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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Apr 18. 2024

엄마 간병기 11

엄마는 뱃속에 나를 가졌을 때 나를 지우려고 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나를 지우고 나중에 아이를 가지려고 했는데 자식 농사부터 지으라는 할머니 말에 나를 지우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한다. 그랬다면 아픈 엄마에 대한 내 고민들, 깊게 뿌리내려 쑥쑥 자라난 그런 고민들, 그런 것들이 모두 없었을 텐데!


나는 유난히 머리가 큰 아이여서 엄마는 새벽부터 진통을 느꼈고 초저녁이 돼서야 나를 낳았다. 12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그날, 내가 태어나던 날 엄청 고생했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다. 또 내가 머리가 너무 커서 장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서서히 작아졌다는 얘기도. 특별할 것 없는 나의 탄생 설화도 엄마에게는 유일한 특별한 것 일 테니.


나는 어쨌든 건강하게 태어나 자랐고 중학교 때 농구하다가 오른팔이 부러진 것 외에는 병원 신세도 별로 지지 않았다.

내가 만약 엄마처럼 아프면 엄마는 어떨까. 아마도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라는 사람은 만약 누군가 가족들 대신 아프겠냐고 물으면 고민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생각들이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다.


엄마는 처음 뇌출혈로 쓰러지고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두 가지는 꼭 혼자 하려고 노력했다. 하나는 스스로 화장실에 가는 것이고 하나는 나와 동생의 밥을 차려 주는 것이었다. 왼편이 마비됐던 엄마는 다행히 오른손잡이였고 집 안 생활의 대부분은 혼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엄마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엄마를 재활한 것도 아니었다. 재활에 대한 개념도 없고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그저 엄마의 의지가 없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렸다. 한없이 무기력해 보이는 엄마에게 그저 다그칠 뿐이었다. 그 시절 엄마를 좀 이해해 봤더라면.

모든 것이 지나고 과거를 바꿔 그 결과를 생각해 보는 것은 참 달콤하다. 물론 전혀 바뀌는 것이 없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이 된 나는 군대를 가야 했고 입대 전에 잠시 다니려고 아웃소싱을 통해 공장에 들어갔는데 군대가 면제되면서 5년을 다녔다. 가정 형편으로 군대가 면제됐으니 참담한 심정도 있었지만 어쨌든 돈을 벌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군대를 가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내가 군대를 갈 만큼 안정된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하루는 통근 버스에서 선잠으로 시작해 회사에서 주는 아침밥을 먹고 허름한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기계 소리, 그 사이에 켜진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던 라디오 소리, 집진기 소리, 생산되는 제품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반복되었다. 내 20대 초반은 그렇게 회색빛이었다.

그리고 방치된 엄마.

주야간 근무를 주마다 번갈아 가며 하던 나는 남는 시간을 온라인 게임에 몰두했다. 엄마의 재활은, 아니 엄마는 분명히 내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출근하기 전 그리고 퇴근한 후 내 못남을 모두 엄마의 탓으로 돌리며 지독히도 모진 말들을 뱉어 냈다. 아마도 거의 매일. 고개 숙인 채 나의 그 말들을 듣던 엄마의 모습들.

엄마는 내가 출근해야, 집을 비워야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 것이다. 혼자 단칸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엄마를 상상해 본다.

그렇게 나와 동생이 엄마가 쓰지도 않은 엄마 이름으로 된 빚을 갚아나가는 동안 아무렇게나 걷던 엄마의 허리는 점점 더 굽어 갔다.


어쨌든 그런 시간도 모두 지났다.

나는 그 시절이 제일 힘들었다고, 앞으로 그보다 더 힘든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마치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가끔 사람들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내 못된 모습은 쏙 빼놓고. 나의 불행은 또한 나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세 번째로 쓰러지고 난 후 그런 내 생각이 틀린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은 형태를 달리해서 결국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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