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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May 02. 2024

엄마 간병기 13

05:30

더 일찍 알람을 맞춰 놨지만 어떻게 알람을 종료했는지 모른 채 더 잠을 자다가 깬다.

소변주머니에 모인 소변을 소변통으로 옮겨서 버리고 그 양을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깨지 않은, 엄마조차 깨지 않은 적막한 병실 안에서 소변통으로 옮겨지는 소변 소리는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사람들도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 것이다. 엄마가 소변줄로 소변을 본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부끄럽다.

소변통을 비우기 전 나는 병원 건물 앞 흡연장으로 나가 담배를 하나 피고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한 다음 엄마의 소변주머니에 담긴 소변을 소변통으로 옮긴다. 마치 소리가 나면 안 되는 것처럼 최대한 소리가 안 나는 각도로.


엄마는 아침 식사가 나오기 직전까지 곤히 잘 잔다.

만약 소변줄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새벽에도 몇 번씩 나를 깨워 화장실에 가자고 했을 것이다. 그럼 잠에서 덜 깬 상태인 나는 한껏 짜증이 났을 거고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짜증이 났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 엄마에게 짜증을 표현했을 것이다. 거칠게 일으켜 세우거나 나지막이 욕을 했거나.

오히려 이렇게 소변주머니에 담긴 소변을 비우는 게 편하다. 엄마나 나나. 그렇지만 조만간 소변줄을 빼야 한다. 결국 엄마에게 좋은 것은 아니니.


격리가 해제된 뒤 주치의에게 소변줄 제거를 요청했었다. 그런데 주치의는 엄마가 소변줄을 하고 있던 기간도 길고 균도 나온 적이 있으니 인근 대학병원 비뇨기과에서 진료를 받아 제거하라는 입장이다. 결국 소변줄을 제거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깨어 있을 때 소변줄을 했음에도 가끔 소변이 마렵다며 화장실에 가자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 소변줄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설명한다고 해도 현재 엄마의 인지 상태로는 이해가능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엄마는 그냥 낯선 줄과 가방이 자신의 몸에 걸쳐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나중에 소변줄을 제거하면 어차피 엄마를 변기에 앉혀야 될 테니 가능하면 변기에 앉혀 엄마가 원하는 데로 소변을 보는 것처럼 시늉을 한다.


10:00

격리가 해제되고 엄마는 낮동안 8개의 재활 치료 일정을 받았다. 그런데 모든 재활 치료에서 협조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신체 기능은 이번 뇌출혈로 손상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손, 발, 다리, 걷는 것. 다만 2개월 가까이, 내가 간병을 시작하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묶여만 있던 엄마의 몸동작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운동 치료사가 엄마에게 말을 걸고 마사지를 하거나 걷는 것을 시도하려고 하면 엄마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엄마의 화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곤욕이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화내는 소리를 들은 간병인들, 환자들, 이송 기사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곤욕이다. 다른 환자들과 다르게 화를 내고 있는 엄마.

엄마가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엄마가 2003년에 처음 쓰러지고 난 뒤 이번에 쓰러질 때까지 대략 18년 동안 엄마가 화를 낸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나의 대학진학 실패, 무기력함과 무능함을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며 주기적으로 한 시간 넘게 짜증과 화를 냈어도 엄마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무려 18년이나 반복된 짜증 나는 말, 비열한 그런 말들. 그렇게 반응이 없던 엄마를 보며 더 짜증과 화를 냈던 나.

화를 내는 엄마가 참 낯설다.


엄마의 재활치료는 그런 식이다. 치료사는 뭔가를 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화를 내며 거부한다. 그리고 치료사가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보호자 대기실에 있는 나를 불러 엄마를 데려가도록 한다. 치료 중인 환자들 틈에서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병실로 돌아온다.

엄마에게 다른 사람들한테 화내지 말라고 말하면 알았다고 대답하지만 그때뿐이다.

그나마 다행히, 아주 다행히 나에게는 화내지 않고 내 말은 잘 따른다.

이번에 엄마가 아프기 전 매일같이 화를 내던 나에게는 화를 내지 않고 어쨌든 친절을 베풀려는 치료사들에게 화를 내는 엄마. 엄마에게는 치료사들의 낯섦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일까. 


오후 치료도 그런 식이다.

아직 연하식을 먹는 엄마는 연하치료도 받는 데 치료사가 도저히 치료를 할 수 없어한다. 다만 나는 엄마가 보통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인지가 떨어져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하치료를 도저히 할 수 없어하던 치료사가 작업 치료를 권했을 때 나는 그렇게 하도록 했다.


엄마가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담배 피우러 가고 싶다.

하지만 언제 갑자기 치료사가 나를 찾을지 모르니 보호자 대기실을 뜨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엄마의 마스크 걸이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도록 치료사에게 일러두었다.

그렇게 한결 마음 편하게 담배를 피우고 오지만 조급한 마음에 자리를 비우는 건 5분도 남짓밖에 안 된다.


18:00

저녁 식사 후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휴게실 텔레비전 앞에 데려다 놓고 6시 내 고향을 보여준다. 평소 엄마가 자주 보던 프로그램인데 엄마는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좋아했다. 첫 번째 쓰러지고 난 뒤 절뚝이며 걷게 된 엄마는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지 못했고 하루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냈다. 어쩌면 텔레비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엄마는 침대에 눕길 원했지만 너무 빨리 눕히고 싶지 않아 억지로 30분 넘게 텔레비전 앞에 앉혀 둔 다음 침대에 눕힌다.

엄마는 저녁 7시가 좀 넘으면 잠에 든다.

나는 엄마가 너무 일찍 잠드는 게 못마땅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엄마가 잠들어야 내 자유시간이 되니 빨리 잠들기를 바라기도 한다. 엄마가 소변줄을 하고 있는 것이나 일찍 잠드는 것이 결코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야 내가 편하다. 


엄마가 잠들고 나면 나는 가끔 차를 끌고 집에 가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온다.

다 가지고 왔다고 생각해도 병원에서 생활하다 보면 계속해서 필요한 물건들이 생긴다. 여기 살림을 늘리고 싶지 않은데 계속해서 살림이 늘어나고 있다.

집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엘리베이터를 누르던 습관으로 버튼을 누르다가 다른 층수를 누른다. 

그리고 현관문 비밀번호가 낯설다.

거실에 걸려 있는 달력은 지나가 버린 달이다. 그 지나간 시간들이 낯설다.

이런 하루가 얼마나 반복되면 엄마가 나을까.

나는 얼마나 더 이런 하루를 반복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 키보다 짧아 다리가 비어져 나오는 보호자 침대에 새우처럼 누워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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