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아메리카노만큼 쓸까
한국에서는 커피를 정말 매일 빠지지도 않고
마셨던 것 같은데,
어찌 요즘은 카페인을 찾지 않는 내 몸이 신기하기도 하다.
제일 큰 이유는 한국에서는 동네 어느 곳을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켜도 참 맛있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커피 머신도 가져오고,
에스프레소 분말도 가져왔지만
왜인지 한국에서 먹는 커피맛이 나지를 않는다.
물의 차이 일까?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나는 매일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러한 습관은 대학생 1학년 새내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디자인과를 전공하던 그때 전공 교수님의 1학기 과제물은
A4용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디테일하게 써도 되고 특징적인 것만 써도 되고
정답은 없었다.
다만 한 학기 내내 그 과제를 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동기와 함께 창밖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재빨리 써 내려가며
과제를 하게 되며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카페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사 내,
서울 광화문 한복판 등등 가는 곳곳마다
노트에 옮겨 적으며 다녔던 것 같다.
내 동기는 나랑 이름 받침하나 차이나며,
나는 그녀와 대학생활을 했다고 했을 정도로
붙어 있는 시간이 엄청 많았다.
우리 둘의 생일도 15일 차이였고,
둘 다 재수에 실패해서 성적에 맞는
학과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나이도 비슷하여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88년생 나는 빠른 89년생)
오리엔테이션 첫날 보고 바로 친해지게 되었다.
그때 제일 친했던 내 친구이자 동기는 같이 카페에
갈 때면 20살 나이부터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다.
쓰디쓴걸 어떻게 잘 마시냐는 내 물음에 내 친구는 말했다.
"어찌 이것이 내 인생보다 더 쓰겠냐."
20살 나이에 인생을 운운한다는 것이 웃겼지만,
그만큼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커피 한잔을 놓고
인생이야기를 즐겨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과연 디자인이 우리 적성에 맞는 건지,
우리가 디자인을 전문직으로 계속할 수 있을는지,
새내기 대학생이었지만,
재수해서 들어간 우리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항상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인생살이라며
우린 흥미로워하기도 했다.
삶은 언제나 뜻밖의 변화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이를 받아들이고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며 서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운운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때의 우리는 커피 한 잔에 인생을 논하며 나름 인생계획을 세우기도 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렇게 인생을 같이 논했던 내 친구는 지금은 연락되지 않아 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문득 항상 생각나는 그 친구이기에
먼저 다가가 연락을 해볼까 싶다가도,
아무 말 없이 연락이 끊긴 것도 이유가 있겠지 라며
주저하게 된다.
어디서든 잘 살고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 친구와의 추억을 커피 한 잔에 담아 놓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디자인 관련일을 안 하지만,
그때의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나는 한국에서 종종 아이들 등원시키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계절마다 변화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었다.
꽃 피는 봄에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붉으스레 한 꽃봉오리처럼 핑크빛으로 피어오르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더워도 활기찬 학생들의 모습에 나 또한 활력을 얻고
모든 게 알록달록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에는 저마다의 색깔을 얼굴에 담아 다니며
하얗게 모든 게 물들어가는 겨울에는 추운 날씨만큼 움츠러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녀와의 추억이 또다시 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니 그리움이 진해지기만 한 것 같다.
마치 짙은 커피 향처럼 말이다.
파키스탄에 와서는 밖에서 즐기는 커피 한잔보다는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커피 한잔에 익숙해져 가고
그러다 보니 오늘도 나름 집에서 커피 한잔 만들어 놓고,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기 위해
이리저리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며
식어가는 커피잔을 보고 있자니
왜 다 식혀놓고 마시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카페에 노트북 들고나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기는 했다.
좋아는 했지만 꾸준히는 하지 않았다.
커피가 식어가는 시간 동안
내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시간이 늘어가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아이들이 집에 올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지만
정작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버리는 것이다.
식어버린 커피의 씁쓸한 쓴맛보다는
오히려 상쾌하고 시원한 맛이었다.
그 순간의 쾌락은 마치 얼음을 먹고 있는 듯한
시원함과 함께 느껴졌다.
한 모금씩 내려갈 때마다 몸 안으로 스며들어
포근한 온기를 주는 듯했다.
이런 느낌이 정작 따뜻한 커피보다 더 좋았다.
열정과 열의를 지니고 있는 친구와의 추억과
그녀와 함께 지내왔던 일들.
대학생활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그 친구와 함께 했기에
아메리카노의 달콤 씁쓸한 맛을 알려준 그 친구였기에
커피를 마실 때면 더욱 그녀의 생각이 나는 것 같다.
그녀와 함께한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그때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라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곤 한다.
그녀와 함께한 대학 생활은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 되었고,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들로 남을 것이다.
함께한 친구의 존재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녀와의 소중한 추억은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마치 커피 한 잔처럼,
그녀의 존재는 나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주는 존재이다.
함께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늘 그녀를 생각하고 사랑한다.
함께한 그녀와의 대학 생활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고,
영원토록 간직할 소중한 보물이다.
이렇듯 오늘도 전하지 못할 말들을 글로 남기며
커피 한잔과 함께 그녀를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