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인생
산 에서 사람들은 정상 사진만 찍는다.
정상에서 찍힌 풍경, 정상에서 찍힌 얼굴, “해냈다”는 문장.
그런데 산을 오르는 사람은 알고 있다.
산은 정상을 보고 오르는 게 아니다.
발끝을 보고 오른다.
정상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저기까지 언제 가지, 나는 할 수 있나, 지금 속도로 괜찮나.
정상은 너무 멀어서 현재를 조롱한다.
머릿속에서는 늘 ‘내가 부족한 이유’가 먼저 떠오른다.
반대로 발끝은 다르다.
발끝은 오늘의 지형을 보여준다.
돌이 많은지, 미끄러운지, 한 번 쉬어야 하는지.
그건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냥 “다음 한 걸음”을 알려준다.
다들 정상을 보는 세상이다.
‘언제 취업할까, 언제 집을 살까, 언제 결혼할까'
질문은 많아지는데, 답은 멀리 있다.
정상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불안이 단체로 회의를 연다.
(근데 결론이 없다. 매우 비효율적이다.)
멀리 있는 답은 늘 불안을 키운다.
발끝을 본다는 건 꿈을 버리는 게 아니다.
정상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상을 현실로 바꾸는 방법이다.
정상은 ‘생각’이지만, 발끝은 ‘행동’이다.
발끝은 아주 솔직한 팀장이다.
칭찬은 없고, 피드백만 있다.
대신 피드백이 정확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정확한 피드백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최소한 “무엇 때문에 망하는지”는 알려주니까.
발끝은 거창한 얘기를 안 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한다.
‘지금 여기’에서 실수할 포인트를 알려준다.
산에서는 그게 생명이다.
내가 미끄러지면 산은 사과하지 않는다.
산은 원래 그런 애다.
인생도 비슷하다.
정상은 늘 멋있고, 발끝은 늘 지저분하다.
발끝에는 영수증이 있고, 결제 알림이 있고,
“이건 왜 샀지” 같은 흔적이 남아 있다.
정상에서 찍힌 사진은 멋지지만,
발끝에 찍힌 건 대부분 현실이다.
산은 정상을 보고 오르는 게 아니다.
발끝을 보고 오른다.
정상은 결국 따라온다.
물론 가끔은 뒤통수처럼 따라온다.
나는 오늘도 발끝을 본다.
다음 한 걸음만 보자.
오늘은 다음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산은 그렇게 오른다.
정상은 그렇게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