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포기자를 위한 다시 시작하는 한국사
단군신화: 곰이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단군신화의 내용.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이야기입니다.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는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곰이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했다는 것은 곰을 섬기는 부족과 환웅을 섬기는 부족이 결합하였다는 말입니다. 곰숭배 부족 군장의 딸과 환웅숭배 부족 군장의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두 부족이 연합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단군왕검입니다. 단군왕검을 이해할 때 왕건, 이성계처럼 사람 이름으로 파악하기보다는 대통령, 국무총리처럼 역할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군'은 제사장이라는 의미고, '왕검'은 정치적 지배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명칭을 통해 당시의 사회가 제정일치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국통감의 기록을 따르면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경에 아사달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의 정식 명칭은 조선입니다.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은 단군이 세운 조선과 조금 있다 볼 위만조선을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 불렀고, 이후 14세기 후반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을 모두 포함시킨 의미로 고조선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죠. 단군조선의 성장: 단군조선은 요동지역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갑니다. 기원전 4세기 경에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당시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연나라와 대등할 만큼 국력을 키웠습니다.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로 중국 대륙을 5개~7개의 나라가 나누어 차지하고 서로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동북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가 바로 연나라입니다. 단군조선과 연나라는 요동지역을 두고 어깨를 겨루고 있었는데, 기원전 3세기 초에 연나라가 장수 진개 보내 단군조선을 공격하였습니다. 고조선은 이를 막지 못하면서 요동 지역을 빼앗기고, 한반도 서북지역과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다시 나라를 정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왕과 준왕 등의 비교적 강한 왕이 등장하였고, 왕 아래 상, 경, 대부 등의 관직을 두었습니다.
중국에서 진나라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였다가 혹독한 정치로 농민반란이 일어나 멸망하고 이어 새롭게 한나라가 들어섰습니다. 이를 진한교체기라고 하는데, 이때 단군조선은 준왕이 다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농민이 반란이 일어났으니 중국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이 혼란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던 단군조선으로 넘어왔습니다. 그중 위만이라는 사람이 자기 무리를 이끌고 단군조선으로 왔는데, 준왕의 신임을 얻어 서쪽 국경지역의 수비대장으로 임명됩니다. 위만은 계속해서 넘어오는 유민들을 수용해 정착시켰습니다. 위만의 세력이 점점 커졌고, 결국 위만은 준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앉았습니다. 이때부터를 위만조선이라 부릅니다. 위만은 중국으로부터 철기를 본격적으로 수용합니다. 철제 농기구를 통해 경제력을 키우고, 철제 무기를 통해 군사력을 증가시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주변국가를 흡수하면서 영역을 키워갔죠. 한반도 남부지역에도 크지 않지만 정치세력이 존재하고 있었고, 위만이 나라를 다스릴 때 중국은 이제 한나라가 세워졌을 때입니다. 위만조선은 이 한나라와 한반도 남부의 정치세력 간의 무역을 중계해 주면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위만의 손자 우거왕이 즉위한 후 중국 한나라 무제는 위만조선의 성장을 견제하면서 위만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라며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위만조선이 이를 무시하자 대군을 보내 위만조선을 공격하였습니다. 우거왕 등은 결사항전하였으나 온건파와 강경파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1년 만에 수도 왕검성이 함락되었고 위만 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나라는 위만조선의 영역에 낙랑, 임둔, 진번, 현도라는 이름으로 4개의 군(중국 지방 행정 기구)을 설치하였는데, 이를 한나라에서 만든 4개의 군이라 하여 한사군이라 합니다. 한나라는 이 4개의 군으로 위만조선의 백성들을 통치하였습니다.
고조선 사회의 모습이 어떠하였는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고조선의 8 조법입니다. 현재는 3개만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 남을 다치게 하면 배상, 절도한 자는 노비로 삼고 죄를 면하려면 50 만전을 내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사유 재산을 인정하였으며, 신분이 나누어져 있던 사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8개의 법은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난 후 한사군의 통치시기에 60여 개로 늘어납니다. 이는 고조선의 백성들이 한나라의 통치에 계속해서 저항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
고조선이 멸망하기 전 만주 쑹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 지역에서 부여가 성립되었습니다. 5개의 국가(부족)가 모여 동맹을 맺은 연맹왕국으로 시작하였죠. 이 연맹 왕국의 소속 나라들의 군장들은 한 곳에 모여 자신들의 대표자로서 왕을 뽑았습니다. 나머지 4개의 국가 군장들은 가(加)라고 하였으며, 4개의 국가들은 각각 말, 소, 돼지, 개를 목축하고 숭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군장의 이름은 기르는 동물에서 따 마가, 우가, 구가, 저가라고 합니다. 4개의 국가는 각기 독자적인 영역을 다스렸습니다. 이를 사출도라고 부릅니다. 평야지대에서 성립되었지만 기후가 논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밭농사 중심의 경제활동을 하면서 목축을 주로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왕은 전쟁이 나거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소를 잡아 그 발굽으로 길흉을 점쳤는데 이를 우제점법이라 합니다. 또 12월에는 영고라는 제천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대표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니, 왕권이 약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이 대표자(왕)에게 책임을 묻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왕이나 군장이 죽으면 그가 생전에 쓰던 장신구 등을 껴묻거리고 묻으면서 동시에 그를 모시던 사람들을 함께 묻는 순장이라는 풍속 있었습니다. 부여는 중앙 집권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면서 점차 쇠퇴하였고, 결국 고구려에 흡수되었습니다.
고구려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37년에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에 의해 졸본지역에서 성립한 나라입니다. 압록강 유역에는 이미 여러 정치 집단들이 있었는데, 주몽은 이들과 경쟁하며 동맹을 맺고 졸본 지역에서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고구려 역시 처음에는 5개의 국가(부족)가 연맹한 형태로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연맹왕국이었죠. 주몽이 왕이 되었고, 왕 아래 상가, 고추가 등이 있었습니다. 부여와 달리 이들은 가축의 이름을 따지 않고 세력의 규모에 따라 서열화한 것으로 입니다. 상가, 고추가 등을 통칭해 대가라고 하는데, 이 대가들은 각자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들을 거느렸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죠. 왕의 사자가 있고 상가의 사자가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이 가(加)들을 한 곳에 모여 회의를 열어 결정을 했는데, 이를 제가 회의라고 합니다. 한편 고구려에서도 매년 10월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습니다. 또 혼인풍속으로 서옥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서옥제란 남녀가 결혼을 하면 남자가 여자 집 뒤쪽에 서옥이라는 집을 짓고 살다가 자녀가 다 성장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 집으로 돌아가는 풍속입니다. 독특하죠. 이는 당시 여성의 노동력을 중요하게 여긴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공통사항: 우선 지형적으로 옥저와 동예는 바다와 가까워 해산물이 풍부하였습니다. 고구려가 성장하면서 옥저와 동예를 압박하였고, 결국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다가 복속되었습니다. 옥저와 동예의 군장은 읍군, 삼로라고 불렸습니다. 아미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군장을 부르는 명칭이 같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지형적 특성이 유사하여 공통적이 모습이 보이지만 두 나라만의 차이점도 분명했습니다. 옥저의 특징: 먼저 옥저부터 살펴보면, 결혼풍습으로 민며느리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고구려와 달리 민며느리제는 남녀가 결혼을 미리 약속한 후 여자가 신랑집에 가서 살다가 장성하면, 다시 여자집으로 갑니다. 그러면 남자 집에서 예물(혼수)을 주고 여자를 다시 데려왔습니다. 또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해두었다가 뼈만 남으면 이를 추려 가족 공동 무덤(커다란 목곽)에 안치하는 장례 풍습이 있었죠. 동예의 특징: 한편 동예에는 같은 씨족 내에서는 혼인을 하지 않는 족외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또 동예는 군장국가로 여러 부족이 공존하였으나 자기 부족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하였습니다. 자기 부족의 고유한 영역을 매우 중시하여, 만일 누군가 자기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노비, 소, 말 등으로 배상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을 책화라고 합니다. 또 철(凸) 자형 집을 지어 생활하였죠. 특히 동예에는 특산물이 있었는데, 단궁, 과하마, 반어피가 유명하였습니다. 단궁은 활이고, 과하마는 키가 작은 말로 조랑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반어피는 바다표범의 가죽입니다. 옥저와 달리 동예에서는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습니다.
공통사항: 삼한은 한반도 남부지역에 위치한 마한, 변한, 진한을 말합니다. 이 지역의 군장들은 신지, 견지, 부례, 읍차 등으로 불렸습니다. 고조선에서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난 후 내려와 이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발전을 촉진하였습니다. 삼한 지역은 특정한 하나의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넓게 분포되어 있는 국가들의 연맹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삼한은 위에서 살펴본 나라들과 달리 제사장과 군장의 역할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는 사회였습니다. 이를 제정분리 사회라고 합니다. 천군이라고 불린 제사장의 권한은 매우 막강했습니다. 천군이 다스리는 지역을 소도라고 하는데, 이 소도에 범죄자나 반역자 등이 들어오면 군장은 함부로 추격하지 못하고 천군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한편 삼한이 위치한 한반도 남부지역은 강이 많고 농사를 짓기에 좋은 기후와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지역에서는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저수지도 많이 만들어졌죠. 이 과정에서 씨를 뿌리고 난 뒤의 수릿날(5월), 추수할 때쯤의 계절제(10월) 등의 제천행사를 열었습니다. 마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한 54개의 국가들을 합쳐서 부른 말이었는데, 54개의 국가 중 목지국이 가장 강성했습니다. 그리고 한강 유역에 백제국이 존재하였죠.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백제국으로 고구려에서 온조의 무리가 내려옵니다. 변한: 경상도 남부 지역의 분포한 12개의 국가들을 합쳐서 부른 말입니다. 변한에서는 낙랑과 왜에 수출을 할 정도로 철이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맹왕국 단계로 나아갔으며 그중 가장 강성했던 나라가 금관가야였습니다. 진한: 경상도 동부와 북부 지역의 12개의 국가들이 속한 지역입니다. 12개의 국가 중 사로국이 가장 강성하였고, 이 사로국은 후일 신라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