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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25. 2023

엽기 잔혹 그림책 <밥 안 먹는 색시>를 읽고

<줄거리>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한다. 남자는 밥을 잘 먹는 색시가 걱정돼 그녀를 시험한다.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기로 했으니 밥을 많이 가져오라고 시킨다. 밥을 가져온 색시에게 사람들이 안 왔으니 우리 둘이 먹자고 한다. 아내는 그 밥을 전부 먹고, 집에서 콩까지 볶아 먹는다. 이를 본 남편은 화가 나 색시 배를 찔러 죽인다. 남자는 다시 색시를 얻고, 그녀는 밥을 세 알만 먹고도 배불러 하는 색시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밥을 두 알만 먹을 것을 요구하고, 나중에는 한 알만 먹기를 요구한다. 적게 먹는 색시를 두고도 곳간의 쌀이 늘어나지 않자 남자는 몰래 색시를 엿본다. 색시는 곳간을 열고 밥을 해 주먹밥을 만든다. 그리고 머리를 툭툭 쳐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다.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커다란 입이 나타나 주먹밥을 모두 먹어버린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도망을 간다.     


<밥 잘 먹는 색시는>

  결혼을 하고 나서 그녀는 색시라는 귀여운 지칭어를 갖게 된다. 그녀는 입이 함지박만 한 여자로 표현된다. 그녀는 큰 입을 쩍 벌려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 이 모습을 본 남자는 날마다 걱정한다. 내 쌀 다 없어지겠다고. 

  그녀는 그저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었을 뿐이지만, 그것은 남자에게 뼈아픈 재산상 손실이다. 남자가 색시를 시험하기 위해 밥을 많이 가져오라고 했을 때, 여자는 큰 솥에 밥을 해 머리 위로 받치고 날아가듯 남편에게 간다. 그녀는 밥을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는 사람이면서, 큰 솥에 밥을 뚝딱 만들고, 그것을 이고 가져갈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그걸 빨리 나를 수 있는 기민함까지 갖춘 사람이다. 말하자면 능력 있는 노동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살해된 결정적 이유인 콩을 볶아 먹는 장면을 보면, 그녀는 처음으로 웃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콩을 혼자 먹지 않고 아홉 마리의 새들과 같이 먹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누군가와 나눠 먹는데에도 인색하지 않은 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자기 와이프가 먹는 한 그릇도 아까운 남편에게 새들과 콩을 나누어 먹는 아내란.

  그녀는 늘 배고팠다. 그녀는 매일 강한 노동을 했으며, 아마도 타고나길 좋은 힘과 먹성을 가진 사람이리라. 그녀는 잘 먹어서 살해당했다. 서럽다.

  애초에 집의 곳간에 있는 재산이 오직 남편의 것일까. 강한 노동력을 가진 색시의 몫은 없었을까. 남편에게 색시는 그저 자기 재산 중의 한 목록일 뿐이었을까. 결혼 이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결혼 후 그녀가 가질 수 있었던 수식어는 오로지 ‘밥 잘 먹는’일 뿐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손가락으로 찌르고, 색시는 배가 터져 죽었다. 

  밥 잘 먹는 색시가 한 명의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면 남편은 살인죄가 되지만,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 남편의 재산 목록 중 하나라면 남편은 그저 자신의 쓸모없는 재산을 폐기한 것이 될 뿐이다. 역시나 아무런 비난과 법적 조치도 받지 않고 남편은 다시 결혼을 한다.      


<밥 안 먹는 색시는>

  욕심 많은 남자가 재혼한 여자는 개미구멍만 한 입을 가진 여자다. 그녀는 가지고 있는 입처럼 밥알 세 알만 먹고도 배부르네, 배불러 하는 사람이다. 

  그림에서 표현된 그녀는 밥 잘 먹는 색시처럼 덩치가 좋고 손이 크다. 덩치는 남편보다 클 정도다. 밥 잘 먹는 색시나 밥 안 먹는 색시나 색시라 얼굴은 뽀얗고, 연지곤지를 찍었지만 손은 누렇고 아주 크다. 아마도 밥 안 먹는 색시 역시 엄청난 노동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밥 잘 먹는 색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입이 작다는 것 뿐이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녀는 우렁우렁한 두 손으로 하루종일 일하면서 밥 세 알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야 남편에게 살해당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것일까. 

  남편은 밥 세 알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밥 두 알, 밥 한 알을 먹을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에 그녀는 남편이 몰래 지켜보는 가운데 쌀가마니를 번쩍 들고 가마솥에 밥을 해먹는다. 역시 강한 힘을 가진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주먹밥을 만들면서 말한다. “참 맛있겠다.”

  그녀의 머리 위로 아주 커다란 입이 나타나고 주먹밥을 풍덩풍덩 먹어댄다. 입은 엄청나게 크고 치아로 가득하다. 어디서 많이 본 입 같은데, 밥 잘 먹는 색시의 입과 닮았다. 

  그녀는 역시 배가 너무너무 고팠던 것이다. 한 시대의 어떤 여성들은 늘 너무나 배가 고팠던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녀들은 많이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받고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한 시대에 국한된 일일 뿐일까.

  그녀들의 식욕은 제한 받는다. 그녀들이 먹는 밥은 재산상의 손실이며, 많이 먹는 여성은 죽임 당해도 마땅하다는 인식. 그리고 더 나아가 많이 먹는 여성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인식. 

  하루 종일 엄청나게 일해야 한다. 음식은 맛있을뿐더러 예쁘게 만들어야 하고, 자식들은 야무지게 키워야 하고, 가족들에게 싹싹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본인도 아름다워야 한다. 딱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도, 제 몫의 식사를 하는 것도 너무 큰 권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눈치를 봐야 한다.

  밥 잘 먹어 살해 당한 색시와 밥 안 먹는 색시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한’이라는, 이것저것 고된 삶이 엮여서 만들어낸 그것이 서려서, 밥 잘 먹는 색시는 밥 안 먹는 색시로 환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환생해서 한 일이라고는 역시나 그저 밥을 많이 먹는 것 뿐. 그것도 남편 몰래 커다란 입을 머리에 숨기고.     

<남자는>

  그는 졸렬하다. 밥 잘 먹는 색시와의 초혼에서 밥 잘 먹는 색시가 얼마나 많이 먹나 시험하는 것은 그의 졸렬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아내를 시험하고, 시험에 들게 한다. 

  그의 멋진 대사란 이런 것이다.

  “돼지처럼 먹어 치우네.”

  “아이고! 저 여자 때문에 내 쌀 다 없어진다. 없어져.”

  “먹을 게 없으면 나까지 잡아먹겠네!”

  밥 안 먹는 색시가 남편의 말처럼 그랬어야 했는데! 밥 대신 남편을 잡아 먹었어야 했는데!

  여기서 그는 또 다른 죄, 살인죄를 저지르고 재혼한다.

  또다른 그의 죄는 밥 안 먹는 색시를 밥 세 알, 두 알, 한 알을 먹게 한 것이다. 아내에 대한 학대이다. 밥 안 먹는 색시는 자신의 생명이 밥을 먹는 양에 따른 것임을 직감했을 테고, 남편은 이를 이용해 먹을 것을 제한하였으니 명백한 학대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곳간의 쌀이 늘어나냐 줄어드냐일 뿐이다. 가족은 그에게 그 쌀한 줌도 안 되는 목숨값이다. 일단 그는 아내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런 그가 받는 죗값은 놀라 달아나는 것 뿐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목숨처럼 여기던 곳간을 버리고 도망가게 된다. 그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뼈아픈 고통이겠지만, 그는 학대, 살인을 일삼는 사람 아니었던가. 그는 경미한 처벌만 받고 끝난다.

  마지막 그림에서 색시는 웃고 있다. 입을 가리고 웃고 있어 밥 잘 먹는 색시인지 밥 안 먹는 색시인지 모르겠다. 한 송이 꽃을 들고 웃고 있는 그녀. 그녀는 죽지 않았다. 하얀 밥을 푸지게 먹으며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살고 있을 그녀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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