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삼국의 시대 ①

역사포기자를 위한 다시 시작하는 한국사

by 부마니

1. 한국판 삼국지의 시대가 펼쳐치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

신라의 건국: 진한의 12개의 작은 나라들 중 사로국에 박혁거세가 이끄는 유이민 세력이 이주해와 주변 6개의 촌락과 결합하여 기원전 57년 나라를 세웠습니다. 고구려의 건국: 부여에서 이주해온 주몽 세력이 압록강 유역의 5개의 부족(군장)과 결합, 즉 연맹을 맺어 기원전 37년 졸본에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백제의 건국: 온조와 비류의 고구려 유민 세력이 마한의 54개의 작은 나라들 중 한강 하류 지역에 있던 백제국으로 이주해와 토착 세력과 결합하여 기원전 18년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가 먼저 성장하다

1세기 후반: 고구려 제6대왕 태조왕은 고구려가 연맹왕국에서 벗어나 고대국가로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고구려는 5개의 부족이 연맹한 국가로 시작했습니다. 태조왕이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옥저를 정복하고, 한 군현과 경쟁하며 요동지방으로 진출을 시도하였고 어느정도 성과가 나타나면서, 다른 4개의 군장들에게 견제되던 계루부의 소속의 태조왕의 왕권이 강화되면서, 계루부 고씨의 왕위 세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연맹왕국 단계에서 다른 4개의 부족(군장)들에게 왕권이 견제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죠.

2세기: 이를 기반으로 고국천왕은 부족적 전통과 결속력이 강한 5부를 단순한 정적 성격의 5부로 바꾸고, 각 부의 족장(군장)들을 중앙의 귀족으로 서열화 시켰습니다. 또 왕위 계승 방식을 부자 간의 왕위 계승으로 확립시켜 보다 더 왕권을 강화시켰죠.

삼국 중에 가장 먼저 신라가 세워졌지만 중앙 집권 국가로 발돋움 한 것은 고구려가 가장 빨랐습니다. 이 기간동안 백제와 신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연맹왕국 단계를 벗어나, 고구려처럼 중앙 집권을 위해 정치 세력 간의 물고 뜯는 격변 속에 있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백제, 신라, 가야가 성장하다

3세기 전반: 고구려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팽창에 나섭니다. 그러나 중국 위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어 국가적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분열을 이용하여 국력을 회복하고자 체제를 재정비하였습니다.

3세기 중반: 고구려가 국가 체제를 다시 정비하고 있을 때 백제고이왕 때 이르러 좌평이라는 이름의 가장 높은 관직을 시작으로 관직과 관리의 등급을 마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관직이 생기고 등급이 매겨진다는 것은 기존의 정치 세력을 왕 아래로 서열화 시키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고이왕 때 이르러 왕권이 강해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이왕은 왕권을 강화 시킨 후 마한 속한 다른 나라들을 복속해 갑니다. 백제의 영역이 점점 커져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변한 지역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지난 주제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곳에서 특히 A.D 42년 김수로가 건국한 금관가야가 해상 교통의 핵심이자 철강자원이 풍부한 지역의 이점을 활용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금관가야는 우수한 제철 기술로 변한의 다른 나라들을 통솔하며 가야 연맹을 형성하였습니다. 해상 교역에 집중하여 우수한 철을 낙랑과 왜에 수출하여 막대한 경제적 부를 쌓았습니다. 이때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였고, 단단한 철갑옷을 제작하였습니다.

3세기 후반: 신라 역시 낙동강 유역으로 진출하며 진한에 속한 다른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에서는 왕호가 조금씩 변하였습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만들었을 때 군장을 거서간(귀인)이라 한 이후 차차웅(제사장), 이사금(연장자)으로 호칭이 변하였습니다. 이사금 이후 박, 석, 김의 세 개의 성씨 집단이 번갈아 가며 이사금에 올랐는데, 이것은 신라의 성장이 세 성씨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2. 4세기의 한반도의 정세


백제는 전성기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제13대 왕근초고왕은 즉위하면서 적극적인 대외팽창을 시작합니다. 한반도 내 팽창: 남쪽으로 진출하여 아직 복속되지 않은 마한의 남은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였습니다. 변한 지역의 전기 가야 연맹과 우호 관계를 맺고 신라를 견제하였습니다. 동쪽으로도 진출하여 낙동강 일부와 강원도, 황해도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한편, 북쪽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중국으로 진출이 좌절되자 기수를 돌려 백제의 국경을 공격해 왔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공격을 막아낸 근초고왕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직접 공격하였습니다. 평양성 마주한 고국원왕과 근초고왕은 치열한 전투 끝에 고국원왕이 전사하면서 백제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로써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시키고 한반도의 강대국으로 우뚝서며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한반도 외 팽창: 백제는 중국으로도 진출하였습니다. 산둥반도와 중국 요서 지역에 백제의 거점을 마련하였죠. 특히 중국 요서 지역으로 진출은 요동으로 진출하려는 고구려를 견제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일본 규슈 지방에도 진출하면서 왜왕에게 칠지도라는 칼을 하사하였습니다. 왕권강화: 대외 팽창의 성공적인 성과가 이루어지면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왕위 부자 상속을 확립 하였습니다. 또 왕권의 정당성과 업적을 남기고자 고흥에게 <서기>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게 하였습니다. 제15대 왕침류왕 때는 강화된 왕권을 이어받았으며 중국의 동진과 우호 관계를 맺었습니다. 동진에서 온 승려 마라난타를 극진이 대우하면서 불교를 공인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다졌습니다.



고구려는 위기 극복

가장 먼저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태조왕 대 이후 요동으로 진출하면서 중국과 경쟁이 불가피하였습니다. 앞서 짧게 살펴보았듯이 고구려는 이 과정에서 조조의 위나라와 경쟁하였고, 특히 3세기 전반 동천왕 때 위의 장수 관구검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를 잘 극복한 고구려는 제15대 왕 미천왕이 즉위하면서 다시금 팽창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때까지 남아있던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을 313년에 정복하면서 대동강 유역의 발전된 문물과 경제력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미천왕의 낙랑군 정복으로 완충지대가 사라지면서 백제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닿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구려의 목적은 중국 요동 지역으로 진출이었으므로 초반 백제와 큰 분쟁은 없었습니다. 이후 고구려 제16대 왕고국원왕이 즉위하면서 중국 요동 지역으로 진출을 다시 시도합니다. 그러나 당시 성장하고 있던 전연의 공격을 받아 수도를 또 빼앗기고, 미천왕의 시신이 도굴당하고 왕의 어머니와 왕족, 귀족들이 인질로 잡혀가는 수모를 겪습니다. 외교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다시 수도를 찾은 고국원왕은 기수를 돌려 남쪽으로 진출을 시도합니다. 두 차례 백제를 공격했음에도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제 근초고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와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고국원왕이 나가 막았으나,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죠.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대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전란 중에 제17대 왕으로 소수림왕이 즉위합니다. 소수림왕은 모든 대외 팽창 정책을 중단하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여러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먼저 전연을 물리친 전진과 우호관계를 맺어 국경을 안정시켰고, 전진에서 보내온 승려 순도를 극진히 대접하며 불교를 수용하고 공인하였습니다. 불교를 수용한 것은 사회저 혼란과 불안감을 불심으로 극복하고 사상적으로 통일하고자였습니다. 다음으로 태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며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더불어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의 조직을 개편하고 법적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소수림왕의 정책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어 정치와 사회가 빠르게 안정되었습니다.



신라는 발전 토대 마련

신라는 제17대 내물마립간이 즉위하면서 본격적인 중앙 집권 국가로 나아가게 됩니다. 내물마립간의 성은 김씨입니다. 이전까지 박, 석, 김이 교대로 이사금에 올랐는데, 내물마립간은 즉위 후 이사금의 칭호 대신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김씨가 독점적으로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습니다. 신라 역시 나름의 대외 팽창 정책을 펼치며 진한의 남은 작은 나라를 차례로 복속해갔습니다. 이로써 점차 영역이 확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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