 내밀 맛있음이었을 거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의 맛은 

아니었을 텐데 그저 식탁 앞에 마주앉은 도란함이 양념을 뿌려 주어 괜히 반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서울 가면 식당 차리자!”


“예에.”


“요리는 니가 하고 나는 설거지를 할게. ”


“그럼, 취업 준비 그만 둡니다.”


“그냥 먹던 밥이나 먹어라.”


“예에.”


런던을 떠나던 날, 식빵 봉지 속에 남아 있던 넉 장의 빵을 꺼내어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그 밥은 내가 했다. 아침에는 입맛이 영 없다고, 아무 것도 안 먹겠다고 하면서 짜증을 유발했던 그 놈이 맛있네, 그래서 기분이 참 좋았다. 


 -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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