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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공부하기-새해결심도구

달력에 대하여

by 인유당

달력욕심이 있다.


언젠가 달력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을 만났다. 그전까지 달력이란 당연히 여기저기서 받은 것들을 쓰는 거였다. 달력을 사서 보내며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 언젠가부터 달력을 삽니다. 내가 좋아하는 달력을 고르며 새해를 기다리게 된다고.....'. 그 해의 그 달력 선물은 참 고마웠다. 그리고 나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 것 하나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려고 하게 되었다. 나를 위해서.


달력이 생기면, 용도에 따라 고른다. 벽에 걸 것, 눈에 띄는 곳에 걸 것은 숫자가 큰 것, 책상에 두고 볼 것 등등. 그림, 사진이 이쁜 것에서 어느새, 숫자가 큰 것, 메모를 기록하기 좋은 정말 '실용적'인 목적에 부합한 것들. 뭐 여전히 실용적 목적이 최적화된 탁상용 달력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지만, 돈 주고 달력을 산다.


일력이 유행할 때는 김진아의 일력을 샀었다. 문구, 그림, 적절한 시(때)에 맞는 일력은 너무 좋다. 눈이 즐겁고 문구를 읽으며 마음이 맑아진다. 하루하루 뜯는 재미도 있고, 뒷면에 짧은 메모를 곁들이는 편지지로도 사용한다.

그리고는 올해는 커다란 패브릭 달력을 샀다. 장장 2만 6천 원이나 되었다. 사겠다고 인스타메시지를 보내고 돈을 송금하고는 그제야 정신이 났다. 아니, 내가 달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 돈도 없는데 일주일치 학식에 해당하는 돈을 쓰다니. 지금 먹고살기도 빡빡하여 10원이 아쉬운 판국에 기분에 휩쓸려 생필품도 아닌 달력이라니..... 하며 발등을 찍었으나 이미 늦었다. 그냥 이렇게 참으로 한심한(처지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리는 철없는 인간에 대한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비싼 대가다.


오늘 받은 구독자 편지(계절공방 15호) 문구에, 이런 말이 있어서 나도 정말 공감했다.

" 달력은 새로 장만했지만 제 몸과 마음은 새해를 맞이할 준비가 안 되었는지 연말연시에 온몸이 아팠어요. “왜 이렇게 몸이 찌뿌둥할까요?”라는 제 질문에 한 동료가 잠시 고민하더니 “아무래도 다시 출발선에 섰기 때문이 아닐까요? 목표 지점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니 몸도 마음도 고단한가 봐요”라는 답을 주었어요."


달력을 조금 과도하게 좋아하고, 달력을 일찌감치 장만하는 건(10월부터 달력판매사이트를 들락날락, 어느 작가가 작업을 하는지 인스타 등을 기웃기웃) 아마 새로 무언가 하고 싶은, 새로 태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이생망은 아니지만, 난 과거의 여러 일들을 많이 후회한다. 한 일들을 후회하고 하지 않은 일들을 후회하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지 못하는 '후회뿐'인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사람이 꿈꾸는 것은 컴퓨터 게임에서의 리셋 같은 것. 그것의 현실판이 시간에 선을 그어, 새해라는 것의 발명. 달력을 만든 것은 아마 나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멋진 달력을 장만했다고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림 예쁜 다이어리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담기는 내용도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달력과 다이어리에 진심이다. 올해는 어떤 내용으로 이것들을 채우게 될까. 과정이 아름다웠으면.... 내가 나를 견딜 수 있었으면......결과도 있었으면.




거의 해마다 난다출판사의 다이어리를 마련한다. 음... 이런 느낌.... 올해는 송은영 작가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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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고양이. 노석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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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초록. 노석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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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을 알고 가는 자의 뒷모습. 노석미. 영화 버닝을 보고 나서 그린 그림이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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