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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May 09. 2024

엄마 간병기 14

2021년 10월

2021년 10월 어느 일요일


새벽 4시쯤 엄마가 화장실을 가자며 나를 불러 깨운다. 그런데 나는 일어나기가 싫어 잠깐 못 들은 척해본다. 몇 주 전 소변줄 제거를 망설이던 비뇨기과 교수에게 제거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엄마는 이번에 쓰러지기 전에도 화장실을 자주 갔으니 비록 지금 인지 기능이 떨어졌어도 그 습관은 남아 있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다행히 소변줄을 제거한 엄마는 스스로 소변을 볼 수 있었고 다시 소변줄을 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제 자는 도중에는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이 새벽, 엄마의 기저귀는 분명히 흥건히 젖어 있을 것이다. 불룩한 환자복 바지를 봤을 때 분명 그렇다. 다행히 환자복이 젖을 정도로 양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다행히 시트가 젖지 않았고 이불이 젖지 않았다. 오늘은, 오늘 새벽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변기에서 대변을 본 엄마가 휴지로 뒤처리를 하다 환자복과 새로 갈아입은 기저귀에 그 흔적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 마주할 때면 비명을 지르고 싶다. 그래, 나는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면 이 새벽에 모두가 들을 것이고 엄마가 무언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 그게 아마도 똥오줌 문제일 거라는 사실, 나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그렇게 효자는 아니라는 사실 그런 것들이 드러나겠지.


나지막이 욕을 하고 변기에 엄마를 앉혀둔 상태로 나는 화장실을 나와 캐비닛에서 기저귀와 여벌 환자복을 챙겨 다시 화장실로 향한다.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제 그 미안하다는 말이 정말 미안한 마음이 생겨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이런 상황, 내가 화를 내는 상황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돼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거칠게 엄마의 기저귀와 환자복을 갈아입힌다. 그리고 엄마의 똥이 묻은 변기와 주변을 샤워기로 청소한다.

이 모든 과정 중에 나는 화가 나 있다. 분명히 화가 나는데 이유를 정확히 대지 못하겠다. 평소 못 보던, 안 봐도 됐던 엄마의 똥오줌을 직접 본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들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침대 시트에, 환자복에, 변기 언저리에 존재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정리해야 되는 게 내 몫이기 때문일까. 사실 그건 재빨리 정리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왜 화가 날까. 엄마가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이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도 침대 시트와 환자복, 변기에 남겨진 엄마의 똥오줌을 무수히 치워야 할 것이라는 그 사실, 마치 이미 정해져 버린 미래를 알고 그 반복에 미리 진저리가 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새벽이 아침으로 바뀌었다.


오늘은 원래 엄마의 고향에 사시는 큰 이모가 엄마를 보러 오시기로 했었다. 큰 이모도 몸이 불편해 혼자 오지 못 하시니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오시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기온이 큰 폭으로 뚝 떨어졌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는 오늘이 무척 추울 거라며 이렇게 추운 가을 날씨는 60여 년만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큰 이모와의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사실 공식적인 면회는 금지였다. 병원에는 코로나에 취약한 환자가 많으니 전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보호자가 환자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그래서 바람을 쐰다는 핑계로 병원 주변 공원을 산책하는 척하며 면회 아닌 면회를 할 수 있었고 큰 이모도 그런 식으로 만나려고 했던 것이다. 큰 이모와의 만남은 무산됐지만 여동생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엄마의 외출 준비를 한다. 모자, 장갑, 점퍼, 무릎 담요. 엄마를 꽁꽁 무장시키고 병원 근처 공원에서 여동생 가족들을 잠시 만나고 헤어졌다.  


2개월 전 1인실에 격리되어 있었던 엄마는 내가 간병을 시작하고 3주 후에 격리가 해제되었고 4인실로 옮긴 뒤 꽤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뇌손상이 있었다. 엄마는 일명 지남력이라고 말해지는 부분인 사람, 시간, 장소에 대한 인지능력이 매우 떨어졌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는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엄마는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슬퍼했다. 엄마의 기억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또한 나로서는 매우 신기한 사실인데 이번에 쓰러지기 전 항상 엄마 마음속에 있던 아버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 그 사실은 엄마 기억에 없어도 된다. 굳이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엄마에게 오늘은 어떤 날일까. 오늘 새벽 엄마는 유난히도 일찍 일어나 대변을 봤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똥오줌과 마찬가지로 엄마 뱃속에서 나온 나도 근본적으로 같은 존재가 아닐까. 엄마 뱃속에서 나온 저 똥오줌은 변기를 거쳐 어딘가로 자기 길을 따라 흘러갈 테고 그렇게 한동안 존재하다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분해되어 살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근본적으로 나의 존재와 똑같은 과정이지 않을까. 


가을이지만 유난히도 추운 오늘, 일기 예보에서 60여 년 만에 가장 추운 가을이라는 오늘, 내 생일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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