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무너질 때, 개인의 성실은 어떻게 소모되는가

by Way Maker

조직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고장나는 건 KPI도, 일정도 아니다.
사람이다. 더 정확히는 성실한 사람이다.

성실함은 원래 생산성을 올리는 미덕인데, 어떤 조직에서는 그게 리스크를 흡수하는 완충재로 쓰인다.
규칙이 없으면 누군가가 규칙이 되고, 체계가 없으면 누군가가 체계를 대신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대개 “끝까지 해내는 사람”에게 떨어진다.


1) ‘권한 없이 책임만 커지는’ 구조는 성실을 빚으로 만든다

내가 맡은 일은 분명 기획이었는데, 실제로는 수습과 정렬에 가까웠다.
산출물은 계속 만들어지는데, 승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우선순위는 매일 바뀌었고, 결정은 지연됐다. 그런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늘 내 쪽으로 모였다.

이런 구조에서 성실함은 장점이 아니라 빚이 된다.

결정이 없으니 내가 먼저 정리한다.

기준이 없으니 내가 가설을 만든다.

체계가 없으니 내가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그런데 결정권은 없으니, 다시 수정한다. 또 수정한다. 더 빨리 수정한다.


성실함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계속 유지되도록 연명시키는 연료가 되는 순간이 있다.
조직은 고치지 않아도 굴러가고, 성실한 사람은 점점 더 소모된다.


2) 붕괴의 신호는 ‘업무량’이 아니라 ‘관계 스트레스’에서 온다

나는 일이 많아도 버텨본 사람이다.
하지만 힘들었던 건 업무 자체보다 관계였다.

업무 스트레스는 계산이 된다. “이만큼 하면 끝”이 있다.
하지만 관계 스트레스는 끝이 없다.
말투 하나, 책임 전가 한 번, 애매한 지시, 확인되지 않은 소문, 회의에서의 미묘한 파워게임…
이런 것들은 작업 시간을 갉아먹는 게 아니라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자존감이 줄어들면 성실함은 더 위험해진다.
“내가 더 잘하면 해결될 거야”라는 착각으로,
성실함을 더 갈아 넣게 되니까.


3) 성실한 사람은 ‘시스템의 대체재’가 된다

조직이 튼튼하면, 개인의 성실은 성과로 바뀐다.
하지만 조직이 흔들리면, 개인의 성실은 시스템의 대체재가 된다.

그때부터 성실함은 ‘더 좋은 결과’가 아니라 ‘사고 방지’로 평가받는다.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당연한 일이 되고,
문제가 터지면 “왜 미리 막지 않았냐”가 된다.

성실한 사람은 점점 이런 일을 하게 된다.

누락을 막기 위해 혼자 체크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혼자 조정한다

결정을 기다리기 싫어 혼자 결론을 만든다

결과가 흔들릴까 봐 혼자 리스크를 떠안는다

나는 어느 순간 ‘기획자’가 아니라 리스크 흡수 장치가 되어 있었다.


4) 성실함은 의지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나는 한동안 “내가 부족해서 이런가”라고 생각했다.
흔들리는 마음도, 결국 내 문제 같았다.

그런데 복기해보면 결론은 반대다.
성실함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조직의 조건에 의해 소모된다.

역할과 책임이 불명확한가

승인자와 의사결정 구조가 선명한가

우선순위가 문서로 공유되는가

일정과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프로세스”로 작동하는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있는가(회의, 합의, 기록)

이 조건이 없으면, 성실함은 미덕이 아니라 소모품이 된다.


성실함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성실함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성실함을 핑계로 나를 방치했던 순간이 더 많았다.

조직이 무너질 때, 성실한 사람은 더 성실해지고
그만큼 더 조용히 무너진다.

6) ‘붕괴의 체크리스트’

조직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이상하게도 신호는 항상 비슷했다.
처음엔 작은 불편함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게 ‘문화’가 된다.

내가 복기하면서 남긴 체크리스트는 다음이다.


① “누가 결정하나?”가 매번 달라진다

회의가 길어지는 이유는 의견이 많아서가 아니다.
결정권자가 불명확해서다.
결정권자가 불명확하면, 일은 진행되지 않고 수정만 반복된다.
성실한 사람은 그 사이에서 “일단 내가 정리해볼게요”를 말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책임을 떠안는다.


② 기준이 문서가 아니라 ‘사람의 기분’이 된다

오늘 OK였던 것이 내일은 NG가 된다.
그 변화에 이유가 없다.
이때 사람들은 데이터를 찾기보다 눈치를 학습한다.
성실한 사람은 기준을 만들려고 하고, 누군가는 그 기준을 싫어한다.
기준이 싫은 게 아니라, 기준이 생기면 ‘책임’이 생기니까.


③ 업무가 아니라 ‘수습’이 주업무가 된다

일이 많아도 괜찮다.
근데 일이 ‘쌓이는’ 게 아니라 새서 흐르는 조직이 있다.
누락, 오해, 말 바뀜, 전달 오류, 갈등…
그때부터 성실은 생산이 기억되지 않고, 사고를 막은 흔적만 남는다.
즉 “한 일이” 아니라 “안 터진 일”로 평가된다.


④ 리소스 부족이 ‘개인의 희생’으로 해결된다

체계가 없는 조직은 늘 이렇게 말한다.
“이번만.” “급해서.” “네가 잘하니까.”
그리고 그 ‘이번만’이 누적된다.
성실한 사람은 버틴다. 버티면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그 칭찬은 다음 희생의 선불금이 된다.


⑤ 갈등의 해결 방식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회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회피하거나, 뒤에서 말하거나, 누군가를 탓한다.
그러면 성실한 사람은 중재자가 된다. 하지만 중재는 공식 역할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
감정 노동이 길어지면 성실은 결국 기력으로 바뀐다.


여기서 불편한 사실 하나가 남는다.
“조직이 문제였다”는 말이 절반만 맞다는 것.

나는 이런 조직에서 자꾸 같은 역할을 맡았다.
내가 선택한 것도 있고, 내가 끌려간 것도 있다.

나는 문제를 보면 못 지나친다.

나는 정리하면 빨라진다고 믿는다.

나는 ‘완성’이 되면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이 비어 있는 부분을 내가 채웠다.

그게 내 장점이었고, 동시에 내 약점이었다.
장점은 구조가 있을 때 성과가 되고, 구조가 없을 때는 소모가 된다.


대한민국 회사가 대부분 비슷하다는 걸 인정하면, 결국 남는 선택지는 하나다.

실력 있는 사람들 곁으로 가는 것.

적어도 뭘 아는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


아는 사람은 일을 ‘감정’으로 끌고 가지 않고, ‘기준’으로 움직인다.

그들과 일할 때 성실은 소모되지 않고, 실력으로 환원된다.

사실 모두가 대기업을 원하는건 이럴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조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규칙이 아니라 수준이다.

수준이 사라지면, 남는 건 말과 기분과 책임 떠넘기기다


성실로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은 결국 사람의 ‘수준’에서 생긴다.

성실은 혼자서 지키는 덕목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의 수준이 지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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