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35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조토는 참 대단도 하지."

"갑자기?"

"그림이면 그림, 건축이면 건축,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잖아. '치마부에의 시대는 가고 지금부터는 조토의 시대이다'라며 단테 역시 그를 칭송했다지. 내 비록 28개 전부 눈도장은 못 찍었다만, '작은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를 직접 보다니. 2000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유적>이란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 중, 15번째였지 아마."

"오~"

뻐기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른 척한다면 꽤나 무안해질 테지. 해서 일단 장단을 맞추기로 했다. 아라의 맞장구에 힘입어 그의 목소리에는 좀 전보다 무게가 실렸다.

"30개도 아닌 고작 28개 정독 못한,, 오기가 생기지 뭐야. 해서 책을 열었지. 그렇게 복습을 했다는."

슬쩍 올라간 어깻죽지 하며, 높고 또 낮게 톤을 조절해 가며 보기 좋게 포장하느라 그는 부단히도 노력을 했다. 자신이 진호를 곱씹었던 그 시간, 그의 관심은 오롯이 조토와 그의 프레스코화였다니. 이에 아라는 적잖이 섭섭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드러낼 수는 없었다. 서로의 손바닥이 마주쳐 쩍- 소리가 났으니 이제 본모습을 보여야 할 차례,, 얼굴 가득 미소를 일발장전, 목소리에는 장난을 덧입혔다.

"신도석을 따라 오른쪽 아님 왼쪽 벽면이던가요? 안타깝게도 16번째라는.."

그의 얼굴 근육이 꿈틀 하는 것으로 보아 적잖이 당황한 모양새였다.

"토씨 하나 빼먹지 않은 그 노력은 가상히 여길게요."

곧추 세운 검지로 진호의 손에 들린 여행책을 톡- 건드리며 아라는 보란 듯이 놀려댔고 이에 얼음처럼 굳어버린 그는 규칙적으로 숨만 쉴 뿐이었다. 한껏 신난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가던 아라가 돌연 등을 돌려 진호를 향해 크게 외쳤다.

"미네르바 신전에서도 내내 그럴 것만 같아 말하는데, 15번째가 맞다는."

혀를 빼꼼 내밀어 깔깔 웃고는 이내 등을 돌린 아라는 뛰다시피 빠르게 걸었다. 그 뒷모습에 바짝 붙은 진호의 뒤룩뒤룩 성난 눈은 말한다. '잡히면 죽는다.'


"내려다보는 것만큼이나 올려다보는 것도 묘미가 있네 그려. 로카 마조레, 프란체스코 성당. 저 즈음일 테지. 나의 숙소 그리고 너의 숙소."

말끝에 아라를 보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와 함께 하지 못했다. 분위기 전환이 절실했다.

"미네르바 신전은 판테온과 비슷한 외관을 가졌네.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일 테지."

아라의 시선이 돌아온 건 그때였다. 이에 진호는 슬그머니 웃었다.

"신전 건축 양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사람이 하는 일인데. 경복궁이나 덕수궁이나.. 아니 그런가?"

"호아제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건립하여 보전되어 온 건축물이자 건축가 팔라디오(palladio)가 쓴 '아시시의 미네르바 신전'(Temple of Minerva in Assisi)을 읽고 아시시행을 결심한 괴테는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을 먼저 보았지만 감흥을 얻지 못했어요. 이어 도착한 미네르바 신전 성모마리아 교회(Santa Maria della Minerva)를 보고, 고대 건축물 중에 이토록 완벽한 것은 물론 처음으로 자신을 흥분시킨 영원한 유산을 딱히 묘사할 방법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탄식했다는. 요는,, 판테온은 물론 미네르바 신전 역시 그 자체가 의미이며, 대문호 괴테가 칭송한 어마한 건축물이라는."

"한국 가면 시골로 이사 가요. 눈과 귀가 번쩍이는 것 하나 없이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가 전부이니 집중력 보소."

명백한 아라의 비아냥에 진호의 입은 절로 벌어졌다.

"<이탈리아 기행> 중 아시시 방문 기록 (Goethe, who visited Assisi In 1786. recorded)에서 발췌한 내용이라는."

"괴테의 관점에서나 그러한 거고. 어쨌거나 튼튼해 보이네요. 그러하니 지금까지 굳건한 거겠지만."

마치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아라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지만 진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고한 흔적을 다시금 토해냈다.

"신전 옆의 건물은 시립 미술관으로, 지하에는 미네르바 신전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요.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테나가 올리브를 건넸고, 그로 인해 아테네는 번영을 이뤄요. 로마 신화에서 미네르바 역시 올리브나무를 건넨 평화의 여신, 그런 이유로 이탈리아에서는 올리브를 미네르바의 나무라 부른다고."

"미네르바 제과점에는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뜬금없는 아라의 말에 진호는 미간에 실주름을 새기며 몸소 시위를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아라는 입을 열었다.

"제과점의 하나뿐인 아들은 당시 생소한 악기였던 플루트를 불었어요. 철수네 슈퍼, 영희네 문방구, 만수네 세탁소 등등.. 당시의 시대상을 탈피한 독자적인 상호명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서양식 문화의 반영이라 일축하자 분산된 의견은 모아졌고 더 이상의 갑론을박도 없었어요. 그러나 'i am a boy, you are girl'를 읽고 외기 바쁜 어린 소녀는 '미네르바'라는 교과서 밖의 생소한 단어가 낯설었어요. 88 올림픽 당시, 63 빌딩을 다녀온 일이 무용담이 되던 조금 먼 시절의 그 어린 소녀는 훌쩍 자라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미네르바와 올리브의 상관관계를 알게 된 거죠. 고2 때 엄마를 졸라 갔던 피자헛에서 접했던 초록색 피망 옆의 검은색 올리브는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맛, 지난 기억 속의 올리브는 그러했고, 정작 제과점에는 올리브를 넣은 빵이 없었데요. 아마도 번영을 꾀한 그로 인한 바람은 아니었을까? 미네르바와 올리브의 연결고리를 아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진즉에 알았더라면 제과점 아들을 손에 넣고 인구 증가에도 기여한 바가 컸을 텐데. 생각이 여기에 미지차 이마를 탁- 쳤데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어린 소녀의 슬픈 사랑 얘기?"

"나대지 사촌 얘기구먼."

"어떻게 알았지?"

"88 올림픽 당시라 하니 어머니는 아닐 테고, 배낭여행은 사촌의 영향이었다 했으니, 추론하고 종합한 결과."

"눈치가 젬병은 아니네."

"그럼 소년은요?"

"플루트를 불던 소년은 아로미를 만나지 않았을까?"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진호의 눈이 심술궂게 커졌다.

"물어본 내가 바보지."

"서울로 전학 갔다는 소식이 끝이었데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잖아. 물론, 플루트 소년이 혼자라는 가정하에."

"다 늙어 만나 뭐 하게? 병시중 들라고? 물려받은 재산에, 게다가 땅도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

"혼자 살 생각이구먼. 붙어 다니지 마요. 물들라."

"엄마의 소녀 시절이 상상이 안 되는 것처럼, 언니의 소녀 시절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내 소녀 시절의 기억은 또렷해. 유학 시절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엽서, 그 안에 담긴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 동경, 그 자체였지. 그 언젠가의 그녀의 흔적 위에 내가 있다는 게, 눈앞의 미네르바 신전보다 이역만리 떨어진 그녀가 가득인 게 좀 묘하다는.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아까 물었죠? 대답이 늦었네요."

"묘하긴 뭐가. 감정이든 물질이든 결론은 하나, 아끼다 똥 된다. 그 말을 하고, 알려주고 싶었던 거지. 자신과 같은 실수 되풀이하지 말라고."

"김진호 씨는 참 묘한 재주가 있네."

"뭐가?"

진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아무 말도 아닌데 집중하게 하는. 좋은 목소리 덕인가? 아무튼 되게 묘해."

"그건 됨됨이 때문은 아닐까?"

"무슨."

시답지 않은 그의 말을 아라는 귓등으로 흘렸고 진호는 좀 전 아라의 말을 곱씹었다.


"여기서 퀴즈!!"

예상치 못한 그녀의 한마디에 진호는 집중을 했다. 맞추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의지 때문인지 제멋대로인 그녀의 행동에 대해 따져 묻는 것 따위는 시시껄렁하게 여겨졌다.

"로마에도 미네르바 신전이 있었어요. 지금 그 자리엔 교회가 세워져 있지만. 자 그럼 도미니크 수도회의 본원지인 이 성당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주관식은 넘어갈게요. 이건 맞추라는 건지 놀리는 건지. 판테온 신전 앞에 가서 외쳐보라고. 정작 로마 시민들도 갸우뚱할걸?"

미네르바 신전을 뒤로하고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해서 분명 이와 관련된 문제라 확신했다. 엊저녁의 예습은 지금을 위한 수순이었던 걸까? 당연, 자신 있었다. 그러나 로마, 게다가 성당이라니?? 교묘한 아라의 작전임을 깨닫고는 이에 진호는 애써 눌렀던 감정까지 끄집어내 따져 물었다.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아라는 끄덕였다.

"아는 걸 물으면 재미없잖아.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Sopra Minerva)."

"막 지어낸 거 아냐?"

"무슨 소리. sopra는 이탈리어로 '~의 위'란 뜻이니, 즉,, 미네르바 광장 위의 산타 마리아 성당이라는. 판테온에서 멀지 않아요."

"잠깐, 판테온과 그 주변을 이 잡듯 샅샅이 훑었는데 안 갔을 리가 없잖아. 아니면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전자가 맞아요. 아시시와 로마의 연결고리는 엊저녁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물론 보았다 한들 굵직한 성당에 치여 가물가물할 테지만, 그럼에도 아쉽다는."

"미네르바 신전도 아닌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성당인데 아쉽기는 뭐가."

진호의 비아냥에 말려들지 않고 놓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아라는 속눈썹 하나 깜박이지 않고 신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아쉬운 마음 떨치는데 제일 좋은 건?"

"아. 쫌."

글자 하나 허투루 뱉으면 분명 화를 낼 터, 잔뜩 구겨진 그의 얼굴 표정을 똑바로 본 이상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다.

"달리기. 델질리오 수녀원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오늘 저녁 사기."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라의 두 다리는 진즉에 시동을 걸었고 그 바람에 목소리는 불안정하게 널을 뛰었다.

"반칙하는 게 어딨어?"

벼락같은 진호의 일갈에 아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발을 움직이며 말이다.

"여자 이겨 먹어 잘 된 남자 내 본 적이 없네."

이만하면 알아들었을 거라 여겼는지 황급히 등을 돌린 아라는 크게 팔을 흔들며 앞서나갔다. 그녀의 우려와는 달리 애당초 진호는 따라잡을 생각도 없었다.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을 박은 채 거리를 재고 적당한 간격을 벌리느라 그의 머리도 고생이었으나, 잘 뻗은 두 다리의 헛발질에 비한다면야 그건 고생도 아니었다.


"뭐 합니까?"

우스꽝스러운 분장만 없었다 뿐이지 철제 사다리 위에서 아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적당히 벌린 사다리 계단에 두 다리를 걸치고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천장에 가까스로 닿은 손을 아래로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진호를 내려다보았다.

"전구 갈아요."

"그니까. 왜? 내려와요."

"돌리기만 하면 된다는."

다시금 천장에 팔을 뻗어 전구를 돌린 후 사다리를 타더니 계단 하나를 남겨두고 껑충 뛰어 땅으로 착륙해서는 두툼한 장갑을 벗으며 사다리를 붙들고 있던 수녀에게 눈짓을 했고, 이에 수녀는 급히 자리를 물렸다. 잠시 후 천장에 박힌 전구는 따듯한 빛을 발산했다.

"수녀님. 불 들어왔어요."

아라의 우렁찬 목청이 복도에서 사라지기도 전, 한달음에 달려온 수녀는 두 손을 맞잡은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여 고마움을 표했다.

"수녀원은 모든 걸 자급자족 합니까?"

가시 돋친 그의 한마디는 수녀와 아라의 얼굴에서 미소를 앗아갔고, 이에 분위기는 금세 차가워졌다.

"본의 아니게 기다리게 했네요. 저녁은 내 살 테니 갑시다 가요."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면 못 이기는 척 선수 치는 게 답이다. 해서 아라는 급히 진호의 등을 떠밀었지만 어깃장을 놓듯 그의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아 아라는 힘을 가해 밀고 또 밀었다. 수녀원 밖으로 나오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것을 대충 닦으며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기다리게 한 건 미안해요. 진호 씨라도 그랬을 거야. 일을 왜 크게 만들어요?"

"위험한 일 맞잖아."

"두꺼비집 내리고, 장갑도 끼고, 수녀님도 옆에 계신데. 대체 뭐가??. 익숙한 일, 쓸데없는 걱정이었다고."

"자신을 좀 아끼라고."

"다른 상황이었다면 혹했을 텐데. 전구 하나가 깜박하잖아. 가뜩이나 눈 어두우신 수녀님 혹여 미끄러지실까 봐 나선 거라고. 견적이 딱 떨어지길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잖아."

"깜냥 할 수 있었대도."

진호를 쏘아보는 아라의 시선은 매서웠다.

"그럼, '뭐 합니까?' 아닌 내려오라는 말이 먼저였어야지. 결국 기다린 것에 대한 분풀이잖아.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숨을 내어 쉬고 아라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한두 번 하다 말 거라면 아예 시작도 말아요. 재미 삼아 찔러보는 것도, 내심 기대하게도 하지 말라고."

순간,, 진호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말이 없는 진호를 보며 쐐기를 박듯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고아라. 굿잡!!. 그 한마디면 될 것을. 넘기지 못하고 받아친 내 탓도 있으니 뭐.. 같이 마주 앉아 밥 먹을 기분 아닌 듯하니 오늘은 각자 먹죠. 자유 일정, 그럴 때도 되었잖아."

서둘러 제 말만 하고 아라는 등을 돌려 빠르게 걸어 나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진호는 쏘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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