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아서? 유부녀여서? 이기적이지 못해서?
공부라는 것이 이상한 겁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면, 공부한답시고 모든 일에서 제외되거나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의 공부는 그러기 어렵습니다. 부모님도 찾아봬야 하고, 애들도 챙겨야 하고, 배우자를 내버려 둬서도 안됩니다. 이번 겨울만 해도, 시아버님의 급격한 병세악화(기본적으로는 노화입니다)로 꼼짝 못 하게 되셔서, 방학하자마자 찾아뵙고 식사를 챙겨드렸죠. 시댁만 갈 수 없어서 친정 갔죠. 작은 아들이 학교 근처에서 지내야겠다 해서 남편이랑 방 보러 다녔죠. 친정 엄마가 집 줄여 이사 가고 싶다고 하셔서 가서 짐정리 도와드려야 하죠. 사촌오빠 딸 결혼식에도 가야 하죠. 명절도 지내야 하죠.......
최소한의 도리와 책임만 하고 살겠다고 제주도 씩이나 되는 곳으로 유학을 갔는데, 정말로 유학은 외국으로 갔어야 했나 봅니다. 오가느라 경제적 육체적 시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연휴라고 읽을 논문 다운로드하여놓고 읽을 책도 쌓아보았지만
차라리 마음 비우고 집에나 충실하자고 다짐했다면
이토록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요.
김영민의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대개의 불콰한 명절 풍경, 언제 졸업하니, 어디에 취직 하니, 사귀는 사람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애는 언제 낳을 거냐 같은 질문은 안 받는 게 그래도 엄청 다행인 겁니다.
꼭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고 적당한 타협점들을 찾아가면 됩니다.
꼭 이렇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박사학위가 늦어지는 게 나을까,
못된 년, 저만 공부하나, 아이고 세상 공부는 저 혼자 다하지, 하루 이틀쯤 쉬면 세상 무너지냐란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공부에 전념해서 어서 학위 받는 게 나을까.
못된 년이 될 만큼 모질지 못하고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고 사람의 책임이란 걸 해야 할 거 같고.... 이걸 어느 정도 마음 정하지 못한다면 난 매번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