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회사의 기획자 이야기_Appendix 나를 사랑하는 법
불편한것을 해야 인간다운가?
우리 부모님의 잣대로 보면 나는 늘 편하게만 산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은 꽤나 엄격하신 분들이다. 평가의 잣대가 분명하고, 그 기준에 못 미치면 깊이 실망하고 거친 꾸지람을 쏟아내는 분들이다. 어릴 때는 그 잣대에 맞추기 위해 애써 봤다. 때로는 거짓말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들켰고, 더 크게 혼났다. 그때마다 나도 나를 미워하게 됐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 부모님의 말은 모두 다 맞는 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에게 쏟아내는 실망감이 나의 실패로만 느껴졌다. 그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나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오늘을 되는 대로 살았다. 내일을 그리기보다는 지금의 순간을 견디는 데 급급했다. 크게 반항하지도, 소리쳐 싸우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냥 그렇게 오늘을 살았다.
그래서 부모님은 늘 나를 실망스러워했고, 나는 늘 미안했다.
하지만 요즘 생각해보면 나는 편하게 살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게 중요한 일에 온전히 몰두할 때가 많았고 주말 없이 일을 고민하고, 작은 성취를 위해 스스로를
갈아넣었다.
내 삶의 방식은 단순히 '편안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늘 나에게 의미있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단지 "버틴다"는 것보다,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단순히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고자 했다.
나는 내 길을 걷기 위해 나름의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왔다. 내가 선택한 불편함, 그걸 존중받고 싶다.
늘 고민과 불안에 있었고 잘해보려 애썼던거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망도 있었고, 같은 패턴의 실패도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복기하고, 조금씩 조정하며 나아가고 있다.
방향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나를 편하게 살았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나 같은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다, 당신은 당신에게 의미있는 불편함은 감수하면서 늘 최선을 다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잣대로 당신을 짓누르지 말아라, 곧 당신의 불편함이 그 잣대를 넘어설 것이니"
어버이날, 채찍질보다 존중과 이해가 필요한 날이라 생각이 든다.
서로를 이해하는 길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