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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Apr 11. 2024

엄마 간병기 10

2021년 7월 중순

엄마가 아픈 것은 엄마의 불행일까 아니면 나의 불행일까.

엄마는 정신이 없다. 보통은 인지 능력이 없다고 표현하지만 간단히 말해 정신이 없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모르고 느끼지도 못하고 본인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어딘가에 있는 엄마의 정신 상태. 그런 엄마는 과연 불행한 상태일까.


엄마의 정상적인 모습, 그러니까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내가 더 불행한 게 아닐까.

낯선 사람에게 엄마를 맡기고 나는 동해로 차를 몰았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카페든 벤치든 멍하니 앉아서 바다를 보고 싶었다.


작년에 교체한 타이어는 아직 상태가 좋다. 액셀과 브레이크, 핸들을 조정하며 낯선 곳으로 향해 가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한쪽의 낯섦에서 다른 쪽의 낯섦으로 나는 떠났다.

나는 엄마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2003년에 엄마가 처음 쓰러졌을 때 왜 나는 엄마를 버리고 떠나지 않았을까. 어차피 다시 나를 찾아 올 게 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망칠 기력도 능력도 없기 때문일까.

그때 내가 엄마와 동생을 떠났다면 그 이후 내 인생은 어땠을까.

알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책임감. 몸이 불편한 엄마를 버릴 수도 없으니 나는 앞으로 결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반복했고 이 생각은 무의식에 자리 잡아 그런 식의 생각 패턴은 엄마를 떼어 놓고 내 삶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를 내 삶에서 떼어내 보고 싶었다. 엄마가 없는 나의 삶.


휴가철임에도 동해안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카페, 바닷가,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온전히 나만 생각해보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그런 것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돌아다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든 상관없이 그냥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 나는 개명 신청을 했다.

조금 특이한 내 이름은 그래서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내 삶을 되돌아봤을 때 순탄치 않아 개명에 대해 여러 번 고민했었다. 이번에 엄마가 세 번째로 쓰러지면서 결국 나는 개명을 선택했다. 재밌게도 5개의 작명 애플리케이션으로 현재 내 이름을 조회하면 모두 청년운과 중년운이 안 좋았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나는 신기하고 재밌었다.

내 마음에 드는 한글 이름을 선택했고 친한 동료에게 소개받은 철학관에 작명비를 지급해 그 이름에 맞는 한자를 받았다. 그리고 몇 개의 이름을 더 받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고른 이름으로 개명 신청을 했다. 이제 몇 개월 뒤면 내 이름은 바뀔 것이다.


그리고 라섹 수술을 했다.

개명에 대한 고민과 함께 시력 교정술에 대한 고민도 평소하고 있었는데 부작용에 대한 거부감으로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콧등과 옆머리를 안경이 누르는 느낌이 싫었다. 수술은 다행히 잘 됐고 며칠 아프다 차차 회복되었다.


이제 아픈 엄마의 삶은 엄마의 것이고 내 삶은 그냥 나의 삶이라고 생각해 보려 노력했다.

그사이 간병인을 통해 들은 엄마의 상태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밤에는 침대채 병실을 나와 처치실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나마 진전이 있다면 다행히 연하검사를 통과해 콧줄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면회가 제한되어 직접 볼 수 없는 엄마의 상태. 낯선 사람들이 봤을 때 이상한 엄마는 분명히 묶여 있을 것이다. 나는 팔다리가 묶인 상태로 버둥치는 엄마를 상상해 본다. 불쌍한 엄마.

그래서 내가 직접 간병을 해야 할까? 아니다. 지금 나는 못한다.

8월 초, 공동간병인 병실에 자리가 나서 엄마를 이동했다고 한다. 하루 13만 원의 개인간병비가 부담스러워 그보다 반이상 저렴한 공동간병인 병실을 요청했는데 이제 간병비 부담을 좀 덜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돈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러다 뇌졸중 관련 카페를 통해 알게 된 같은 병원 보호자에게 공동간병인 병실의 분위기 파악을 요청했고 엄마의 모습을 촬영한 짧은 영상을 받았다. 그 영상 속에 낯설지만 익숙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내가 생각한 것처럼 팔다리가 묶인 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엄마를 보고 내가 간병을 해야 할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병원 원무과에서는 엄마가 밤에 너무 난동을 부려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이니 정신과와 재활과가 같이 있는 병원으로 전원해 줄 것을 전화로 요청한다. 나는 엄마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할 말이 없다.

이제 엄마를 어느 병원으로 옮겨야 할까. 아니면 역시 내가 간병을 해야 할까.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오전.

엄마의 소변에서 CRE균이 나왔다며 전염을 막기 위해 1인실에 격리됐다는 연락이 왔다. 간병할 사람이 없으니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급히 들어와 간병해 줄 것을 요청한다. 나도 동생도 바로 갈 수 있는 상태가 못 되고 하루 이상 있을 수 없어 우선 개인 간병인을 요청했다.


1인실에 격리되어 침대에 팔다리가 묶여 있을 엄마 생각을 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내가 간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간병에 필요한, 아니 정확히는 간병하는 나에게 필요한 몇 가지 짐을 챙기며 나는 이번이 마지막 간병이라고, 이번만 간병하고 앞으로 다시 하지 않겠다는 불확실한 다짐을 해본다.


엄마가 나를 부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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