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Episode 3.
평등한 세상에서 일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너무 쉽게 금이 갔다.
“교감 선생님 말씀은… 결국 저보고 양보하라는 말씀이신가요?”
그 순간, 교무실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도, 커피포트의 김 나는 소리도—
그때만큼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영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고,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하영은 스스로를 ‘운 좋은 세대’라 생각해 왔다.
"남자는 사범대, 여자는 교대"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고,
이젠 여교사들이 학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승진에서의 차별도 사라졌다고 믿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하지만 이번 수업대회 출전 문제는,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작년, 하영은 첫 도전에서 아쉽게 4위에 머물렀다.
올해는 본선에 올라 수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영이 준비한 과목에 경력 3년 차의 남교사가 출전 의사를 밝혔다.
그 교사는 교감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번에는 ○○ 선생에게 기회를 줘보면 어떻겠나.”
교감은 당연한 듯 말했다.
○○ 선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에게로 기울어진 저울추를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작년, 본인이 하영에게 “내년에 꼭 본선에 나가자”라고 했던 말은, 까맣게 잊은 듯했다.
그 말은, 하영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당신은 물러나라.’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교내 예선을 치르죠.
어차피 대표는 한 명이니, 수업을 공개하고 심사를 받는 걸로 하죠.”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그런 제안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교감 말 = 결정’이라는 오래된 공식.
그 룰을 정면으로 거부한 사람이,
지금 교무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며칠 뒤, 교내 수업공개가 열렸다.
두 사람은 같은 시간, 같은 조건에서 수업을 진행했고—
결과는, 하영의 압도적 승리였다.
그날 이후, 하영은 ‘당돌한 교사’가 되었다.
윗사람에게도 ‘아니요’를 말할 줄 아는 사람,
돌직구를 던지는 사람.
누군가는 뒤에서 수군거렸고, 누군가는 부러워했다.
하지만 하영은 알고 있았다.
그 유리천장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걸.
아직 깨지지 않았지만,
분명- 금은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