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한 몸에게 미안함을 안기며

작은 쓰담 9. 달래서 쓰기

by 차미레

아프면 겁이 난다.

단순히 몸이 아파서가 아니다.

어디가 잘못된 걸까, 얼마나 심각한 걸까,

혹시 돌이킬 수 없는 말이 내게 들려오진 않을까.

그 두려움이 몸보다 먼저 반응한다.


병원에 가는 게 쉽지 않다.

문 앞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조금만 더 참자”며 돌아서고,

“이 정도는 괜찮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타이른다.

통증은 여전한데도,

‘별일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실보다 늘 한 발 앞서 달린다.


예전엔, 몸이 좀 아프면

“그냥 피곤한가 보지” 하고 넘겼다.

한두 끼 거르고, 잠 조금 못 자고, 허리나 어깨가 좀 결려도

그건 늘 '감내하는 일상'의 일부였다.

‘버티는 나’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몸이 정말로 고장 나기 시작했다.

예고도 없이 툭 하고 무너지듯,

기운이 빠지고, 숨이 가빠지고,

이전 같으면 지나쳤을 증상 하나하나가

더는 나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때서야 조금씩 이해되었다.

“몸은 달래서 써야 한다”는 말.

나이 들면, 예전처럼 쓰면 안 된다는 말.

몸도 관계처럼, 마음처럼

다정하게 달래며 가야 한다는 조언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몸은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챘다.

쉬고 싶다고 말했고,

멈춰야 한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직 괜찮다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억지로 끌고 가려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지치면 쉬고, 통증이 오면 그 신호에 귀 기울이는 연습.

무조건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짐.


하지만 쉽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고통을 참고 또 참고,

더는 참을 수 없어

진통제를 찾아 삼킨다.

더 이상 버티는 건 못하겠다는 걸 알면서도

병원 문을 향한 발걸음은 망설임으로 무거워진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돌봐줄 수 없다는 걸.

무섭지만, 내일은 병원 문을 두드려보려 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약한 구석을, 조용히 꺼내어 보려 한다.

.

그건 어쩌면,

고장 난 몸을 원망하는 대신

“수고했어, 여기까지 잘 버텨줘서 고마워.”

작게, 하지만 진심으로 속삭여 주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09화마음에 돌 하나,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