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지평선(learning horizon) 너머

경험으로부터 배운다는 착각, 그리고 성찰

by 차미레
모든 경험이 배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지 못한 결과는-
깨닫지 못한 실수는-
그저 흘러간 사건일 뿐이다.
우리는 ‘직접 겪었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배움은
‘겪음’이 아니라,
그 겪음을 되돌아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직접 겪어봐야 안다.”

물에 빠져봐야 수영을 배우고, 넘어져봐야 길을 찾는다고.

경험은 언제나 가장 강력한 스승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일종의 ‘학습 지평선’이 있다.

스스로 학습의 효과를 인식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 말이다.


어떤 아이는 어제의 실수를 오늘은 되풀이하지 않지만,

어떤 아이는 1년이 지나도 같은 자리에 머문다.


차이는, 단순한 경험의 유무보다

그 경험이 어떻게 정리되고,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그 결과가 자신의 지평선 안에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우리가 하는 수많은 행동들이

이 학습 지평선을 넘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결과가 너무 멀리 있거나,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하지 못한 경험은,

결국 배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공부 안 해도 지금은 괜찮은데요?”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 결과는 그의 지평선 너머에 있다.


수업을 방해하거나 관계를 망쳐도,

그 여파가 당장 찾아오지 않으면

그 행동은 ‘괜찮은 행동’으로 오해되고, 반복된다.


우리는 깨닫는다.

직접적인 경험만으로는 배울 수 없다.


철학자 존 듀이는 말했다.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찰로부터 배운다.”


성찰이 있어야 경험은 비로소 ‘배움’이 된다.

단순히 겪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결과를 곱씹고,

맥락을 연결하며,

의미를 되새기지 않으면-


경험은 그냥 지나간 사건일 뿐,

어느 날 다시 반복될 실수일 뿐이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만들어주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아이의 지평선 안으로 끌어오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가 볼 수 있도록 결과를 보여주고,

그 사이의 인과를 함께 짚어주며,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존재.

그게 교사다.

그리고 그게,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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