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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Apr 25. 2024

엄마 간병기 12

부스스한 머리, 수척한 얼굴, 펑퍼짐한 환자복, 묶여 있는 양손과 양다리, 양쪽 정강이 중간쯤에 난 어딘가 부딪힌 상처, 그리고 구겨질 데로 구겨져 여러 갈래로 주름이 잡힌 시트


CRE균으로 1인실에 격리된 지 5일 된 엄마, 오랜만에 직접 보게 된 엄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환자 침대와 조금 떨어져 있는 보호자 침대에 앉아 있는 외국인 간병인과 그 옆에 놓여 있는 커다란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와 교대하기 위해 짐을 챙겨 놓은 그 캐리어를 보며 문득 저 사람은 엄마의 회복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간병인에게 그간의 간병비를 지급하려고 할 때 격리된 환자는 돈을 더 받아야 된다고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걸 들으며 나는 50만 원과 식대 1만 5천 원을 계좌 이체 했다고 대답하고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과 5일을 한 방에서 함께 있던 엄마. 아니 그전에도 낯선 사람들과 한 달 정도를 함께 있던 엄마. 어땠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나는 엄마를 묶고 있던 것들을 모두 풀어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분명 엄마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양손과 양다리를 묶어 놓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 여러 간병인들을 거치며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관례처럼 되어버렸을 것이다. 묶여 있는 엄마를 언제 누가 풀어 줄 것인가? 그 결정은 누가 내릴 것인가? 지금 나 밖에는 없다. 이렇게 어느 순간 누군가 어떤 이유로 인해 시작한 무언가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관성에 의해 반복될 뿐이다. 


나는 분명히 이번에 엄마가 쓰러졌을 때 간병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격리된 엄마가 재활 치료도 없이 하루종일 침대에 묶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를 안정시키고 격리가 해제되면 개인 간병인을 부를 생각으로 병원에 들어왔다.


병원 생활의 불편함 중 가장 큰 불편함은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생활이다. 시선들, 거슬리는 거친 커튼 소리,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 소리, 편하게 쓸 수 없는 화장실, 애매한 공간의 경계. 그런 것들이 1인실에서는 없으니 엄마 덕분에 당분간, 정확히 언제까지일지 모를 그 기간 동안 어쨌든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엄마는 나를 가까운 사람이라고 대체로 인지하는 느낌이었고 가끔 아들로 인지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나를 보고도 그다지 반가워하는 내색이 없었다. 낯선 엄마를 보며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의문이 들었다.


격리된 엄마의 하루는 단순했고 마찬가지로 내 하루도 단조로웠다. 하루 세 번 소변주머니를 비우고 양을 체크했다. 연하 곤란 상태의 엄마는 1회용 플라스틱에 담긴 완전히 갈린 반찬과 풀죽을 먹었다. 엄마는 그 음식을 먹기 싫어했고 따로 담긴 노란색 수프는 먹을 만한 것 같았다. 나는 꾀를 내어 풀죽과 반찬을 수프에 섞어서 최대한 엄마에게 떠먹이려고 했다.

내가 봐도 맛없어 보이는 음식을 엄마는 거의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식사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화도내고 달래도 보면서 엄마에게 꾸역꾸역 그 밥을 떠먹였다. 나도 평소에 자주 끼니를 거르는데 여기서는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꼭 식사의 반 이상을 먹게 하려고 애를 썼고 강하게 거부할 때는 화가 났다. 


평일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 주치의가 방문해 엄마의 상태를 살핀다. 반복되는 말들. 어떤 환자는 CRE로 두 달 넘게 격리됐었다는 말. 와닿지가 않는다. 균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시간이 해결해 준다면 과연 주치의가 하는 일은 뭘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엄마는 밤에 잠을 아주 잘 잤고 그래서 나는 잠을 재우는 약을 줄여 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와서 잘 자는 건지 그동안 묶여 있어 잠을 못 잔 건지 모르겠다. 엄마가 잘 때 내는 코 고는 소리와 숨소리. 그 특유의 소리를 들으며 낮 동안 낯설게 느껴지던 엄마가 아니라 원래 내가 알던 엄마임을 오랜만에 느꼈다. 그리운 그 소리들.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6대 4로 나뉜 가르마 파마가 퍽 마음에 들었었는데 아직 더운 날씨에 기저귀를 갈고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내리는 일을 할 때마다 땀에 젖었다. 그리고 거슬렸다.

몇 주 뒤 격리가 해제되면 엄마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여기를 나갈 수 있을까. 그 다른 사람은 나처럼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줄까. 오래전 뇌출혈로 왼편이 불편한 엄마의 특수한 신체 상태, 엄마의 행동거지는 오랫동안 봐 온 나만이 아는 일이다. 아마도 나는 머리를 자를 때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내가 엄마 곁에서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이틀에 한 번씩 새벽 6시쯤 간호사가 엄마의 소변을 채취해 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주일 뒤에나 나왔다. 현재 엄마의 상태는 일주일 뒤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양성 결과. 다른 균, 더 안 좋은 균이 나왔다는 의사의 말.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 어제도 내일도, 그 먼 다른 시간들도 어차피 없다. 그래서 어제의 엄마도 내일의 엄마도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엄마만이 나의 엄마다. 그렇게 어제도 내일도 생각하지 않지 않고 오늘만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는 격리된 지 25일 만에 음성 결과 연속 세 번으로 격리가 해제됐다. 내가 간병을 시작하고 4일째 되는 날 채취한 소변부터 음성 결과가 나왔다.

엄마를 데리고 1인실을 나서 4인실로 향하며 과연 엄마의 세상은 더 넓어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뭐로부터 격리가 됐고 뭐로부터 격리가 해제됐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년의 연가 일수를 올해로 당겨와 추석 연휴까지 연가를 냈다. 그리고 연가가 끝날 때쯤 휴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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