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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경 Oct 13. 2022

너라는 이름의 나침반

: 갔다, 거기로 :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4


나는 걔의 뒤꼭지만 보았고,

걔는 열 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지 엄마가 잘 따라오나 보려고.


옛날에 나 어렸을 때, 어쩌다 한 번씩 엄마가 “시내 나가자.” 이러는 날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지면 다섯

아이들의 흥분과 호들갑이 극에 달해서 감당이 불감당인 상태가 되었다. 씻으러 가는 애, 옷장 여는 애,

벌써 신발 찾아 신는 애까지! 하지만 나가자고 했대서 전부 다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애가 다섯인데 그 애들을 전부 데리고 시내 나갈 수는 없을 거 아닌가. 대개 둘이나 셋, 이렇게 뽑았는데 거기에 당첨이 된 날은 그야말로 [계 탔다!] 였다. 엄마가 나가자고 하는 시내는 신촌이나 명동, 을지로 혹은 영등포였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집을 벗어나 차를 타고 조금 멀리 갈 수만 있다면 무조건 천국이었으니까.




“엄마, 어디 가고 싶어?”


“글쎄다.”


“가고 싶은 데가 있을 거 아냐.”


“뭐... 아무 데나 다 좋아.”


“아, 쫌. 그러지 말고.”


아이가 나를 쥐 잡듯이 하면서 어디 갈 거냐, 그러는데 갑자기 시내 나가자고 했던 그 옛날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시내 나가!”


“시내? 어떤 시내?”


“어우, 몰라. 그냥 니가 데려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어디부터 갈 건지, 도무지 계획이 없는 나를 데리고 걔는 다시 빅토리아역으로 갔다. 다시, 라고 말하는 것은 히드로공항에 내려 집을 찾아갈 때 이미 한번 내려 본 적 있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거기가 아마도 걔가 생각하는 시내였는가 보다. 막연한 그 시내가 내 눈에 익은 곳이어서 안심이 됐다.

너무 새로운 곳은 무서운데.

우리는 그냥 돌아다녔다. 이 골목으로 시작해서 저 골목으로, 무작정의 걸음이었다. 가다가 이쁜 가게가 나오면 들어가고,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있으면 먹고, 또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 데나 철푸덕 입을 헤 벌리고 앉아 있기도 했다. 고맙게도 비는 안 오고 하늘이 파래서 기분이 썩 괜찮았다.








런던의 시내는 고풍스러운 풍경으로 가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복고, 복고들이 천지에 널렸다. 모자 가게도 복고, 꽃 가게도 복고, 좋은 냄새들이 모락모락하던 아로마 가게는 약간 복고! 나무 살림들만 모아 놓은

가게에 들어갔다가 하마터면 전 재산 탕진하고 거지 꼴로 돌아올 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게,

뭐든 굉장히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따지는 걔인데 내가 막 이거 산다, 저거 사겠다, 난리블루스를 출 때

전혀 반대가 없었단 거다. 이쯤 되면 컷! 이제 그만! 하고 외칠 법도 한데 다 사라고 했다. 살까? 사 갈까? 그러면 무조건 사라고 하는 거다. 어, 어, 사! 이러면서.


“너, 왜 그래?”


“내가 뭘?”


“왜 다 사래? 그걸 다 사면 어떻게 가져가?”


“내가 가져가겠지.”


“다 사고 나서 우리 거지되면?”


“거지 안 됐잖아.”


“내가 안 샀으니까 그렇지.”


“어차피 엄마는 안 살 거잖아.”


“눈이 휙 돌아서 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부추기면 안 되지.”


“사라, 사라, 그래야 안 사지.”


“얘, 뭐래.”


우리 애는 청개구리였다. 하라 그러면 안 하고, 하지 말라 그래야 했다. 항상 그랬다. 뭘 꼭 시키고 싶은 게 있을 때는 [너, 이거 절대 하면 안 된다. 알겠지?] 이러면서 시켜야 했다. 하, 도대체 쟤가 누굴 닮아서

저러나. 어떻게 나 같은 사람 속에서 청개구리 아이가 나왔을까.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청개구리였던 거다. 사라, 사라, 그래야 안 사는 엄마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던 아이의 말이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나, 개구리였구나. 청개구리.




걷고 걷고 하면서 시내 구경을 할 때, 내 나침반은 아이의 뒤꼭지였다. 나는 그냥 아이만 보고 걸었다.

내가 저를 쫄쫄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는 열 걸음쯤마다 한 번씩 뒤를 돌거나 옆을 살피며

나를 찾았다. 그러는 아이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저 아이가 나의 새끼손까락을 꼭 부여잡고서 나만 따라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되었구나.

그러다 어딘가, 사람 많은 어느 골목에서 나를 잠시 놓쳤을 적에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보았다.


“엄마, 여기!”


손을 높이 들어 나를 부르는 그 애를 보는데 갑자기 왈칵, 두 눈이 뜨거워졌다. 나를 보자마자 안심 표정을 짓는 걔가 고맙고도 대견했었는가 보다.




낙엽이 지듯 나의 세월이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나의 시대는 가고 걔의 시대다.

어쩐지 이 여행이 그런 사실을 인두로 찍어

내게 알려 줄 것만 같았다. 괜찮지, 뭐. 괜찮다.





다리 아프지 않느냐 그러길래 다리 아프다, 했다. 그러자 나를 이끌고 근처에 있는 공원, 그린파크로

가더라. 유모차를 밀고 나온 엄마, 한가로이 앉아 연애인 듯 아닌 듯 그러고 있는 젊은 애들,

서둘러 떨어진 팔랑 낙엽과 아직은 푸르게 쭉 뻗어 있는 길. 이래서 사람들이 공원으로 오는 거였다.

마음이 바흐의 첼로를 켠 듯 중후하게 행복했다.


“어무니, 커피 마시고 싶을 때 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모르지? 엄마는 밥보다 커피를 더 많이 먹잖어.”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잔을 내손에 물려주고서 아이는 또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를 데리고

또 어디로 갈 건지, 어디로 가면 내가 좋아할지, 그런 공부를 하고 있겠다고 미루어 짐작했다. 감회가

새롭다.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모든 것이  새롭고 뜻깊다. 감회가 새롭다고 느끼는  

나이를 먹었다는 뜻인데.










고만고만하게 돌아다니다가 만났던 조그만 마켓. 세인트 제임스 교회 안에 펼쳐진 상점들을

돌아볼 때는 우리 가게 생각이 났다.

에프북언더. 에프북이 만든 가게라서 에프북언더.

사실은 평생을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으려고 했는데 여의치가 않아서 시작한 가게였다.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속만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종이 책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책 냄새, 종이 냄새가 얼마나 좋은데. 얼마나 맛있는데. 그런 맛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가

속상할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만든 물건들을 이고지고 여기, 이 교회로 와서 팔아 보고 싶었다. 물건 파는

재미란 게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우리 회사 애들이 좋아할 거 아닌가. 코에 바람 쐬는 걸 무지 좋아하는

후배들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내가 꼭, 너희들을 다 데리고 긴 여행을 떠나 오겠다, 굳게 다짐했던 것 같다.




“엄마, 이제 갑시다!”


“그래, 가자. 집에 가자.”


생각보다 길었던 시내에서의 시간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리가 엄청 아팠지만,

안 그런 척을 했다. 그래야 이 아이가 기꺼이 또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 줄 테니.


-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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